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물 비즈니스’, 더욱 목마른 우리”
[밥&돈·11] 정부, ‘물산업’ 육성 계획 발표
2007-07-31 오후 7:45:13
수도 요금, ‘현실화’하겠다?
정부가 본격적인 ‘물’ 민영화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을 확정·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지자체별 단위로 운영하고 있는 상수도 사업을 권역별로 묶되 하수도사업과 연계 추진키로 했다. 또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민간기업에 수도사업자 지위를 주고 부가가치세 등을 감면해 주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160여개로 나눠진 상수도사업 구조를 오는 2009년까지 30개 이내의 유역권으로 개편하고, 이를 공사화 또는 민영화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2012년까지는 ‘서비스의 개선’과 함께 수도 요금의 ‘현실화’가 완료되도록 한다는 것이다.글의 순서
- “세계 10위권 ‘물 전문기업’ 키우겠다”
- ‘물 비즈니스’로 ‘물 부족’ 해결하겠다?
- “나머지 90%의 물도 시장에서 거래하자”
- “사업성 없는 지역에는 물 공급 안 한다”
- 먼저 ‘상·하수도 민영화’했던 나라들이 돌아선 이유는?
- 다국적 물 기업에 맞서는 토종 기업 만들겠다?
- “모든 문제는 경제 문제다. 그러니까 우리가 결정한다”
- ‘물 사유화’도 FTA처럼…”민주주의는 어디에?”
이는 단순히 국내의 상하수도 개혁에만 관계된 조치가 아니다. 현재 팽창일로에 있는 세계 ‘물’ 시장에 뛰어들 국내의 기업을 키워 이를 ‘전략 산업’으로 삼겠다는 야심찬 계획이기도 하다.
“세계 10위권 ‘물 전문기업’ 키우겠다”
이규용 환경부 차관은 “2015년 세계 물 산업 규모가 1600조 원에 이르고 20여 개의 물 전문기업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할 것”이라면서 “국내는 베올리아, 수에즈 등 선진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만한 물 전문기업이 없어 경쟁력 있는 사업자 육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차관은 “2005년 현재 10조 9000억 원 수준의 국내 물 산업을 10년 안에 20조 원으로 키우고 세계 10대 물 기업에 드는 사업자를 2개 이상 키우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물 사유화 계획은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2004년부터 정부의 경제 관련 부서에서는 현재 지자체 단위로 나누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상하수도 서비스의 대책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는 노력들이 있었다.
마침내 2006년에는 인천 광역시가 상수도 운영을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 베올리아(Veolia)에게 넘기는 일들이 벌어졌었고, 당시 이에 문제를 제기하던 이들은 이 조치가 전국적 규모에서 상하수도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준비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번 발표를 통해 그러한 의혹이 기우가 아니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깨끗한 물이 석유보다 귀하다”
현재 지구촌에서 가장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자원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물’이다. 지표면에 얹혀 있는 H2O의 양 자체가 줄어들었을리는 없다.
문제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깨끗한 음용수 나아가 경작에 쓸 수 있는 관개용수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일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이래 급격하게 진행된 농업 분야에서의 ‘녹색 혁명’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래 전 세계적 규모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격한 산업화 등은 수자원에 대한 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동시에 깨끗한 물의 부존량의 급격한 감소를 동시에 가져오게 됐다.
그래서 이렇게 생명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개선하고 확보할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가 되었고, 이것이 전세계 다국적 기업의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의 장의 하나로 돌변한 것이다.
<포춘>지의 표현에 따르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가 아니라 물이 될 것이다”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가 된 것이다.
‘물 비즈니스’로 ‘물 부족’ 해결하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묘한 논리적 비약이 숨어 있다. 수자원의 부족에 대한 걱정이 UN 등을 통해 지구적 차원에서 제기되고 또 지구적 차원에서의 공동의 노력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이미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러한 “공동의 노력”이 물 사유화를 통한 다국적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일까. 각국 정부의 협력과 여러 공동 사업을 통해서 세계적 규모에서의 수자원 관리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1980년대 이후 지구 정치 경제에서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작동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 즉 고전적인 ‘희소성(scarcity)’의 접근이다.
즉 물이 희소한 자원으로 된 이상 그 희소한 자원이 최적의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관리되고 생산되고 또 분배되는 방법은 그 희소한 자원을 시장의 상품으로 만들어 ‘가격’을 붙이는 것이라는 사고 방식이다.
그래야 무절제한 물 낭비를 막을 수 있고 또 공급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약속됨으로써 서비스의 확대와 개선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시장 만능주의적인 해법이었다.
대학 경제학과의 강의실에서나 나올 법한 이러한 사고 방식이 그런데 전 세계적 차원에서의 하나의 규범(norm)처럼 된 데에는 IMF 특히 세계은행(World Bank)의 공로가 혁혁했다.
세계은행에서 1992년에 나온 <세계 발전 보고서 1992년(World Development Report 1992)>는 이미 수자원을 상품화하여 가격을 붙이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역설하고 있으며, 이후 자신들에게서 돈을 빌어가는 제 3세계 국가들에게 대부의 조건으로 주요 도시나 지역의 상하수도를 민영화하여 서방의 다국적 기업에게 운영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세계 물 포럼 “나머지 90%의 물도 시장에서 거래하자”…21세기 최대 비즈니스
또 그렇게 하여 상하수도의 운영권을 넘겨받는 서방의 ‘투자자’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비용 보전(cost recovery)’이라는 명목(즉 일정한 이윤이 보장되도록 한다)으로 거액의 대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1990년대를 거치면서 지구촌 곳곳의 수자원 관리는 급격하게 민영화되고 그 운영권은 비방디, 벡텔, 수에즈 등 서방의 몇몇 다국적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와 함께 민간 분야에서도 초국적적 범위에서 물 사유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큰 규모의 기획들이 행해진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1996년 결성된 ‘세계 물 위원회(World Water Council)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세계은행과 UN 산하의 각종 기구 그리고 프랑스의 초국적 수자원 기업 수에즈(Suez Lyonnaise des Eaux) 등이 함께 결성한 이 단체는 다년간의 활동 끝에 2000년 3월 헤이그(Hague)에서 과학자, 정부 관료, 초국적 기업, 기업 지원 어용 환경 단체(greenwash) 등 4000명의 명사들이 모인 ‘세계 물 포럼(World Water Forum)’을 조직한다.
특히 이 회의에서는 네슬레, 듀니레버, 하이네켄, ITT, DVH, 아주리, CH2M Hill, 수에즈 등 다양한 업종의 굴지의 초국적 기업들의 입장과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한 3페이지에 걸친 ‘특별 CEO 성명서’가 나오게 된다. 그 주요 골자는 물은 경제적 재화로서 그것에 적정한 가격을 매기는 것만이 최상이자 유일한 수자원 관리 방식이라는 것이며, 또 전 세계의 수자원 관리 개선에 필요한 엄청난 자본을 조달할 주체는 기업 밖에 달리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국제 기구와 민간 차원에서의 이론적 실천적 공세 속에서 전 세계 ‘물’ 시장은 2001년 당시에 이미 4조 달러를 넘는 초국적 기업의 비즈니스의 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오로지 민영화 된 영역의 크기만을 나타낸 것으로서, 아직 세계 전체의 물 사용량의 10%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머지 90%의 수자원을 사유화하여 그것을 영리 활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야말로 21세기 최대의 비즈니스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한 잠재력을 갖는 것이었다.
그 이후 물 사유화는 끝없는 논란과 갈등 속에서 지구촌 전체를 휩쓰는 비즈니스로서 그 규모를 확장해왔다.
“사업성 없는 지역에는 물 공급 안 한다”…물값, 450%까지 뛰기도
▲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상·하수도를 민영화하여 다국적 물 기업에 맡겼다. 그 결과, 이들 나라에서 ‘깨끗한 물’은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됐다. 사진은 케냐 나이로비 근처의 빈민가. ⓒ엄기호
하지만 쉽게 예측할 수 있듯, 이렇게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생명 활동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물을 사유화하여 영리 기업의 사업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곳곳에서 숱한 문제와 때때로 엄청난 저항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물의 공급은 공공성이라는 성격이 가장 두드러진 서비스의 하나이다. 그런데 운영을 맡은 기업들이 그러한 공공성을 최상의 가치로서 염두에 두고 과연 수자원 운영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수자원이 민영화된 곳곳에서 제 3세계이고 선진국이고를 가리지 않고 수도값의 인상, 서비스의 저하, 채산성이 보장되지 않는 농촌 등의 지역에 대한 서비스 중단, 시설 투자의 저하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벌어지게 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몇 개인 볼리비아에서의 벡텔의 행태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코차밤바의 쓰디쓴 승리와 그 교훈” 참조)
아르헨티나에 들어갔던 수에즈는 새로운 하수처리장을 설치하겠다는 계약 의무를 위반해서 95퍼센트 이상의 도시 하수가 그대로 리오 델 플라타(Rio del Plata) 강으로 쏟아져 들어간 적도 있다.
국가의 규제 당국의 경고는 이들의 횡포 앞에 쇠 귀에 경읽기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수도가 민영화 된 도시의 수도값은 그렇지 않은 도시보다 30% 정도 비싼 가격이 되었다고 한다.
대처 수상 시절부터 가장 먼저 물 민영화를 시작한 영국은 한때 450%까지 물값 인상이 벌어진 적이 있었으며, 수도 시설의 낙후와 투자 부재로 인한 서비스 저하에 고질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먼저 ‘상·하수도 민영화’했던 우루과이와 네덜란드, ‘민영화 금지’로 돌아서
이렇게 온갖 모순과 갈등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아예 법으로 물의 사유화를 금지하는 나라들도 나타났다. 우루과이와 네델란드다.
우루과이는 이미 두 개 지역에서의 상·하수도 운영을 민영화한 적이 있었으나 이것이 숱한 문제를 낳은 바 있었다. 그런데 IMF가 추가적인 대부의 조건으로서 더 많은 상·하수도의 민영화를 요구한 데에다가 WTO나 FTAA 등 여러 자유 무역 협정이 진행되면서 아예 전 나라의 상·하수도가 민영화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온 나라를 사로잡게 된 것이다.
이에 우루과이 국민들은 2004년 10월 31일에 시행된 국민 투표에서 62.75%의 찬성으로 아예 헌법을 개정하여 “인간이 소비할 물과 하수도의 공공 서비스는 오로지 국가 법인에 의해서만 공급될 수 있다”는 규정을 명문화한 바 있다.
또 같은 날 벌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러한 헌법 개정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좌파 정당 EP-FA 의 후보 타바레 바즈케즈(Tabare Vazquez)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그의 정당이 상하 양원에서 절대 다수를 획득하는 일이 벌어졌다.
네델란드에서도 1997년의 정부 보고서 이래 수도 공급 민영화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계속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이 마시는 물의 서비스는 오로지 “자격을 갖춘 법인(gekwalificeerde rechtspersoon)”(국가 기구이거나 국가가 100% 소유권을 가진 공기업을 의미)만으로 제한한다는 법을 2003년 12월과 2004년 9월 각각 양원에서 통과 시켰다.
물을 볼모로 얻은 이익, 또 하나의 불로소득
이러한 다국적 기업에 의한 상·하수도의 운영이 그나마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 그리고 남미의 오지에서와 같이 안정된 상·하수도의 공급을 위해서는 상당한 자본이 필요하지만 해당 국가가 그러한 자본을 투하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경우들이다.
이 때는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초국적 기업의 투자라도 받아들여서 당장 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생활을 좌우할 수 있는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어쩌면 우선적인 선택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세계적인 물 사유화는 이러한 자본의 그나마의 ‘생산적 기능’을 통해서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초국적 기업들이 그러한 대규모의 투자를 그에 상당하는 확실한 보상의 약속이 없이 행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이들이 이윤을 취하는 원천은 대부분 수자원이라는 인간과 사회의 존속에 필수불가결의 요소를 볼모로 움켜쥔 사회적 권력을 담보로 한 일종의 ‘지대(rent)’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산 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이 아니라 부동산 임대 수익과 같은 불로소득에 가까운 셈이다.
따라서 상·하수도를 민영화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률적인 답을 할 수가 없다. 최소한 구체적인 상황과 실정에 비추어서 그것을 공공 서비스로 공급할 경우 그리고 민영화할 경우 각각에 따르는 경제적·사회적·인간적 비용을 폭넓게 고려하여 신중하게 생각할 문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다국적 물 기업에 맞서는 토종 기업 만들겠다?…민영화 고통은 어쩌고
이제 2007년 한국의 조건에서 우리가 과연 그러한 상·하수도의 민영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인천 시민들의 뒤를 따라 곳곳에서 베올리아나 벡텔 수에즈 등의 실로 악명높은 다국적 기업들에게 상·하수도를 내어줄 이유가 있는가.
정부 관계자들은 다국적 기업이 아닌 ‘토종’ 기업들에게 상·하수도 운영을 맡겨서 이를 통해 지구적 물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전략 산업을 키우는 것이 취지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겨우 한국 정도 규모의 물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이미 전 세계 물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에 맞설 ‘플레이어’를 키울 수 있다는 발상의 황당함에 기가 질릴 뿐이다.
게다가 정부가 한 쪽에서 추진하고 있는 미국과 EU와의 FTA를 생각해보라. 벡텔, 베올리아, 수에즈 등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들이 과연 그렇게 한국에서 새로 열릴 물 시장이 ‘토종 기업들’에게 돌아가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것인가.
백 번을 양보하여 그렇게 전 세계 물 시장으로 뻗어나갈 토종 물 기업이 나타난다고 해 두자. 그러한 기업 한 두 개를 키우기 위해 국민들 전체가 상·하수도 민영화의 고통을 그냥 감당하라는 것인가. 그 대가로 국민들이 얻게 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경제 관료, 선출되지 않은 권력…”모든 문제는 경제 문제다. 그러니까 우리가 결정한다”
하지만 상하수도 민영화에 따른 편익과 비용에 대한 분석은 이 글의 초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정말로 심각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그것은 한미 FTA 의 추진과 더불어 이번 물 사유화 방침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 경제 관료들의 독선과 전횡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국가 형태(state form)의 특징 하나는 경제 관료들의 권위주의적 독주이다. 행정부 수반과 입법부 구성원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여 국가 관료 기구의 운영을 지시하고 통제하고 감시한다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얼개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체제에서 거의 유명무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의제들이 논의되는 언어의 틀이 거의 전면적으로 경제적 차원에서의 비용과 편익이라는 소위 ‘합리성’과 ‘효율성’의 문제로 바뀌게 되면서, 국민들간의 합의나 여론과 같은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삼는 각급 선거 등은 사실상 무력화되고 말았다.
그 자리를 메꾸고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은 경제 관료들이다.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각종 경제학 개념과 수치와 통계로 무장하고서 모든 중차대한 사회적 사안들을 다 경제적 합리성의 문제인 것처럼 바꾸어 자신들의 소관으로 삼아버린다.
그리고 일단 문제가 그렇게 기술 관료적(technocratic)인 것처럼 바뀐 이상, 여기에 ‘비전문가’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는 것은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또 아예 그런 의견을 듣거나 토론할 필요조차 거부해 버린다.
그래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이 관료 특히 경제 관료들은 만사가 다 돈과 경제의 문제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에 아무도 통제할 엄두를 내지 못할 권력으로 비대화한다.
‘물 사유화’도 FTA처럼 밀어붙이는 그들…”민주주의는 어디에?”
김대중 정부 멀게는 김영삼 시대부터 시작된 이러한 경제 관료들의 권력의 비대화와 전횡의 예를 특히 우리는 지난 1년간의 한미 FTA 의 진행 과정에서 뼈저리게 실감한 바 있다.
경제적 전문성은커녕 때로 언어 능력조차 의심스런 관료들이 “FTA 거부는 쇄국론이다” “우리는 장보고의 후예이므로 할 수 있다”는 등의 온갖 기상천외한 선동을 해가며 수많은 이들의 경제적 안녕을 좌우할 미국과의 경제 통합을 일사천리로 결정하는 모습은 실로 경악 그 자체였다고 할 것이다.
이제 그 경제 관료들은 우리들 생활의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는 ‘물’의 사유화마저 일방적으로 일사천리로 결정하려 들고 있다. 우리의 상·하수도를 건설한 것도 또 운영해온 것도 우리가 낸 세금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에 어떤 하자와 문제점이 있건, 그것을 민영화이건 공공투자의 강화와 운영 방식의 개선 등 어느 쪽의 방식으로 해결할지는 국민들 스스로가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하여 선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그 미래도 불확실한 추측에 근거한 몇 가지 수치를 놓고 벌어지는 이익과 비용의 계산으로 몇몇 관료들이 결정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공영화이건 민영화이건 각각의 경우에 어떠한 비용과 위험과 또 사회적·철학적 의미가 있는지를 국민들 스스로가 많은 토론 속에서 납득하고 또 결단해야 할 문제이다. 어느 쪽으로 판결이 나건 결국 ‘수도값’을 계속 지불한 주체가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 관료들의 독선과 전횡은 과연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한미FTA가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 우리들의 상하수도가 국내외의 영리 기업들에게 이윤 획득의 볼모로 넘어가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결정들이 그 피해의 대상이 되는 몇 천만의 국민들은 아무도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상태에서 과천 어디의 광화문 어디의 몇몇 관료들의 뜻에 따라 결정되고 실현된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도대체 경제 관료들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이 과연 무슨 힘을 갖는가를 따져보아야 할 중대한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