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의 절박한 의료문제 해결을 위한 긴급지원정책 촉구 기자회견
다가오는 추석은 전통적으로 일년간 가장 풍족한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추석이 다가와도 당장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와 유사한 상태에 놓여 있는 차상위 계층이 320만명이 넘는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연 2만불의 소득을 이야기하고 동북아 물류중심사회라는 거창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면서도 당장 그들을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의료지원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빈곤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빈곤층의 절박한 의료문제가 사회문제화되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에 대한 긴급보호대책”(2003.8.4)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은 실질적인 지원대책은 말뿐인 대책이었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의료급여확대계획은 전무하고 의료보험료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체납보험료를 낸 경우’에 공단부담금을 환수하지 않겠다는 당연한 조치를 긴급구호조치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는 등 실질적인 구호조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올해 정부당국이 빈곤층에 대해 의료지원을 확대한 것은 6,417명을 의료급여대상자로 신규 지정한 것 이외에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절대 빈곤층은 최소한 인구의 10% 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현재 의료급여 1종과 2종의 인원을 제외하고도 절대빈곤계층 중 320만여명(정부추산)이 아무런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당장 200만 세대가 건강보험료를 3개월 이상 내지 못하고 있는 세대이다. 이들 중 대다수가 생계 때문에 건강보험료조차 납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감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이들 빈곤층이 가장 질병이 많고 의료수요가 높은 층이라는 점이다. 질병 때문에 빈곤하거나 또는 빈곤 때문에 건강이 악회되는 빈곤의 악순환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의료비의 80%이상이 공적의료보장의 대상이 되는 대다수의 OECD국가와는 달리 의료비의 52%만 건강보험의 대상이 되는 우리사회에서는 부유층에서는 의료비가 부담이 안되지만 서민층에서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는 경우가 매일매일 일상사로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보장성이 낮은 건강보험제도는 말하자면 소득역진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의료지원도 받지 못하는 서민층, 특히 차상위계층은 가족 중 한사람이 병에라도 걸리면 살길이 막막하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병에 걸릴 식구하나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가족 전체를 살릴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야만’이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이고 의료급여제도이다.
노무현 정부는 ‘건강권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중 가장 기본적 권리’라고 칭하고, 비정규직의 복지에 관심을 쏟아야 된다고 말하면서 사회안전망 확충이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금껏 출범 7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노무현 정부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사회의 빈곤층에 혜택을 준 보건복지정책은 거의 없다. 또한 노무현 정부아래서 집행되고 있는 정책들은 국민연금 개악 · 의료급여를 포함한 기초보장예산 증액분 삭감 · 공공의료확충 예산 삭감 ·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경제자유구역내 내국인진료 검토 등 빈곤층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뿐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에게 최종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최소한 자신의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며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집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 당장 200만에 가까운 가구가 건강보험료조차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서, 우리는 빈곤층의 절박한 의료문제해결을 위한 다음과 같은 긴급의료지원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정부가 빈곤층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취해야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판단하며 다음의 10대 정책을 제안한다.
빈곤층 의료지원 10대 정책
1. 빈곤으로 인한 보험료 체납자의 건강보험 체납보험료를 즉각 탕감하라
2. 외래 및 약국 소액진료비 본인부담률 인상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차상위계층에게 약제비 본인부담 경감조치를 시행하라
3. 차상위계층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의료급여 수급자를 전면 확대하라
4. 의료급여 2종 수급자에 대한 본인부담률을 10%로 인하하고, 의료급여 수급자의 급여일수 제한조치 폐지하라
5. 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을 막을 수 있는 실효성있는 건강보험 본인부담 총액상한제를 도입하라
6. 서울시립동부병원을 비롯한 공공병원의 민영화(또는 민간위탁) 중지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병원을 확충하라
7.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적 건강관리 및 의료서비스 제공체계를 확충하라
8. 국방예산을 삭감하고, 빈곤층 지원을 위한 보건복지 예산을 확대하라
9. 직장보험료 상한선을 폐지하고,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을 누진적으로 개선하라
10. 건강보험 재정 흑자분과 응급의료대불기금을 빈곤층 의료지원사업에 활용하라
우리는 묻는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웠던 ‘참여복지’는 어디로 갔는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연소득 2만 달러라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약속이었을 뿐 실질적인 서민생활의 개선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우리사회의 의료문제를 걱정하는 양식있는 시민들의 대화상대로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빈곤층을 위한 최소한의 의료지원정책도 없는 현재의 정부가 서민들에 대해 과거 독재정부와 전혀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나쁘다고 일컬어질 수 밖에 없음을 노무현 정부는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이상과 같은 10대 정책을 제안하며 현 정부가 진지한 자세로 이를 수용하면서 책임성있고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하여 집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2003년 9월 3일
한국 사회 빈곤층의 의료지원대책을 촉구하는
시민 · 보건의료인 · 노동 단체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