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세, 안데스 선거혁명 앞에 무기력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의 대선 승리의 의미와 전망
원영수(노동자의힘)
12월 18일 일요일 볼리비아 대선에서 좌파후보인 에보 모랄레스가 51%의 득표[비공식집계]로 볼리비아 사상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는 코카재배 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에보 모랄레스 개인과 그의 정당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의 정치적 승리를 넘어, 볼리비아 민중의 역사적 승리였다. 더불어 1980년대 이래 20년간 볼리비아에 강제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볼리비아 민중의 정치적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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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난 2000년 코차밤바 물사유화 반대투쟁(“물전쟁”)으로부터 촉발된 볼리비아 민중운동과 사회운동 진영의 에보 모랄레스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다.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폭발한 주요 대중투쟁에서 모랄레스와 MAS가 보여준 정치적 태도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정치 영역에서 볼리비아 민중, 특히 원주민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모랄레스와 MAS는 투쟁의 급진화 속에서 높아지는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여, 초국적자본에게 넘어간 천연가스 등 자원의 재국유화, 진정한 민중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제헌의회(2006년 7월 소집예정), 빈곤 척결과 민중생존권 쟁취 등의 긴급한 과제를 국내외 반동세력의 저항을 넘어 실천하느냐 여부가 볼리비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번 선거의 주요한 특징과 양상
볼리비아의 이번 선거는 대통령과 하원의원 선거와 주지사 등 광역지방선거가 동시에 실시되는 선거였다. 총선결과에 따라 대통령과 하원의석이 확정되는데, 과반수 정당이 없는 경우 하원의 과반수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의 최대득표가 37%였던 만큼, 에보 모랄레스와 MAS의 승리는 충분히 예견되었지만, 단번에 과반수 득표로 확정되리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획득한 51% 득표는 볼리비아 정치사상 상당히 획기적인 사안이었고, 경쟁상대였던 호르헤 키로하는 투표 종결 직후 모랄레스의 승리를 깨끗이 인정했다.
당초 30-35%대의 지지율에 비추어, 이번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로 당선된 것은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상대후보의 선거캠페인과 미국정부, 세계은행과 IMF 등 국제금융기구, 초국적자본 등의 압박을 고려할 때 상당한 대중적 지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전국적으로 1백만여 명의 유권자가 선거명부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거부당하는 광범한 선거부정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모랄레스의 압승은 단순한 과반수 득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더불어 이번 선거의 주요한 양상은 1952년 민중혁명을 주도했던 민족혁명당(MNR)과 전임 반세르 대통령의 ‘민족주의민주행동’(ADN), 주도적 좌파정당 ‘혁명적 좌파운동’(MIR) 등 기성정당이 몰락했다는 점이다. 볼리비아의 정치구도는 상대적으로 신생정당인 MAS, 호르헤 키로하의 ‘사회정치권력’(Podemas), 산타크루즈 지역정당 등이 주도하는 양상의 정치적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이는 민중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담합한 기성 제도정치에 대한 볼리비아 민중의 심판이었다.
정치적 배경 –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투쟁의 폭발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로의 선회는 볼리비아 사회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폭력적인 산업구조조정은 다수의 광산노동자를 실업자로 전환시켰고, 이들은 집단적으로 농촌으로 이주하여 코카재배 농민으로 정착하였다.
더불어 악화되는 도시환경 속에서 물사유화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2000년 코차밤바 물전쟁으로 폭발했다. 볼리비아 남부의 중심도시인 코차밤바에서 상하수도 관리가 초국적자본 벡텔사에게 넘어가면서, 사용료 폭등에 반발한 민중폭동은 수개월에 걸친 강력한 투쟁 끝에 이 투쟁을 주도했던 ‘물과 생명수호를 위한 코차밤바 조정위원회’의 주도 하에 상하수도의 공공관리체제를 확립한 바 있다.
또한 복귀한 산체스 로사다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2003년 2월에 엘알토와 라파스 민중은 강력한 도로봉쇄와 가두투쟁을 중심으로 민중봉기로 맞섰다. 그리고 그해 9월에는 볼리비아 천연가스를 페루의 항구를 통해 미국에 수출하려는 계획에 맞서 전민중적 봉기가 폭발했다. 전국적인 도로봉쇄와 가두투쟁에 무차별진압으로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정권과의 정면대결 속에서 민중학살의 주범 산체스 정권이 붕괴했다.
2003년 9-10월의 이른바 ’1차 가스전쟁’(붉은 10월)은 역대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 거부함과 동시에,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에 의해 수탈된 주석, 금, 구리.. 등의 천연자원에 이어 라틴 아메리카 2위의 보유고를 자랑하는 천연가스의 수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볼리비아 민중의 역사적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이로써 산체스의 전임 기간중 체결된 초국적 자본과의 계약을 원천적으로 무효화하고 민중적 국유화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전민중적 의제로 제출된 것이다.
로사다의 부통령으로 그의 사임이후 정권을 승계한 카를로스 메사는 대중투쟁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치적 제스쳐를 취하면서, 정국안정화를 도모하는 한편 국유화 문제를 2004년 6월의 교묘한 국민투표를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1차 가스전쟁에서도 방관적 입장을 취했던 모랄레스는 메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통해, 민중진영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 결과 2005년초 볼리비아 노총(COB)는 모랄레스를 제명하기도 했다.
2005년 5-6월 메사정권이 초국적자본의 소유권을 승인한 채 기만적으로 로열티만을 부분적으로 인상하는 석유자원법(“탄화수소법”)을 국회에 상정하자 다시한번 볼리비아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다.(2차 가스전쟁) 초국적자본의 수중에 들어간 천연자원의 완전한 국유화와 볼리비아 중심의 석유산업발전을 요구하는 전국적 민중투쟁 앞에, 볼리비아와 국제자본 간의중재자를 자처했던 카를로스 메사에게 설 자리는 없었다.
볼리비아 민중운동과 에보 모랄레스
2000년 이후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주도한 민중운동은 크게 산업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당한 광부들의 코카재배 농업노조운동(CSUTUB) 및 원주민운동(에보 모랄레스의 MAS 및 파차쿠티 원주민운동[MIP]), 2000년 코차밤바 및 2005년 엘알토 물사유화 반대투쟁을 주도한 지역빈민운동(FEJUVE), 광산업의 구조조정으로 비록 약화되었지만 광산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노총[COB] 및 지역본부[COR]) 등이다.
MAS의 에보 모랄레스와 MIP의 펠리페 키스페는 코카 농민운동과 원주민운동에서 상호경쟁하는 적대적 분파였다. MAS는 정치세력화를 통해 제도권에 진입한 반면, 키스페는 제도정치보다는 원주민 분리주의 경향이 강한 운동을 이끌었다. 지난 2003년 10월투쟁의 경우, 키스페가 주도적 역할을 한 반면, 모랄레스와 MAS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었다.
특히 산체스 로사다의 퇴진 이후, 카를로스 메사에 대한 정치적 태도에 있어 양측의 분열은 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메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입장을 취했던 에보 모랄레스는 민중운동 진영으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고, 2004년 가스국유화 국민투표에서 대다수의 운동진영이 기만적 국민투표 보이코트를 선언한 상황에서 모랄레스만이 찬성캠페인의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에보 모랄레스가 메사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5-6월 민중봉기에 동참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메사퇴진 이후 12월대선 일정이 확정되면서, 모랄레스는 선거전에서 민중투쟁의 후광 속에서 민중적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민중운동 진영은 민중운동의 중심성과 아래로부터 풀뿌리조직화의 원칙적 관점에서 모랄레스 및 MASf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여, 선거직전인 12월 10일 라파스에서 열린 노동운동 회의에서 노총과 지역본부 등 대표자들은 석유자원의 무조건적 국유화와 제헌의회의 소집 등 당면한 과제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을 선언하였다.
선거전과 미국의 개입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신인 정치인 에보 모랄레스가 약진하자, 미국대사 마누엘 로차는 만약 에보 모랄레스가 승리하면 미국은 볼리비아에 대한 경제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망언으로 오히려 모랄레스의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2002년 대선에서 모랄레스는 산체스 로사다에 불과 1.5% 뒤진 득표로 2위를 차지했었다.
이번 2005년 대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은 여론조사에서 모랄레스가 부동의 1위를 지키자, 연이어 볼리비아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발표하여 볼리비아 선거를 압박했다. 더불어 모랄레스를 “제2의 차베스”로 지목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후퇴시키는 “악의 축”에 포함시키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미국과 우파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역사적 계급투쟁과 그로 인한 대중정치의식의 변화를 저지하지 못하고, 안데스 선거혁명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볼리비아에서 200km 거리인 인근 파라과이에 최근 배치된 미군은 미국의 정치군사적 의지의 상징이며, 비록 선거혁명을 통해 표현된 볼리비아 민중의 반제국주의는 아직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향후 전망 – 차베스와 룰라, 구티에레스 사이에서
모랄레스의 지지자들은 일종의 선거전략으로 에보를 볼리비아의 체게바라로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 반면, 반대파는 그를 나쁜 의미에서 볼리비아의 ‘차베스’로 몰아부쳤다. 그러나 모랄레스는 체 게바라가 아니다. 그는 과거 코카농민운동의 지도자이자 활동가에서 제도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오래다. 그러나 우익과 미국정부, 보수언론은 게바라와 차베스를 동원한 모랄레스 악마화 캠페인을 집요하게 전개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모랄레스가 “미국의 악몽”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반미-반자본주의의 축을 형성하리라는 것은 과도한 단순화이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새로 출범할 모랄레스 정권은 향후 진로는 차베스의 길과 룰라의 길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정치적 행보, 특히 미국과 초국적자본에 대한 타협적 자세와 구체적 선거공약을 검토하면, 그가 룰라형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편 문제의 핵심인 천연가스 국유화 문제에 대해 민중적 국유화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모랄레스가 민중봉기의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가 IMF 및 친미 과두세력과의 야합 끝에 축출당한 에콰도르 구티에레스의 길을 따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현상황의 열쇠를 쥔 것은 바로 볼리비아 민중과 운동진영이다. 브라질의 경우 룰라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미명 하에 동원투쟁전략을 포기한 브라질 민중사회운동이 무력화되는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민중투쟁을 주도한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진영(MAS를 제외한)은 모랄레스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과연 새로운 모랄레스 정권이 과연 ’10월의제’에 대한 민중적 해결을 추구하느냐 여부가 볼리비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