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들의 반격(2)

세균들의 반격(2)

Laurie Garrett,The Coming Plauge 13장, Penguin Books,1995,

20세기의 지난 수십년 동안 내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뿐만 아니었다.

“수년전에 비해서 지금 말라리아의 위력은 더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탄자니아 국립의학연구소장인 웬 킬라마Wen Kilama는 말하고 있다.그와 그의 전임자들은 서방국가의 전문가들이 제안한 말라리아 통제대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지난 10년간 탄자니아의 보건예산의 10%를 말라리아 통제에 쏟아부었지만 상황은 그의 전임자의 1956년 보다 지금1986년의 시점에서 더 악화되어 있었다.

“병원의 입원환자의 10%이상이 말라리아환자입니다.그리고 외래환자의 10%도 말라리아환자이구요.사망자의 비율에서 본다면 훨씬 더 높습니다.말라리아가 어느때 보다도 심각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고 킬라마는 말한다.

10년전 처음으로 클로로킨chloroquine내성 열대성 말라리아원충Plasmodium falciparum이 탄자니아에 출현했다.1986년 현재 말라리아들의 대부분이 어떤 치료에도 내성을 갖고 있다.킬라마도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말라리아에 걸려 고역을 치렀으나 다행히도 그 때는 클로로킨내성균이 출현하기 전이었다.킬라마와 같은 생존자도 말라리아에 대한 자연면역력이 약해 스트레스를 받게되면 말라리아열 때문에 자리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나라에서 만성 말라리아환자가 아닌 사람은 드뭅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비록 탄자니아의 경우를 말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인도남부,라틴아메리카의 아마존지역,오세아니아대륙의 대부분,중국의 남부 등도 같은 사정이라고 말한다.세계인구의 대부분이 말라리아가 풍토병인 지역에 살고 있다.

낙관론자들이 말라리아기생충을 지구에서 몰아내기를 희망하면서 말라리아 박멸작전에 들어간 이래 지구의 상황은 더 심하게 악화되어 왔다.사실 말라리아와 연관된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1960년대 보다 1990년대에 훨씬 더 많다.

예를 들면 범미보건기구Pan American Health Organization와 브라질 정부는 1960년경 브라질내의 말라리아환자수를 거의 제로 레벨로 내리는데 성공한적이 있었다.그러나 1983년 297,000명이 말라리아로 입원했으며 1988년에는 그 수치가 2배로 뛰어 올랐다.DDT와 다른 살충제들의 광범위한 살포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인 Anopheles darlingi는 금이나 보석을 찾아 이 아마존 지역으로 몰려들어오는 사람들을 물어뜯어면서 번성하고 있다.이제 상황은 완전히 통제밖에 있다.1989년 브라질의 말라리아환자가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지역의 환자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약 200명의 브라질인 환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말라리아원충을 조사한 결과 아마존에서 분리된 원충의 84%가 클로로킨에 대한 내성을 가졌으며 73%가 아모디아퀸amodiaquine에,그리고 거의 모든 원충들이 판시다르Fansidar(sulfadoxine과 pyrimethamine의 합성제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내성을 보여주었다.이제 브라질에서 말라리아에 유효한 약이 딱 한가지 남아 있는데 그것은 멜플로퀸melfloquine이다.

1990년경에 세계의 말라리아환자의 80%가 아프리카인이었고 사망자의 95%가 아프리카대륙에서 발생했다.5억의 아프리카인이 해마다 심각한 말라리아증세를 앓고 있고 원충을 가진 모기에 200-300회 물리고 있다.100만명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이 질병으로 죽고 있지만 이 대륙 전체에 걸쳐 주요 항생제들이 이제 효력이 없다.

최초로 보고된 환자는 1978-1979년에 탄자니아와 케냐에 사파리여행을 온 백인여행객이었다. 1981년에 오면 말라리아 창궐지역에 살고 있는 캐냐의 어린이들에게 .클로로퀸의 약효가 떨어지고 있었고 증세를 호전시키기위해서는 그 약의 대량 투여가 필요해졌다.그 2년뒤 진짜 내성 원충이 케냐에 출현하였고 실험실에서의 테스트결과 P.falciparum기생충의 65%가 클로로퀸에 대해 내성을 보여주었다.

클로로퀸의 복용동안에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약을 먹어도 병세를 호전시키는데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보고가 아프리카 전역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보건담당자들은 이 클로로퀸이 얼마 동안 유효한 약으로 남아 있을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이 약은 지금까지 항말라리아제로서 효능이 가장 좋으면서도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킬라마와 다른 아프리카국가의 보건관계자들은 모기통제대책을 시행했지만 모기들은 이 살충제들에 대해 급속히 내성을 획득했다.그들은 모기가 알을 깨고 부화하는 물웅덩이들을 없앨려고 했다.그러나 킬라마의 말처럼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하마의 발작국이 만들어 놓은 웅덩이안에서도 수천개의 알을 깔 수 있는 그놈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우기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킬라마와 그 연구진들은 탄자니아의 적도지역 북부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 클로로퀸내성을 정기적으로 체크했다.그리고 1980년과1990년 사이에 그 약에 대한 원충들의 감수성이 대수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경악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설상가상으로 melfloquine과 pyrimethamine에 대한 내성도 보고되고 있었다.

미질병통제국(CDC)은 1985년 아프리카에 널리 분포해있는 약제내성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휴대용 도구를 개발했다.즉시 내성출현의 패턴이 밝혀졌다.이 문제의 발원지는 동부아프리카의 해안지역 특히 잔지바르,몸바사 그리고 Dar es Salaam 일대에서 시작되었다.이 지역에서 2가지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하나는 인도와 같은 약제내성이 높은 지역으로 빈번하게 왕래하는 아시아인들의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합법적으로 또는 암시장을 통해 클로로퀸을 쉽게 입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여기서부터 내성은 케냐,탄자니아,말라위,잠비아,자이레,브룬디,르완다,우간다를 연결하는 적도의 무역로를 따라 퍼져 나갔다.이것은 에이즈가 전파된 경로이기도 하다.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말라리아원충Plasmodium falciparum을 조사해본 결과 내성을 포함한 돌연변이는 일단 출현하면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어간다는 것이다.이 저항성 메카니즘은 몇가지 다른 유전자들과 연관되어 있다.부분적 감수성의 상실(내성의 획득)은 점돌연변이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전체적 내성은 그 돌연변이들 몇가지가 합쳐서 만들어진 것이다.부분적으로 감수성이 없는 점돌연변이가 출현하면 곧이어서 완전한 내성의 돌연변이가 나온다.

이 돌연변이체는 통상의 말라리아원충들에 비해서 실험실 배양에서 더 빨리 성장하는데 이것은 어떤 유형의 독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내성은 클로로퀸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지역에서 뿐 아니라 그 약을 거의 복용하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이 돌연변이와 그것의 출현이 높은 강도의 선택압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이 이 약의 유효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정책당국이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에 대한 아주 곤혹스러운 과제를 던져준다.

1990년에 들어가면 클로로퀸 내성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지역에서 예외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것으로 된다.이 내성균주는 또한 키니네와 같은 약제에도 감수성을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아마 이 두 약간의 화학적 구조의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1988년과 1990년 사이에 새로운 질병이 동부와 중앙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는데 성인에게 감염되는 치명적인 腦性말라리아(cerebral malaria)이다.어린시절 동안 말라리아에 어느 정도 면역을 얻은 사람들이 갖 성인이 되었을 때 갑자기 원충이 뇌를 감염시켜 고열과 발작이 일어나게 된다.발병과 죽음이 아주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뇌염 말라리아 환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어린 시절 매일 수시로 모기에 피를 빨리던 시골을 떠나서 도시로 이주해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일년에 한번 친지들을 방문하기위해서 시골로 되돌아오는데 이 때 다시 모기에 재노출된다.이 도시거주자는 아프리카인이기는 하지만 백인 여행객이나 마찬가지로 말라리아에 취약하다.왜냐하면 모기와 규칙적으로 접촉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이 원충에 대한 면역은 12달안에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말라리아에 노출된적이 있었다더라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면역은 만들어지지 않는다.이것이 영구면역이 얻어지는홍역과 다른 점이다.

미질병통제국의 켄트 켐벨Kent Campbell,조 브레만Joe Breman,조 맥코믹Joe McCormick은 1980년대 말경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말라리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말라리아란 무엇인가?”캠벨은 물었다.”어떤 집단이 거의 모두 감염되고,주기적으로 발병한다면 우리가 말라리아라고 부르는 그 질병은 도대체 정확히 무엇인가?”

이것은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질문은 아니다.1980년대 후반에 미질병통제국의 과학자들과 아프리카의 그 파트너들은 그 대륙에서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그 위험한 말라리아질병의 패러다임을 목도하고 있었다.어린이에게 열이 난다면 부모는 즉시 클로로퀸을 먹인다.이 약은 정부의 의료기관이나 암시장에서 쉽게 입수할 수 있다.그 어린이는 열이 내리겠지만 부분적으로 약제내성을 가진 그 기생충은 그 몸속에 남아있다.강력한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없게 됨에 따라 말라리아로 인한 한바탕의 발작이 일어나고 클로로퀸이나 키니네를 더 많이 복용하게 되고 그 기생충은 계속 그 몸에 살아있게 된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생충은 적혈구세포에 큰 손상을 입히면서 혈액속에서 생명에 위험한 수로 까지 증식하게 된다.

10년전 까지는 모든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은 생후 첫주안에 살 수 있을 것인지 죽을 것인지가 결정되었다.용케 살아남는다면 그 위험은 성인들의 위험수준으로 줄어든다.1980년대 후반에 클로로퀸의 도움으로 수만명-아마 수백만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초기의 말라리아 발작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아서 생후 여섯달이후에서 9세가 될 때 까지 일어나는 치명적인 빈혈증의 단계로 이행해 갔다.

어린이들이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은 혈액을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을 -가능한한 빨리 그의 체내로 수혈하는 것이다.

1985년 킨샤샤의 Mama Yemo 병원에서는 이러한 소아를 대상으로한 수혈을 1,500회 행하였고 이듬해에는 6,000건을 행하였다.

1986년에 이 마마 에모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 가운데 세명에 한명꼴로 클로로퀸 내성균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 시점은 또한 킨샤샤에 소아 에이즈환자가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빈혈발작이 일어나면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경쟁은 초를 다투게 된다.가난한 아프리카의 병원이라 하더라도 헌혈받은 피를 테스트해볼 도구는 갖고 있다.그러나 의사에게는 시간이 없다.혈액형이 일치하는 친척과 같은 사람이 확보되면 관을 환자와 헌혈자사이에 연결해 피를 직접 수혈하는 것을 아프리카의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이 병원에서 이런 방법으로 수혈을 받은 어린이 200명을 조사해본 결과 그 가운데 13%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었다.

“의사들은 자신들이 에이즈를 수혈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의사들은 이 어린이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일차적인 것이다.그것은 하나의 모험이고 실제 그렇다.그들은 매일매일 들어오고 죽어서 나가는 것을 본다.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실행하고자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고 캠벨은 설명한다.

데이비드 헤이만David Heymann은 말라위에서 임산부에서 기생충을 구제함으로 태아가 감염된채 태어날 가능성을 줄이는데 약을 사용할 수 있는지 또는 모유를 먹는 유아에게 강력한 항체를 넘겨주기 위해서 엄마의 면역계를 자극하는 약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장실험을 실시하고 있었다.임산부의 몸에서 기생충을 구제하는데 드는 항말라리아의 약값은 약 10달러이다.일년 1인당 의료비가 3달러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너무 비싸다.그렇다고 신생아에게 클로로퀸이나 키니네를 주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데 동부아프리카의 촌락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은 한달에 50회에서 80회까지 감염된 모기에 물리고 있기 때문이다.그 반이 말라리아로 발전한다.

동시에 아노펠레스모기의 서식영역은 확대되어 가고 있다.보통 말라리아가 살수 있는 환경의 온도와 고도의 폭은 좁다.이상적인 서식지는 열대지역에 고도가 해면수위와 같은 곳이다.그러나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시골과 도시사이를 왕래하게 된다.이 아노펠레스모기는 미답의 지역을 개척해 들어갔다.헤이만은 인간이 밀집해 있는 저지대에서만 서식하던 그 질병과 아노펠레스모기가 르완다에서 팽창해가는 것을 목격했다.유사한 현상이 스와질랜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저지대의 과일통조림산업이 번성함에 따라 고지대의 사람들이 저지대로 몰려들어왔다. 면역이 결핍되어 있는데다가 내성을 가진 원충들에 감염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그러나 운좋게 살아남은 몇사람들은 자신의 몸속에 이 기생충을 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지역의 모기가 이 사람을 물었을 때 이 말라리아 원충은 새숙주로 옮겨가게 된다.이렇게 해서 말라리아의 서식영역이 고지대로 팽창하게 되었다.

아틀랜타의 질병통제센타로 돌아온 캠벨은 여전히 “말라리아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사실 모든 아프리카인들은 유아시절의 대부분 동안 말라리아에 감염되어진다.그것이 말라리아라고 할 수 있는가?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결론내렸다.감염된 어린이가 발열을 할 때 그것이 말라리아인가? 역시 그렇지 않다고 결론내렸는데 다른 많은 병들도 어린이의 몸에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말라리아 기생충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특정 기생충이 어린이의 열의 원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모든 열을 그것이 말라리아라 생각하고 계속 치료할 수 없다.약의 재고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고 캠벨은 말한다.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도 기생충의 적혈구내 증식주기인 24시간에서 48시간이내에 열이 얼핏 나타났다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학회에서 계속 이러한 질문을 던지자 처음에 동료학자들은 불신섞인 눈으로 받아들였다.어떻게 미국을 대표하는 말라리아 전문가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캠벨은 그가 소박한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개의치 않았다.

많은 다른 질병들은 특정 미생물에 대한 항체의 출현에 의해서 정의되어진다.그러나 캠벨은 이러한 방식으로 말라리아를 정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생충에 대한 면역이 기이하게도 곧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transient nature of immunity to the parasite)

말라리아의 원충이 암컷 아노펠레스 모기의 주둥이를 통해 인간의 혈액속으로 주입될 때 이것은 작은 스포르조이트sporozoite의 형태로 있다.이 스포르조이트는 표면에 특별한 단백질 항원을 갖고 있다.이 기생충은 생활사의 각 단계-쉬존트schizont,메로조이트merozoite-마다 세포막에 다른 형태의 항원을 갖고 있다.기생충의 성장의 각 단계마다 다른 종류의 항원을 제시하기 때문에 인간의 면역계는 눈이 멀게 된다.그것은 어떤 단계에 대해서는 항체를 만들지만 다른 단계에 대해서는 만들지 않는다.또 어떤 단계에서는 T세포의 면역반응을 일으키지만 다른 단계에는 일으키지 않는다.

스포르조이트기의 말라리아는 특히 이상한 면역반응을 유도한다.혈액속에는 수백만개의 항체가 떠다니고 있고 또 스포르조이트에 부착되어 있지만 그래도 말라리아를 죽일 수 없다.한 중요한 연구는 오염된 모기에 계속해서 노출되고 있으면서도 생존하고 있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면역”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케냐인 성인들에 대한 연구이다.자원자들의 몸속의 기생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클로로퀸과 판시다르가 투여되었다.그리고 그들의 항스포로조이트의 항체의 농도가 측정되었다.그리고 무슨일이 일어나는가를 보기위해 98일 동안 그들의 상태를 추적했다.

연구가 끝났을 때 면역을 갖고 있다고 간주된 성인들의 72%가 원충에 감염되어 있었다.작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100%가 감염되어 있었다.감염될 확률과 혈액속의 항말라리아항체의 농도간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실험실연구나 동물실험에서 T세포 특히 CD4라 불리워지는 T세포 유형가운데 한 유형이 스포르조이트를 억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이 T세포의 면역반응에 있어서 한 문제는 스포르조이트 표면에 특정종류의 항원이 제시될 때만이 말라리아를 침입자로서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T세포의 면역반응의 범위가 너무 좁아서 스포르조이트의 표면에 나와있는 단백질에서 아미노산 하나만 달라져도 T세포는 말라리아의 침입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효율적인 면역반응을 할 수 없게 된다.이 특이성은 epitope이라고 불리는데 말라리아원충의 유전자1개-또는 그 유전자의 일부분-가 그 정보를 갖고 있다.이것은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말라리아원충은 인간의 T세포에 의한 면역반응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서 A지역에서 말라리아원충을 통제할 수 있는 T세포의 체계를 가진 사람이라도 B지역의 말라리아원충을 통제할 수 없다.또 같은 지역이라도 어떤 사람이 A지역을 떠나 12달 후에 돌아왔다면 그의 T세포는 현재의 그 균주를 인식할 수 없다.

이러한 발견들은 캠벨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면역계에 대해 경계신호를 발하는 단백질이 자신의 표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주의 방어를 쉽게 피할 수 있고 많은 양의 항말라리아제의 투여에도 불구하고 그 미생물을 쫓아낼 수 없다.

항말라리아제에 대한 그 원충의 저항성이 증가하고 있을 때 약제를 사용하더라도 인간의몸에서 그것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캠벨은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몸속에 말라리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는 아주 이상하게 들리는 결론에 도달했다.만일 기생충이 없다면 곧 면역도 사라질 것이다.어떤 말라리아의 스포르조이트가 간속에 들어있고 메로조이트merozoite가 적혈구속에 들어있다면 몸은 IgG의 항체를 만들 것이다.충분한 양의 항체와 활성화된 T세포들에 의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는 관용(tolerance)의 조건이 창조될 수 있다.기생충은 면역계의 끊임없는 공격을 견디어내야 하고 인간쪽에서는 적혈구와 간세포의 일부가 감염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한번 캠벨은 끈떡지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말라리아란 무엇인가?”가끔 균형이 파괴되어 발열과 오한을 일으키는 이 상태가 말라리아가 아니라면 1990년 한해에 3억명이 감염되고 350만명이 사망한다고 WHO(세계보건기구)가 주장하는 그 병은 무엇인가?

캠벨은 구대영제국을 습격한 흑수열blackwater fever을 동료들에게 상기시켰다.음료수안에 키니네를 넣고 봄베이산 진으로 그 쓴맛을 중화시킨 방법을 생각한 사람들은 영국인들이었다.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진토닉은 오랫동안 영국군인들의 말라리아 예방약이었다.그러나 이 키니네의 과용이 흑수열이라는 새로운 질병을 가져왔다.환자는 검은 뇨를 배설하고 고열이 나며 심리적으로 의기소침해지는데 치사율이 25-50%에 이른다.

10년이 지나서 영국의 의사들은 그것이 醫原性 질환(iatrogenic disease;진료에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을 밝혔다.말라리아유행병이 되풀이해서 반복되는 가운데 점점 키니네의 복용량이 늘어나고 면역이 없는 유럽인들은 또 다른 감염질환이라고 생각한 것에 걸렸다.과학자들은 키니네가 흑수열을 일으킨다고 결론지었다.항말라리아제로서 키니네의 과다사용으로 적혈구의 막에 키니네가 부착되게 되었다.적혈구막에 돌출한 키니네의 분자가 면역계의 주의를 끌고 면역계는 그것을 바깥에서의 침입자로 오인하게 된다.항체와 킬러T세포가 키니네가 부착된 적혈구를 공격하고 그것을 죽이게 된다.죽어가는 흑수열 환자는 말라리아를 치료하려는 그 약에 의해서 오히려 희생된다.

1980년대초 연구자들은 클로로퀸이 인간의 면역계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실험실내의 실험은 그 약이 위협을 인지하고 항체반응을 유도하는 면역계의 능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1983년 미평화유지군의 23세의 한 자원봉사자가 광견병의 예방접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케냐에서 작업중 광견병으로 사망하였다.그녀는 죽기 몇 달전 말라리아에 대한 예방으로서 클로로퀸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미질병통제국의 연구자들은 이 항생제가 인간의 면역계에 손상을 준 것은 아닐까하는 것을 알아 보기로 했다.

1984년 CDC(질병통제국)의 과학자들은 8개국에서온 자원봉사단원들의 면역계를 조사하고 클로로퀸 복용자와 비복용자간의 광견병 백신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다른가를 조사했다.예방약으로서 추천되어진 클로로퀸은 백신접종후의 광견병에 대한 항체생산 능력을 저하시켰다.클로로퀸을 복용한 사람의 광견병에 대한 항체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클로로퀸이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효과를 갖는지 면역반응을 둔화시키는 효과를 갖는지 분명하지 않았지만 1990년 캠벨은 클로로퀸이 말라리아원충에 대한 직접효과는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은 발열을 억제하지만 원충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고 캠벨은 말한다.1990년대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소아말라리아빈혈증후군은 의원성질환이라고 결론지었다.생명이 위급한 어린이들에게 행해진 긴급수혈이 가져온 어린이에이즈가 의원성질환이었듯이 말이다.전자는 클로로퀸의 과용에서 온것이고 후자는 HIV에 감염된 혈액을 수혈한데서 온 것이다.

원충은 클로로퀸에 대해서 부분적 내성을 획득한 반면 그 약은 어린이들의 면역능력을 저하시켰다.클로로퀸은 발열은 억제시켰지만 적혈구세포의 손상을 늦추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어떤 치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헤모글로빈수는 서서히 줄어들어 활성적인 헤모글린분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산소부족에 빠지게 되었다.

빈혈증후군은 말라리아가 아니다.항말라리아제의 잘못된 사용에서 생겨난 인간이 만든 질병으로서 종래의 흑수병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부적절한 치료방식이 세계보건기구가 지금까지 권장해온 것이다.지난 20년동안 세계보건기구는 어린이의 발열은 말라리아로 인한 것이고 클로로퀸으로 처치할 것을 지도해왔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캠벨은 2가지 결론을 꺼집어내었다.;

“생명은 세계보건기구의 정책가이드라인과 부합하지 않는다.”말라리아는 항말라리아 약품에 반응해서 생겨난 질병이다.”

당시 말라리아는 약물치료에 의해서 그 증세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입증된 질병으로서 정의되었다.내성 때문에 더 이상 클로로퀸 치료가 효능이 없을 때 적어도 아프리카에서는 그것이 다른 증후군으로 변형되었다.

1992년에 WHO의 정책이 부적절하며 미질병통제국이 상황을 더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 말라위의 보건성 소속의 과학자들은 정책의 변경을 권고했다.말라위는 클로로퀸을 포기한 최초의 아프리카 국가가 되었다.

다행히도 아프리카에는 다른 선택지가 남아있다.다른 항말라리아제에도 내성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게 널리 퍼져 있지 않다.그리고 상당히 비싸기는 하지만 다른 이용가능한 치료약이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처음으로 클로로퀸 내성균주가 출현한 동남아시아에서는 말라리아원충은 모든 이용가능한 약제에 대한 복합내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말라리아는 독성이 덜한 P.vivax(삼일열 말라리아)이지만 이 원충을 운반하는 모기의 개체밀도가 Anopheles gambia,P.falciparum을 운반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기의 개체밀도 보다 훨씬 더 높다. 게다가 많은 아시아국가들에서는 1950년대부터 처방전없이 카운터에서 항말라리아제를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약품의 암시장도 활발해서 약품의 오남용이 더 심해 아프리카 보다 상황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그 결과 아시아의 어떤 지역에서는 P.falciparum과 P.vivax이 둘다 출현하기도 하고 그 둘이 혼합된 새로운 잡종군이 형성되어지고 있다.

치료의 실패가 새로운 내성균의 출현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은 아시아에서 클로로퀸내성균주가 실험실에서 보고된지 얼마되지 않아서였다.예를 들어 1962년에 서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의 의료연구팀이 클로로퀸을 예방약으로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말라리아에 걸렸다.말레지아와 캄보디아에서 분리된 P.falciparum균주는 클로로퀸에 내성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고 pyrimethamine과 proguanil의 약제에도 내성을 갖고 있었다.

미국립보건원(NIH)의 연구팀은 캄보디아와 말레지아에서 분리된 P.falciparum균주를 조지아주 애틀란트의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에게 직접 주입하여 그것의 내성을 조사했다.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방법(자원자를 대상으로 실험했다고 주장하지만 강제의 가능성도 있다.)으로 미국립보건원의 과학자들은 1963년 당시 아시아에서 분리된 6개의 균주가운데  하나만이 클로로퀸에 감수성을 보였고 3개는 그 당시 주요 항말라리아제 4종(클로로퀸,프로구아닐,메파크린,그리고 피리메타민)에 모두 내성을 보였다.

10년후-동아프리카에 내성균주가 출현하기 5년전-에는 클로로퀸 내성이 태국,버마,뱅글라데시,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캄보디아,스리랑카,말레지아,베트남,오스트레일리아,라오스,일본,싱가포르,파푸아 뉴기니아,솔로몬군도,바나투,그리고 중국 까지 널리 퍼졌다.

P.falciparum균의 클로로퀸에 대한 내성의 확산을 막기위해서 세계보건기구는 몇가지 항말라리아제들을 병용해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이것은 항생물질의 내성에 대한 요즈음의 접근법과 흡사한 것으로 여러 약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변이균주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막 출현할려고 하는 변이균주의 싹을 뽑아벌릴 수 있다.

그러나 얼마있지 않아 복합약물내성이 P.falciparum균주로 확산되었다.크메르 루즈에 의한 대학살과 대량의 피난민들의 발생과 같은 사회적 변혁속에서 클로로퀸과 판시다르에 강한 내성을 가진 새로운 말라리아균주가 출현했다.이 균주는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선에 있는 피난민 캠프를 덥쳐 질병을 확산시켰다.CDC는 이 지역의 말라리아의 표준치료약이었던 클로로퀸과 핀시다르를 키니네와 테트라사이클린의 복합처방으로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속도는 약간 늦춰지기는 했지만 아시아의 전영역으로 확산되면서 퍼져나갔다.

이 시기에 아시아에서 말라리아원충을 옮기는 아노펠렉스모기종이 DDT에 내성을 갖게 되어 이 곤충들을 억제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과 비용이 들었다.이 곤충들의 일부는 원래의 서식지를 떠나 종래에는 서식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독성이 덜한  P.vivax에 대한 독성이 강한 P.falciparum의 비율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1976년에는 말라리아모기의 90%가 P.vivax였으나 1989년에는 65%로 줄어들었다.스리랑카에서는 종래에는 P.falciparum가 없었으나 1990년에는 말라리아질병의 반이 이 원충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버마에서는 P.falciparum의 비율이 60%에서 90%로 뛰어올랐다.

말라리아를 근절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의 가장 성공적인 본보기로 여겨졌던 네팔에서 가장 큰 비극이 일어났다.19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네팔의 말라리아 발생율은 99%까지 줄어들었다.매해 2백만명의 발병에 30만명이 죽었지만 25,000명의 발병에 사망자수 200명으로 뚝 떨어졌다.그러나 1985년 말라리아환자는 배가되었고 사망자수는 내성의 출현으로 크게 증가되었다.똑같은 패턴이 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전역에 보여지고 있다.

1992-1993년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다이안 리스Dyann Writh는 이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균주들의 본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물리칠 방법에 몰두해 있었다.그녀는 이 원충의 막안에 크고,특이한 단백질을 발견했다.약의 화학물질이 원충의 세포속으로 유입되어 들어올 때 그것을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이러한 메카니즘은 클로로퀸 내성의 경우에도 보여지는 것으로 새로운 균주들은 항말라리아물질을 세포밖으로 배출하는 펌프를 거의 모두 갖고 있다.

이러한 펌프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분명했다.세포막 밖으로 칼슘이온을 퍼내는 것을 차단하는 베라파밀verapamil이라는 심장약이 약제내성의 메카니즘을 저지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그래서 어떤 과학자는 베라파밀과 클로로퀸을 병용해서 쓸 것을 WHO에 제안했는데 클로로퀸을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베라파밀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펌프의 메카니즘은 mdr유전자(multidrug-resistance gene; 다제내성유전자)라 불리는 2개의 유전자들에 의해서 유전적으로 조종된다.말라리아원충이 어떻게 이 mdr유전자를 얻었는지 아직 알려진 바는 없다.다만 포유동물의 암세포가 약물을 배출하는데 이런 메카니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알려져 있다.그 기원이야 어떻든 슈퍼내성균은 이러한 mdr유전자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의 펌프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단 이런 종류의 메카니즘이 발생한다면 약이 개발되기전에 내성이 먼저 출현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리스는 말하고 있다.

내성의 생성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는 이 펌프메카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클로로퀸 내성은 1950년대 일찍 출현했지만 다른 항말라리아제는 그후 10년동안 전세계적으로 약효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러나 1980년대는 내성 미생물의 출현속도가 예외적으로 빨라져서 아시아지역,특히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는 약이 나오자말자 내성이 나오는 것 같다.초기의 내성균주들은 무작위적인 점돌연변이에 의한 것이어서 한 변이균주는 한 약에 대해서만 내성을 가졌다.그러나 1980년대말의 인도차이나 지역은 다제내성의 병원미생물들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펌프 메카니즘으로해서 미생물들은 새로운 약제가 나오면 그 약에 맞춰 펌프를 정교하게 조율해서 그 약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만일 그렇다면 내성은 강도만 크지는 것이 아니라 속도로 빨라지게 된다.

P.vivax를 치료하기 위해 40년 동안 클로로퀸을 부작용없이 사용해왔지만 파푸아뉴기니아에서 이 질병을 치료하고 있던 의사들은 이제 더 이상 그것이 이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클로로퀸 혁명의 시작 때부터  P..falciparum에게는 내성이 나타났지만 P.vivax은 여전히 감수성을 가진 채 남아있었다.

말라리아학자들은 파푸아 뉴기니아의 경우가 예외적 사건이기를 바랬다.그러나 1993년 클로로퀸 내성 P.vivax가 인도네시아에 출현했다.P.vivax는 인간의 몸안에서의 생활사가 더 복잡하고 더 오랜기간을 간속에서 보내기 때문에 이 말라리아의 약제에 대한 감수성이  P.falciparum와 달랐다.

“클로로퀸을 대체할 약이 없습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WHO의 기생충질병 전문가인 토르 고달Tor Godal은 “우리는 지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비상벨이 울리고 있습니다.”고 선언했다.

대체약이 될만한 것이 단 하나 남아 있기는 하다.지난 2천년동안 중국의 의사들은 靑고(sweet wormwood)라고 불리는 식물에서의 추출물을 가지고 말라리아을 치료해 왔었다.이 약재는 오랫동안 해열제로서 사용되어져 왔다.1972년에 중국의 의사들은 청고에서 이 약리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을 분리해서 靑고素arteether and artemether라 명명했다.1980년대 말라리아 서식지 전체에 약제내성이 급격히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WHO와 월트리드 육군연구소Walter Reed Army Institute of Research는 이 약제를 연구하기 위해 연구팀을 구성했다.1994년 WHO는 베트남에서 이 약의 야외실험을 성공리에 끝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93년 서부 아프리카의 말리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프랑스인 여행객에서 분리한 P.falciparum는 중국의 약을 포함한 모든 약제에 내성을 보였다.이 청고소는 이 나라에서는 널리 복용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브링크만과 캠벨과 같은 사정을 잘 아는 학자들은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다.그들은 아시아의 말라리아 창궐지역내의 조건을 면밀히 조사해서 모기와 원충이 어떻게 퍼져나가는가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국가들의 어떤 강력한 정치적 의지없이는 어떤 약이든 내성에서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적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게다가 오늘날의 생물학 연구는 공중위생에 반하는 방향으로 행해지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10%가 16개의 상이한 유형으로 되어 있는 열대우림지역이다.이 지역의 말라리아는 삼림말라리아여서 통상의 말라리아 통제 대책은 효과가 없다.습하고,눅눅하고,조밀한 열대의 정글에서는 DDT를 뿌리더라도 효과가 없다.

아시아에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종은 30종 이상이나 된다.그 대부분은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피를 빨면서 살고 있다.이 모기들은 열대우림의 여러 가지 국지적 환경들-빗물로 채워진 대나무 그루터기,관개로,정글속의 연못,군인의 군화자국이 만들어 놓은 웅덩이,코끼리의 발자국,바퀴자국,논,늪지 등-에 각기 적응해서 먹고,번식한다.

이 강인한 모기들은 동남아시아의 고원지대로 확산되어가고 있다.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피를 빤다.많은 것들이 이미 살충제에 내성을 갖고 있다.

삼림속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모기에게 물리고 있다.수세기 동안 인간과 기생원충들간에는 생태적 균형이 있었다.아주 많은 인간들이 아직 어린 시절에 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러나 생존자는 이 원충을 날마다 자신의 피속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모기에 의해서 말하자면 “백신접종을 받고” 면역되어 있었다.캠벨의 말을 빌리자면 관용상태에 있었다.

말라리아를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이 균형을 파괴시켜 버렸다.일시적으로 성공한 모기박멸 프로그램으로 해서 매일 받던 모기에 의한 “백신접종”을 없애 버렸다.그와 동시에 즉각 면역도 사라져 버렸다.항말라리아제의 예방적 사용은 질병을 몰아내었지만 동시에 면역력도 저하시켰다.약이 부족하면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는 것을 보게 된다.

모든 종류의 동물들(파충류로부터 인간까지)의 피를 빠는 모기 암컷은 동물의 혈액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을 그것과 함께 흡입한다.모기의 장내에는 상이한 말라리아균주들이 공서하고 있고 그들 사이에 유전자의 공여가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현재 아시아에서 대략 30여종의 말라리아를 운반하는 모기의 종들이 확인되고 있지만 이것들은 말라리아 매개곤충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모기종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정글의 생태계에서 그 곤충들을 연구하고 종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말라리아는 생태적 질병입니다.”고 인도의 과학자 샤마라V.P,Shamara는 말한다.

1970년대,1980년대,1990년대 세 번에 걸쳐 이 지역에는 인구의 대이동이 있었다.전쟁,내란,종교적 탄압,경제적 궁핍,자연재해 등으로 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다른곳으로-촌락에서 도시로 또는 이 국가에서 저 국가로-이주했다.1980년대 동안 캄보디아에서만 50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인도네시아 정부는 거의 7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다른 섬으로 식민시켰다.

이런 대규모의 이동이 말라리아의 위험을 증대시키고 있다.대부분의 이주민들은 말라리아가 없는 지역에서 옮겨 와서 면역이 되어 있지 않거나 또는 자신의 고향의 말라리아와는 다른 종의 말라리아가 서식하고 있는 지역으로 왔다.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삼림가장자리에 연해서 정착함에 따라 모기의 개체수가 증대하게 되고 곧 말라리아가 창궐하게 된다.

베트남 전쟁이나 크메르루즈의 반란과 같은 전쟁과 내란은 대규모의 이주를 일으킬 뿐 아니라 모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태계를 변화시킨다.빗물이 가득차 있는 폭탄웅덩이,물에 잠긴채 버려져 있는 군용차들,그러한 전쟁의 쓰레기들은 모기를 위한 이상적인 생육공간이다.

1980년대의 아시아에서의 인구팽창시 가난한 사람들은 숲으로,숲으로 밀려 들어갔다.거기서 나무를 자르고 삼림을 불태우면서 농장을 만들었다.공중위생과 진료체계는 아시아의 삼림지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지역에서 항말라리아제 남용이 극심했다.어른,아이 할 것 없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치료하고자하는 생각에 입수할 수 있는 약은 무엇이든 먹었다. 정식으로 훈련받지 못한 의료종사자들은 말라리아라고 의심만 들어도 항말라리아제를 투약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도 이렇게 형편없는 의료기간시설을 본 적이 없다.”고 WHO의 인도차이나 과학자문관인 이디오피아출신의 말라리아학자 Awash Teklehaimont는 말한다.1992년의 캄보디아상황을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클로로퀸주사가 경찰이 보고 있는 앞에서 돌팔이의사에 의해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습니다.”그 지역의사들의 한달 봉급이 겨우 5달러인데,이것이 정부의료기관의 약장은 텅비어있는데 암시장에서는 공급이 달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국 정부,유엔,그리고 여러 서방기관들이 수십억달러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 아시아에서 말라리아는 완전히 통제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WHO는 이미 1977년에 말라리아를 근절하겠다는 희망을 완전히 포기했다.1978년 WHO는 말라리아의 통제를 1차의료기관과 연계시키려는 세계전략을 작성했다.그러나 대부분의 말라리아 창궐국가에서 그것을 감당할만한 1차의료기관이 결여되어 이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1992년 WHO는 내키지는 않지만 말라리아의 통제에 대해서는 세계전략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말라리아 창궐국가 각각이 자국의 사회적,환경적 조건에 맞는 대응전략을 개발해야 한다.아프리카의 사바나지역에서 효과가 있은 대책이라고 습지나 아시아의 마호가니 삼림지대에서도 먹힐 것이라고 볼 수 없다.

WHO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생태학을 배운 것이다.

Teklehaimont는 동남아시아의 위기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국에 대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1992년에 에디오피아는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말라리아의 대역병을 겪었다.6달이 채 안된 기간동안에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다.그 가운데 10%는 클로로퀸 내성이었고 희생자는 모든 연령층에 걸쳐 나왔다.Teklehaimont가 인구 13,000명인 어느 지역을 조사했는데 사망자는 759명이었다.

이 공포의 대역병은 클로로퀸 내성균에만 국한 된 것이다.캄보디아의 다제내성의 말라리아원충이 아프리카에 도착한다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