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제약사 ‘후진국病’ 치료약 외면
외항선원 전모씨(53)는 지난해 7월 아프리카에 다녀온 뒤 열대성 질병인 말라리아에 걸렸다. 염산퀴닌 주사를 맞으면 쉽게 낫지만 약품을 전혀찾을 수 없었다. 결국 전씨는 한달만에 숨졌다.
앞으로 말라리아, 결핵, 수면병 등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저개발국 질병에 걸렸다가는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선진국의 제약회사들이 돈이 안되는 이들 의약품 개발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트리스 트루일러 등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6명의 연구자들이 의약전문 저널 란셋 최근호(6월22일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미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평가국(EMEA)에 등록된 1393개 신약품 가운데 저개발국 질병용 의약품은 16개(1.1%)에 그쳤다. 16개조차도제약회사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하나도 없고 어떤 형식이든 공공 재원을 얻어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에서 무시되고 있는 이들 질병은 저개발국에서는 치명적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수면병 감염자는 50만명에 이르고 6000만명이 감염 위험에 처해 있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25%가 수면병의 일종인 샤가스병 병원체가 우글거리는 환경에 살고 있지만 약이 모자라 어린이들만 치료를 받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수요가 적은데 손해를 감수하고 약을 개발·생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항변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들 질병이 거의 사라졌고, 저개발국에 약을 팔더라도 시장이 좁고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이익을 남길 수 없다는 이유다.
때문에 비만증 치료제 등 선진국형 질병 치료약은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열대질병 개발투자는 거의 중단됐다. 수면병 치료제 생산을 중단하는 대신 원료물질을 여성의 털과다증 치료제 생산에 사용하고 있을 정도.
연구자들은 “이 같은 편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의약품 전체 투자액 가운데 1%를 저개발국 질병에 투자하는 방안과 국제비영리단체 구성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