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7 1호 : 한미FTA 협상과 제약회사들의 몸집부풀리기

[녹색평론] 2007년. 1월호

한미FTA 의약품 협상, 이윤이냐 생명이냐  

  “우리의 목표는 최대의 이윤”

  코카콜라 고이주에타 회장은 고위 임원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이 마시는 액체가 평균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대답은 64온스였다. 그렇다면 하루에 마시는 코카콜라는 평균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대답은 2온스였다. 끝으로 그는 코카콜라의 위 점유율(Share of stomach)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음료시장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 한 사람이 마시는 수분의 양으로 시장을 사고하라는 그의 경영 전략은 코카콜라의 적은 펩시콜라나 다른 음료수가 아니라 커피, 우유, 그리고 물이었다. 그의 꿈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우유나 물 대신 코카콜라는 먹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코카콜라의 세계화 전략은 “입이 있는 곳에 코카콜라를 가져다 놓자” 가 됐다.
  코카콜라사의 최대관심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더 많은 코카콜라의 판매이다. 그들은 어린아이들이 우유나 물 대신 코카콜라를 마시게 되면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윤이다.
  그렇다면 음료수회사가 아니라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들의 꿈은 무엇일까?
  미국에 본사를 둔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의 CEO 핸리 개스텐은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꿈을 토로한 바 있다. 아픈 사람들만이 자신의 고객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자신의 고객이 되도록 했으면 한다는 거 였다. 제약회사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오랜 격언이 있다. ‘병을 치료하는 치료제 개발도 좋지만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은 더 좋다’. 완벽하게 치료되는 약보다는 살기 위해서는 계속 먹어야 하는 약의 개발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는 뜻이다. 제약회사들도 코카콜라와 마찬가지다. 이윤이 그들의 최대 관심사이고 최대 이윤이 최고의 우선순위다.
  거대 제약회사들이 어디에, 그리고 누구를 치료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붓는지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없는 병을 만들어서라도 새로운 신약판매를 늘이려고 하지만 수 백 만 명이 매년 걸려 사망하는 말라리아나 설사병, 열대 풍토병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 개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질병들은 오래전에 그 원인이 되는 병원균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같이 살아가야 할’ 전염병들이 돼 버렸다. 게다가 이런 병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나마 기존에 개발돼 있는 의약품 가격이 너무 비싸 약을 먹지 못해 죽어간다.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의 동기는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에 대한 치료제의 개발이 아니라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치료제다. 치료제를 구매할 능력이 없는, 즉 돈이 없는 환자들의 질병은 사망자 수가 크든 말든 제약회사들에게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데이터일 뿐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이윤이다.
  그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은 질병의 범위를 턱없이 넓게 정의해 없는 병을 만들기도 하고 건강한 사람들도 약을 먹어야 안심이 되도록 ‘질병을 판매’하기도 한다. 또 그만그만한 약의 효능을 무리하게 확인하려들다 보니 억지에 가까운 인체실험을 기획하게 되고 기본적인 생명윤리와 연구윤리를 어기는 위험한 인체실험이 주로 제 3세계에서 빈번하게 자행된다. 최근 이러한 제약회사의 실체를 폭로한 책들이 한국에 여러 권 번역됐다. 의약품 협상이 한미 FTA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게 되면서 제약회사들의 감추어진 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중 한 책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했는데, 한국 의료를 가장 상업화하는데 혈안이 된 보험자본과 병원자본의 주구 역할을 하던 사람이 번역을 하기도 했고, 번역조차 일관되진 않지만 원저자의 의도대로 자본주의에서 제약회사들이 질병과 치료제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화이자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제약회사다. 화이자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라는 한 가지 의약품만으로 1년에 전 세계에서 13조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화이자가 지구상에서 주식가치가 가장 큰 회사가 된 배경에는 리피토의 판매가 매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화이자는 약 판매를 높이기 위해 심장병 예방을 위한 규칙적인 식습관과 운동, 금연 등의 ‘돈이 안 되는’ 처방은 제외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건강한 남녀도 심장병에 안 걸리려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저하시켜야 한다는 것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웠다. 화이자의 학회 지원이나 연구 지원을 받는 의사들이 이런 전략을 ‘과학’ 으로 만드는 문지기 역할을 해 주었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의약품 광고에 대한 규제완화는 화이자의 ‘질병 퍼뜨리기’ 전략을 돕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거대 기업, 화이자, 머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본거지를 둔 미국과 한국정부는 현재 FTA를 추진 중이다. 그리고 FTA에서 의약품 분야는 매우 중요한 의제가 돼 있다. 그리고 미국이 체결한 FTA에서 그 어떤 분야보다도 기업의 이윤을 최대로 관철시킨 분야가 바로 의약품분야다. 도대체 어떤 협상내용이 자유무역협정에 있길래 제약회사들이 최대 이윤을 보장받았을까?  
  

  신약 개발

  한미FTA에서 미국정부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요구하는 바는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포지티브리스트)도입의 무력화, 외국의 신약을 선진 7개국 평균약값으로 책정하도록 돼 있는 ‘혁신적 신약 약가제도’를 모든 신약에 적용할 것, 특허기간의 연장을 통해 복제품의 생산을 지연시킬 것, 전문의약품의 대중 광고를 허용할 것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것은 “혁신적 신약의 개발촉진 및 접근성 강화” 이다. 이것은 미국이 제기한 16가지 요구 중 첫 번째 요구사항이자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신약 개발은 돈이 매우 많이 들어가는데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도입돼,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값이 깎이면 신약 개발을 못하게 되고 결국 신약 개발이 안돼 환자들의 신약 접근도가 떨어질 거라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기도 한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그 근거가 전혀 없다.
  환자들을 위한 신약 개발이 자신들의 진정한 목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제약사들의 위선도 역겹지만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고가의 약값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비아그라 등의 이른바 해피드럭이나 유사약제 이외에 정작 그들이 개발하는 신약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1998년과 2002년 사이에 FDA에 승인된 약 중 75%가 ‘유사’ 의약품, 일명 me too drug 이었다. 기존의 약품과 비교해 볼 때 임상효과의 차이도 없고 특별히 새로워진 것이 없는 약들을 염기만 바꾸어 새로운 신약으로 특허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생산하는 몇 개 안되는 진짜 신약들은 국공립 또는 비영리기관에서 대부분 연구를 끝낸 자료를 기초로 마지막 상업화, 즉 자신들의 이름으로 특허를 내는 것만이 제약회사들이 실제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국적 제약사들이 그토록 많이 든다고 주장하는 연구개발비용은 정말일까?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주장하는 신약개발비용은 신약 하나 당 약 8,000억원이다. 그리고 미 상무성도 자신의 보고서에 제약회사들의 주장을 동일하게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제약사들이 주장하는 개발비용에는 세금이 공제됨에도 공제되지 않은 비용으로 계산돼 있고, 실패한 의약품에 투자한 비용까지 개발된 신약에 쓰인 돈으로 계산돼 있으며, 연구개발비용이 실투자액수가 아니라 기회비용으로 계산된다는 점에서 최소한 10배 이상 부풀려져 있다. 그리고 제약회사가 버는 떼돈에 비하면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들이 마케팅 비용으로 쓰는 돈의  1/3 밖에 안 된다.
  포춘지가 선정한 돈 잘 버는 세계 500대 기업이 있다. 이 기업 중에 10개가 다국적 제약사들이다. 이 10개의 제약사들의 순이익은 나머지 490개 기업의 순이익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2001년 500대기업의 매출대비 수익률이 평균 3.3%, 2003년 4.6%인데 다국적 제약회사는 18.5%, 14.3%였다. 지구상의 가장 큰 주식회사들이 제약회사들이고 이 주식회사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더 보장받기 위해 이제 FTA를 통해 각 국의 약가통제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신약개발을 명목으로 특허권의 영원한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 1,400 만 명의 사람들이 약값이 너무 비싸 약을 못 먹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고가의 의약품 가격정책을 고수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벌어들인 수익의 30% 이상을 홍보와 광고,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한다. 전문의들의 처방을 받아야 할 약들은 대중 매체를 통한 광고를 통해 아무런 보건의료정보와 과학적 근거도 없이 건강한 사람들도 제약회사의 잠재적 고객이 되도록 해 준다.  
  이러한 제약사들의 이윤 중심의 개발 행태로 인해 정말 필요한 신약 개발과 백신 등의 치료제 개발이 너무 더뎌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는 나라마다 GDP의 일정액을 걷어 필수적 백신이나 의약품의 개발을 위한 공공펀드를 만들자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도 있다.
  한미FTA를 통해 각 국의 약가통제정책을 포기하고 약값을 올려야만 환자들의 신약접근권이 높아진다는 그들의 주장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약개발도 없이 특허권으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건강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고객이 되도록 해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가는 다국적 제약회사 이윤, 그 자체가 의약품접근권을 가로막는 근원이다.

FTA와 의약품 특허

  1990년대 다국적 제약사들의 합병과 분사가 줄을 이었다. 1995년 WTO 체제가 성립된 이후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의약품 특허를 20년으로 연장해 제약사들의 독점적 이윤을 보장해주었고 이른바 블록버스터가 되는 약들의 특허권을 중심으로 제약사들은 흡수와 합병을 거듭해 머리는 하나이지만 다리는 네다섯 개인 거대 제약기업이 되었다.
  이렇게 출시된 1년에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제약사들의 블록버스터 약들 대부분이 2000년에서 2010년이면 특허기간이 만료가 된다. 이 때문에 제약회사들의 선택지는 분명해졌다. 정말로 신약개발을 하느냐, 아니면 있는 특허를 더 연장하거나 강화시키느냐. 그리고 제약회사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1995년 TRIPS로 20년간 특허를 보장받은 다국적 제약사들은 10년 뒤인 2005년을 기점으로 FTA를 통한 TRIPS Plus를 노리고 있다. 저작권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한 자유무역협정은 제약사들에게 최대 이윤을 유지할 수 있는 천군만마인 셈이다.
  미국과 호주의 FTA에서 미국정부는 호주의 공공약가정책인 PBS 제도를 협상 대상으로 삼았고 미-안데안 FTA에서도 CAFTA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미-호주 FTA 이후 호주는 연 1조 5천 억 원의 의약품비용의 부담이 늘어났고, 페루 보건성은 미-안데안 FTA 체결 1년 뒤 9.7%, 10년 뒤 100%의 추가 의약품비용부담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페루보건성은 FTA 결과로 1년에 70-90만 명이 필수적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가 추계한 결과에 따르면 한미FTA 체결이후 특허기간연장으로 인한 추가비용부담액은 5년 간 5조 8천 억 원의 추가비용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비용은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유사의약품 자료독점권 연장’을 뺀 추계이고 민주노동당이 이를 포함하여 추계한 비용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제네릭 의약품 및 개량신약 도입지연으로 인한 추가부담액은 2011년에 6조 9100억 원이 된다. 결국 4인 가구 기준으로 매년 10만 원 이상을 더 약값으로 추가지출 해야 하고, 그것도 매년 10만원씩 수직상승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김종훈 한미FTA 협상 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의약품과 자동차 협상을 무역구제협상과 빅딜 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결국 자동차 배기가스량에 따라 과세해 배기가스 배출을 억제하고 세금을 늘리는 환경정책이나, 건강보험재정을 거덜 나게 만들 약제비 지출을 억제하는 공공약가정책을 국내 자동차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자동차 유독가스로 인해 어린아이들의 천식이 급증하고 아픈 환자들이 돈이 없어 필수의약품 접근을 못하게 하더라도 미국과의 FTA는 해야겠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철학은 이미 여러 번 본인 스스로 자랑스럽게 밝혔듯이 ‘기업이 곧 국가’이며, 따라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가 최우선 이다. 그리고 그것의 완결편이 한미 FTA 추진이다. 그래서 광우병 위험물질이 든 미국산 쇠고기가 어린아이들의 학교 급식과 환자들의 병원 밥상에 올라와도 기업을 위한 FTA는 해야 하고, 약값이 너무 비싸 약을 먹지 못하는 야만의 사회로 가더라도 제약회사의 특허를 강화하는 FTA는 해야 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명의 문제를 특허로 환원하는 가치에 동의할 수 없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에이즈환자에게 요구하는 약값은 월 1,000 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전체 에이즈 감염인이나 환자의 63%가 사는 사하라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전체인구의 44%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2000년 9명당 1명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있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세계 에이즈 총회에서 11살 소년 음코시 존슨은 고가의 에이즈 치료제 정책을 고수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기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수직감염으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는 아기들에 대한 말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 에이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남아공의 소수 백인들은 공공연히 쾌재를 불렀다. “에이즈가 흑인의 인구 증가를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일 것” 이라고. 에이즈가 못 다 이룬 아파르트헤이트가 되길 바란다고.
  필자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정부의 FTA 추진 정책을 접하면 접할수록 FTA 추진론자들의 사고가 남아공 소수 백인 정치인들의 사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단언컨대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가치는 없다. 이윤이냐 생명이냐라는 질문은 사실상 답이 필요 없어 되묻는 말이다. 정부가 기업의 이윤을 위해 FTA를 계속 추진한다면 평범한 많은 우리들은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지 위해 정부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의료는 협상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떤 가치도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