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의 보건복지 정책 어디로 가고 있는가" 토론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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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국자의 정책 인식
시민·보건·노동단체-보건복지부 열띤 공방

25일 오후 2시 안국동 걸스카웃회관에는 보건복지부의 핵심부서 국장이 3명이나 참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노무현 정부 보건복지정책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심의 국장, 보건정책 국장, 연금보험 국장 등 3인의 핵심부서 국장이 참가했다.

민간 주최 토론회에 정부부처 관계자가 3명이나 나온 파격도 파격이려니와, 이들 3인 국장이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내 위상도 이날 토론회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정성’을 실감케 했다. 최근 6개 시민·보건·노동단체의 김화중 장관 퇴진 요구를 보건복지부에서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여한 3인의 국장은 주요 정책에서 시민사회의 요구와는 정면 배치되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대변했다. 보건복지부 핵심부서 국장들의 이날 발언은 포괄수가제, 의료기관평가제도,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 보건복지 현안에서 시민사회의 평가와 보건복지부의 자체 인식 사이에 얼마나 깊고 넓은 강이 흐르는지를 실감케 했다. 오건호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이 차이를 “노무현 정부가 준비한 보따리와 우리가 요구하는 보따리는 다르다. 그것은 노선의 차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토론회는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 사회로, 사회복지 분야와 보건의료분야에서 각각 허선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순천향대 교수)과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이 발제를 맡았다. 토론회는 각 분야 발제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반박 발언과 토론 패널 참가자들의 재반박 발언 순으로 진행됐다.

허선 교수는 “복지분야 최대의 이슈는 ‘신빈곤’과 ‘국민연금개혁’이었으나 정부의 복지철학과 개혁비전의 부재 속에서 보건복지부 역시 대응능력 미숙과 개혁에 역행하는 정책방향을 세우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 허 교수는 ▲부양의무자의 범위 축소, ▲재산기준의 개선 ▲최저생계비의 합리적 조정 ▲비수급 빈곤층과 차상위계층에 대한 개별 급여 ▲주거급여 현실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제도에 대해서는 국민연급기금운영위의 가입자 참여 배제 등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개악 시도를 비판했다.

보건의료 분야 발제에 나선 김창보 국장은 참여정부의 공약사항이었던 공공의료 30% 확충이 거의 무산될 위기에 있다는 점과 함께, 질병군 포괄수가제 전면시행의 유보, 의료기관평가제도에서 평가주체로 병원협회 선정 등 최근 보건복지부의 정책 결정을 집중 성토했다.


김 국장은 “포괄수가제 후퇴로 현 행위별수가제의 과잉진료와 진료비 급등을 해결할 방안을 세우기 어렵게 됐고, 공공보건의료 확충은 예산을 확보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비치며, 의료기관평가제는 평가주체로 병원협회로 선정, 객관성과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 국장은 “개혁정책 실종의 원인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정책무관심, 보건복지부 장관의 무원칙과 일관성없는 정책 추진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개혁을 다시 추진하기 위한 전제로서 장관 경질, 대통령의 의지 표명, 보건복지 개혁 공약 다시 제출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포괄수가제, 의료기관 평가제도 관련 논쟁

이날 토론회에서는 단연 포괄수가제, 의료기관 평가제도 등 최근 시민사회단체가 보건복지부 개혁 실종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현안에 대한 논쟁이 뜨겁웠다.

변철식 보건복지 국장은 “미국의 포괄수가제가 모든 의료기관에 강제적인가? 계약제다. 미국의 선택권 보장에 비춰 선입관에 의해 판단할 것이 아니고, 집단의 요구를 들어서 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받았다. 또 의료기관 평가제도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평가제도는 7년 정도 시범사업을 해왔지만 실무는 병원협회의 지원을 받아 한 것이다. 단순 실무작업은 의사, 의료인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면서 “평가항목 등 최종적인 모든 정책결정은 장관 산하 의료기관평가위원회에서 한다. 이익집단 요구에 굴복했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시민단체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상석 연금보험 국장도 변 국장을 거들었다. 이 국장은 “언론 보도 내용은 ‘포괄수가제가 완전히 철회됐다’는 일반 국민의 오해를 살 수 있다. 시행령개정안 제시했던 것은 7개 질병에 대한 강제적용 계획이었지만 의료계가 거부반응을 보였고, 대안도 제시했었다. 복지부 판단은 의료계가 포괄수가제의 주요 파트너인데 더 효율적인 운영과 확대를 위해 강제시행보다 대상을 확대하면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굴복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포괄수가제에 대해서는 패널로 참여한 문화일보 이강윤 기자의 반박이 매서웠다. 이 기자는 “복지부는 전면철회 아니라고 하는데 7년 공든탑이 무너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복지부 공무원의 자기 부정이다. 지적한대로 미국 예가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11월 전면실시를 입법예고 했나?”라면서 “포괄수가제는 의사협회 통계로도 이미 48% 전국 병의원이 실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국정감사장에서 장관이 그런 식으로 철회 의사를 드러낸 것은 처연하고 참담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기초법, 국민연금법 개정안 논의

기초법의 부양의무자 범위와 부양능력 규정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당국자가 비교적 열린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문창진 기초생활보장심의 국장은 “부양의무자 범위의 축소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 중이다.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 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는 입법사항으로 상임위에 제출된 상태로 올해 내에 결정할 것이다. 최저생계비 조사 주기를 5년에서 2∼3년으로 줄인다든가, 기초법 심의위원회 위원수 조정은 입법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법 개정안 개악 주장에 대해 이상석 연금보험 국장은 “2002년에 구성된 국민연금제도개선위에 NGO도, 노동단체도 참여했고, 여기서 다수안이 중심이 돼 안이 나온 것이다”면서 “연금소득이 50% 이하로 떨어지게 되고, 최저생계비도 못 받는다는 지적은 사실을 확인해보니 적어도 20년 정도로 최저생계비 이상자가 가입을 한다면 최저생계비는 최소한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또한 “건강보험 재정통합 이후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통합 이후에 건강보험제도발전위 구성해서 보장성 강화, 중장기 재정안정 방안 등을 충분히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건호 정책부장은 “국민연금제도는 재정안정화와 노후연금으로서 최저생계비 보장이라는 두 가지 잣대가 있는데, 다른 경제부처가 뭐라고 하든 보건복지부는 후자의 잣대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잘못된 접근을 비판했다.

또 국민연금제도개선위에 노동단체, 시민단체 등이 참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보수 일색의 위원회에 개혁 칼러 인사를 몇몇 구색맞추기로 끼워 놓고 나중에 정책결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정부부처의 관례”라고 비판했다. 허선 교수 역시 “위원회에 참석해 아무리 다른 주장을 해도 결국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다”면서 이 국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장관 퇴진 공방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화중 장관 퇴진 주장과 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반박도 참석자 발언 곳곳에서 벌어졌다. 변 국장은 “보건복지라는 게 결국 제도와 예산 문젠데 내년도에 사업평가 받을 일이지, 평가기간으로는 너무 짧은 기간 아닌가”라며 시민단체 주장을 반박했다.

문창진 국장 역시 “빈곤문제 책임, 사실 장관보다 내 책임이다. 장관 경질한다고 문제 풀리는가. 정책개선위에서 같이 논의하자”면서 “사실 예산만 가지고 얘기하면, 금년 예산은 이미 작년에 국회에서 결정한 것이고, 그래서 내년 예산을 가지고 평가해야 하는데 9.6% 정도 늘었다. 중장기 빈곤대책을 올해말까지 입안해서 내년초에 2004∼2008년까지의 복지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석 국장 역시 “시민단체의 비판 중에는 코끼리 다리만지기식 비판도 있다. 자기 주장 수용 안되면 끝까지 가는 것, 우리 사회 발전에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라면서 장관 퇴진 요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장관의 퇴진을 거듭 촉구했다. 김창보 국장은 “장관 퇴진은 참여정부가 실종된 보건복지 개혁의 회복의지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전제”라고 거듭 김화중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오건호 정책부장 역시 “퇴진 요구는 장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정책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라며 “기초법 예산 3조5000억원, 거기서 아무리 늘려봤자 1000∼2000억원이다. 복지는 결국 예산 없으면 헛된 약속”이라고 참여정부의 보건복지정책 기조와 의지를 질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밖에도 경제특구 내 동북아 허브병원 설립, 의료비 본인부담금 상한제 등에 대한 질의와 답변,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