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 2007 케냐 세계사회포럼 참가기

올해도 역시 지난 1월 스위스의 고급휴양지 다보스에서는 각 국의 정부 정상들과 내로라하는 전세계 기업 총수들과의 만찬이 열렸다. 일명 세계경제포럼. 참가비만 개인당 3천 만 원이 드는 이 포럼은 정계, 관계, 재계 고위급들이 참여해 기업 운영에 관한 고급정보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프로젝트’를 논의했고 포럼은 매우 도전적이었고 성과 있게 막을 내렸다고 보도됐다.
그랬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자신들이 경영해온 세계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지금 이 세계가 전쟁과 빈곤의 세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검은 것은 나쁜 것이라 말하고 작은 것은 큰 것을 위해 파괴되어도 좋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그들의 세계를 위한 천연자원의 보급지이고 미개인들이 모여 사는 구호의 대상일 뿐이다. 태초에 세계를 사유화하고자 한 그들에게 작고 검은 것의 아름다움이나 아프리카의 민중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다보스포럼에 모인 기업가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이른바 ‘석학’들은 자신들의 세계 운영체계에 반대하며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며 모인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하는 세계의 사회 활동가들을 대안 없는 미치광이들이라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이 미치광이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빈곤과 전쟁의 세계화라는 전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반영하는 ‘거울’ 과도 같은 아프리카에서 열린 제 7차 세계사회포럼에도 5만 명의 전 세계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이번 케냐 세계사회포럼은 동부아프리카의 중심지인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민중의 투쟁, 민중의 대안 –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을 모토로 개최됐다. ‘아프리카에서 과연?’ 하는 우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잠실운동장과 같은 큰 스타디움 하나를 윗층과 아래층으로 나누고 100여명의 자리마다 천막을 치고 자리를 나누어 행사장을 마련했다. 2천 여 개의 포럼과 600개의 행사장을 마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전쟁

우리가 탄 케냐비행기는 케냐로 갈 때 더 멀리 돌아가야 했다. 한국 발 케냐행 비행기는 소말리아 상공을 지나가지 못했다. 미국이 ‘아프리카의 뿔’ 이라고 불리는 홍해입구 소말리아의 이슬람법정연맹(UIC)이 알카에다와 연관돼 있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미군의 군사지원을 받은 이디오피아군 1만 5천 만 명이 소말리아에 침공했고 아예 미국전폭기가 소말리아와 케냐 국경에 집중폭격을 가했다. 내전으로 점철된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를 석유와 패권을 위해 제 2의 이라크로 만들고 있는 미국행정부와 조지 W 부시는 역시나 케냐, 나이로비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 이번 아프리카 세계사회포럼에서도 “넘버원 테러리스트”는 역시 “조지 W 부시”였다.
세계사회포럼의 개막식 때부터 “Hands off Somalia” “Hands off Africa” “No More War” 는 평화를 바라는 전세계 참가자들의 핵심구호가 됐다. 그리고 이런 반전평화의 요구와 진실에 대한 목소리는 세계사회포럼 행사 내내 이루어져 오후 1시부터 30분 동안 행사장 안을 가득 메우며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택하라는 팔레스타인, 소말리아, 케냐 현지참가자들의 공동 행동과 집회로 매일 이어졌다.

빈곤

세계보건포럼(World Health Forum)이 개최한 포럼의 주제는 “아프리카는 세계의 거울”이었다. 세계사회포럼이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개최된 이유는 아프리카의 문제를 외면하고 우리가 ‘다른 세계’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가 당면한 신자유주의와 빈곤의 문제는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다만 아프리카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뿐.
포럼의 개막 행진은 세계 최대의 슬럼가 중 하나인 키베라(Kibera)에서 시작됐다. 키베라에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100만 넘게 모여 산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다른 세계가 가능해요, 이곳 슬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요” 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우리는 물이 필요해요”라고 외치며 온갖 춤과 노래를 하면서 개막행진에 함께 했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고, 우리의 세계는 상품이 아니라고 함께 외치며 걷는 개막식 내내 나는 그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아프리카를 보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아이들, 가장 불행하게 태어났다고 알려진 아이들, 그 검은 아이들의 눈은 적도의 햇살아래 마치 넘칠 듯 넘칠 듯 찰랑거리는 물항아리 모양처럼 반짝 반짝 빛났다.
폐막식은 카리오방기라는 또 다른 슬럼가에서 행진을 시작했는데 우리 단체는 그곳, 그 슬럼지역에서 준비해 온 물품을 가지고 직접 팻말을 제작했다. 가져간 팻말은 꽤 되었는데 어느새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려져 금새 동이 나 버렸다. 함께 팻말 만들기의 효과일까, 아이들은 어느새 폐막 행진 할 준비를 갖추고 우리 손을 슬쩍 쥔다. 양쪽에 까만 아이들의 손이 꼬옥 쥐어진다.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들은 행진을 시작하면서 함께 외친다.  “전쟁에 돈을 쓰지 말고 집을 지어주세요” “전쟁에 돈을 쓰지 말고 학교를 지어주세요”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꼭 쥔 손을 들며 외친다 “No more WAR” “우리에겐 먹을 음식과 물이 필요해요. 총을 살 돈을 어린이들을 위해 쓰세요” 라고.
우리 단체는 포럼 행사가 다 끝난 후 키베라에 사는 한 노동자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제약회사들의 불법 임상실험 문제를 다룬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 의 무대이기도 한 키베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악취와 썩은 내가 풍기는 쓰레기더미 위에서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왜 도시로 몰려와 이렇게 참담하게 살아가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 참담한 슬럼가라도 와야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케냐의 현실이다. 물이 귀하고 건조한 이 나라에서 그나마 농사를 지을만한 농지는 몇몇 기업들이 수출용 작물을 재배한다. 한국 식당에 고용된 나름대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도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곳이 케냐다. 이들이 하루 한끼 먹는 옥수수 주식 우갈리는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 500원이다. 한 번 먹으면 소화가 안돼 허기증을 못 느낀다고 한국인 교포 한 사람은 알려 준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 이들은 그 옥수수 떡을 주식으로 먹는다. 그곳 노동자들이 먹는 현지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나섰던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케냐에서 전통음식에 대한 체험은 빈곤에 대한 체험과 일치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산다고 하는 케냐도 먹을 옥수수가 부족해 옥수수를 수입한다. 그런데 이런 케냐가 다른 한편 유럽에 수출하는 꽃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결국 몇 개의 기업의 이윤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한 옥수수 재배가 아니라 꽃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유화

키베라에서 본 여러 가지 문제들은 사유화(privatization) 문제를 보다 직접적인 문제로 드러내 보이기에 충분했다. 100만 명이 넘는 슬럼가에 있는 공공기관이라고는 입구에 세워진 보건소 하나였다. 물은 수도관을 공급하는 정부에 1/3, 그 수돗물을 모아두는 물탱크주인에게 1/3, 땅주인에게 1/3의 돈을 내야한다. 당연히 하수처리시설도 쓰레기 처리체계도 없었다. 슬럼가안에 있는 유일한 공공시설이라고는 1901년에 영국이 식민지지배를 위해 놓은 몸바사-빅토리아 호수 철로가 전부였다. 슬럼가에 있는 사립의료기관에서 1년 교육을 받은 ‘(준)의사’가 보여주는 시설은 청진기와 혈압계, 체온계가 전부였고 기본적 항생제도 제대로 없었다. 에이즈치료제? 이 100만명 중에 가장 잘사는 사람이 하루에 1달러로 먹고사는데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들에게 에이즈체료제 약값으로 월 1300달러를 요구한다. 그래서 에이즈로 매일 죽어가는 8천 명의 사람들 중 대다수가 이곳 아프리카에 있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죽어요“ 라는 11살 음코시 존슨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알 약 한알이면 죽지 않아도 될 아이들이 엄마가 알 약 한 알을 먹지 못해 수직감염으로 죽어가는 현실, 이게 다국적제약회사가 다보스포럼에서 미래의 질병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말하며 만찬을 벌이는 동안 지구반대편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다.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는 가능하다

“희망이 없죠. 얘들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예요” “한심하죠. 게으르구요” “아마 얘들의 민족성이 게으른 거 아닌가 싶어요” “IQ가 50밖엔 안된다잖아요”  우리가 나이로비에 있을 때 선교를 위해 케냐에 들어와 있다는 사람들이 지나가듯 한 말들이다.
케냐에 오기까지 나는 아프리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그 나라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왜 그 전에는 이처럼 하지 못했을까? 몇 십년이 넘게 진행되는 앙골라 내전이 정부군은 석유를, 반군은 다이아몬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리고 그렇게 무기와 바꾸어진 다이아몬드를 우리는 영원한 사랑의 서약의 표시로 쓴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다른 아프리카가 가능할까? 아프리카는 인구의 10분의 1을 노예로 잃었어도 살아남았다. 세계사회포럼에서 본 아프리카의 활동가들은 아프리카는 단순한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가장 강조했고 우리가 같이 행진을 하면서 구호를 외친 캐냐의 민중들 또한 그들이 단지 구호대상이 아님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에서 배운 매우 흥겨운 4소절의 노래가 하나 있다. 지금도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혼자 흥얼거린다. 그리고 그 노래의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던 케냐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노래의 시작은 “잠보, 잠보(안녕?)” 라며 웃고 노래의 마지막은 “Kenya is No Problem(No more WAR)라는 뜻을 가진  ”케냐에투 하쿠나 마타타” 로 끝난다. 그렇다. 케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고, 케냐는 그래 괜찮고, 또 다른 케냐는 가능하다. (끝)

변 혜진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