[다함께] 세계화와 건강
경제자유구역은 세계화의 다른 이름
변혜진(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세계화의 또 다른 이름은 사유화다.
세계적인 보건의료운동 연대단체인 ‘민중건강운동(PHM)’은 세계화에 따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보건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복지부문의 투자축소, 공공의료서비스를 유료로 바꾸는 것, 의료부문의 사유화, 민간의료의 도시집중”으로 요약했다.
한국에서도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 억제되고 역전되기도 했지만 정부와 자본은 일관되게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보건의료의 사유화 정책은 경제자유구역 추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에 동북아중심병원을 만들려면 경쟁력을 갖춘 외국병원이 들어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쾌적한 투자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환경이란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올 다른 기업들처럼 외국병원도 충분한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되는 환경을 의미한다.
현재 비영리법인으로 돼 있는 의료기관은 벌어들인 돈을 의료기관 자체에 재투자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에서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들에게는 “쾌적”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비싼 치료비를 치를 수 없어 이용할 수 없는 고급병원들만 늘어날 것이다. 또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시간과 강도는 늘어날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작은 병원들은 문을 닫을 것이고 전체적으로 의료비는 턱없이 오를 것이다.
존스 홉킨스 병원 같은 외국병원은 한국에 진출하기도 전에 민간의료보험을 먼저 도입하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한국의 건강보험은 그나마도 “쾌적한 투자환경”의 걸림돌일 뿐이다.
그러나 콜롬비아의 경우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한 후 전 국민의 13퍼센트만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나머지 국민들은 부유층이 모두 빠져나가 재정상태가 극도로 열악해진 껍데기뿐인 의료보험제도에 남게 되었다.
지금도 중병에 걸리면 집안이 결딴나는 것이 우리 나라의 의료보험제도이다. 비싼 보험료를 다 내고도 병원에 갈 때마다 전체 의료비의 절반 이상을 다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병원들과 전경련, 다국적 금융자본들은 이렇게 빈약한 의료보장제도도 거추장스러워 사유화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고 노무현 정부도 기회 있을 때마다 경쟁력 강화를 외치며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려 한다.
이것이 경쟁력 강화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의료보험 사유화와 동북아중심병원 구상의 실체다. 이런 반쪽뿐인 의료보험제도조차 아예 끝장을 내자는 것이 바로 세계화다.
죽음을 파는 다국적 제약회사
에이즈 신약으로 알려진 ‘네비라핀’의 부작용으로 치명적인 피부열반 증상인 ‘스티븐-존슨 증세’를 보이고 있는 유아(왼쪽)와 투약을 거부하는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위벽을 통한 튜브 삽입 수술이 실시된 어린이(오른쪽)
지난 4월 4일 영국 <옵서버>는 미국 뉴욕의 한 어린이 에이즈 환자 요양시설이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에이즈 치료제를 실험했다고 보도했다.
인권활동가 리엄 셰프의 보고에 따르면, 실험 대상이 된 아이들은 대부분 흑인과 라틴아메리카계 고아들이었다. 끔찍하게도, 약을 먹지 않는 아이들은 뱃속에 직접 약을 투입할 수 있도록 콜롬비아 장로교 병원에서 몸에 튜브를 집어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리엄 셰프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많은 아이들이 코나 몸의 한쪽에 튜브를 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 중 적어도 두 명이 약물 부작용으로 죽었다. 다른 한 명은 눈이 멀었다. 8살 된 한 어린이는 약물 부작용으로 목덜미에 생긴 커다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실험 대상이 된 아이들은 대부분 심한 간염과 피부염으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육아어린이센터”라는 이름의 이 요양시설에서 실험동물 취급을 당한 아이들의 상당수가 에이즈나 HIV 감염 사실이 확진되지도 않은 아이들이었다.
1989년부터 최근까지 1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은 뉴욕 아동보호청의 승인 아래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 알레르기 및 감염병 연구소와 국립아동보건연구소가 주도했다. 그리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화이자, 베링거잉겔하임, 진앤테크 등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이 실험에 돈을 댔다.
실험에 사용된 약들은 대부분 아직 시판 허가를 받지 못한 이 기업들의 신제품이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흑인과 라틴아메리카계 아이들의 죽음을 담보로 만들어 낸 약은 대부분의 흑인과 라틴아메리카계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끔찍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각국 정부의 묵인, 심지어는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지난 수십 년 간 평범한 사람들을 ‘마루타’ 취급해 왔다.
아스피린으로 잘 알려진 다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엘 사는 나찌가 저지른 생체실험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조에 폴란스카 팔머라는 여성은 13살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련의 생체실험에 동원됐고 그 후유증으로 불임이 됐다. 그녀는 독일 정부와 바이엘 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독일 정부는 그녀에게 고작 4백만 원을 지급했다.
세계 1위의 제약회사인 화이자는 지난 1996년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에서 2백여 명의 흑인 어린이들에게 항생제 투여 실험을 했고 이 중 11명이 죽었다. 이 약은 1999년 간질환 부작용이 심하다는 이유로 사용이 제한됐다.
세계 2위의 제약회사인 머크는 1998년부터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에이즈 백신을 임상 실험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이윤 중 단 0.2퍼센트만이 설사·폐렴·결핵 등 가난한 나라들에 흔한 병의 치료제 개발에 쓰인다. 반면, 1997∼1998년에 미국제약협회는 미국 의회에 2억 3천6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1990년 한 해에만 공화당과 민주당에 1천4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화이자는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기부 1위를 기록했다.
제약회사의 중역회의실에 모여 앉은 살인마들은 날마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들에게 사람들의 생명은 신약 개발과 그로부터 얻게 되는 이윤을 위해서만 가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