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편을 들어주기 위해 의학상식을 뒤집은 <중앙일보>의 헛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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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9일, 문화방송(MBC) 이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그 한편의 프로그램을 놓고 검찰과 제작진 사이에 지루한 싸움이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정말 짜증나는 싸움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검찰 쪽에 승산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검찰 쪽에서 헛 칼질을 해대면서도 전혀 힘이 빠지는 기색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으니 제 삼자의 입장에서 그 싸움의 최종 승패를 지켜보는 것도 흥밋거리로 삼을 만도 하다. 그러나 그 싸움이 재미가 있으려면 최소한의 금도와 경기의 규칙만은 지켜져야 한다. 1:1로 싸워야 할 격투기에서 심판까지 가세해서 상대를 두들겨대면 그것은 경기가 아니라 계획되고 의도된 폭력이다.

MBC 과 검찰의 지루한 싸움에서 좀처럼 승부가 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하여야 할 언론이 검찰을 거들고 나섰다. 바로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4월 7일, 이 지난 해 4월 29일 방송 제작 과정에서 심각한 조작이 있었음을 확신하는 기사(<중앙일보>, 2009년 4월 7일자, 33면, “PD수첩, 빈슨 다른 병 알고도 인간광우병 보도 의혹”)를 내보냈다.


▲ 박유미·황세희 기자가 작성한 <중앙일보> 2009년 4월 7일자 해당 기사. 이들 기자는 자신이 세계를 놀라게 할 특종을 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프레시안

시커멓게 덧칠까지 해댄 <중앙일보>의 그 기사 제목만 스치듯이 살펴보고 지나간 사람들은 MBC 의 제작진을 처벌하려는 검찰의 법 집행이 정당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 아래로 기사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면 이 기사는 기자가 쓴 기사가 아니라 무명작가의 습작기 작품 수준으로 이해해야 할 정도로 최소한의 사실성도 없는, 기자가 지어낸 픽션(fiction)에 불과하다.

미국 보건당국은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에 대해서 vCJD 가 아니’라는 것만 발표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미국 보건당국이 한국의 검찰에게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에 대해 이례적으로 “외교통상부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거니와, 그렇게 비공식적으로 얻어 낸 정보가 어떻게 <중앙일보>로 먼저 흘러 들어갈 수 있었는 지도 의문이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다. 권력 주변의 구중심처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개 범부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중앙일보>는 미국 보건당국이 한국의 검찰에게 “비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는 사망원인을 검찰의 설명을 인용하면서 “베르니케 뇌병변”(Werniche Encephalopathy 정확하게는 베르니케 뇌병증이라 해야 한다. 이하 뇌병증)”이라고 보도했다. 이 한 줄의 기사를 보고 아무런 의구심을 가지지 않는 의사가 있을까?

베르니케 뇌병증은 비타민(Thiamine) 결핍으로 안진, 보행 실조, 의식 혼미를 주증상으로 하는 급성기 질환이다. 주로 주정중독자(Alcoholism)들에게 발생하지만 아주 드물게 요독증 환자, 그리고 비만 조절을 위한 위장 절제 수술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발병한다. <중앙일보>가 “검찰의 설명”을 바탕으로 보도한 것을 보면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뒤 후유증을 앓았”고, “비타민제 처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베르니케 뇌병증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는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으로 베르니케 뇌병증일 가능성을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은폐 조작했다는 혐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은가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런데 아레사 빈슨이 베르니케 뇌병증을 실제로 앓았다 하더라도 이 병은 급성으로 진행하는 병이어서 만성경과를 보이는 vCJD와는 임상 증상만으로도 확연히 구분이 되고, 또 비타민(Thiamine) 몇 알만 투여해도 곧바로 호전되기 때문에 빈슨의 사망 가능성으로 베르니케 뇌병증을 의심할 의사는 아마 이 지구상에는 없을 것이다.

베르니케 뇌병증이 만성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긴 있다. 주로 주정중독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이런 경우는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Werniche-Korsachoff syndrome)’이라 달리 부른다. 이때는 기억력 장애가 있어 치매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 우리가 경험하는 알츠하이머 형의 치매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선택적인 기억력 장애만 있을 뿐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인지 능력은 보존되어 있다.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역시 술을 끊고 영양관리만 제대로 하면 얼마든지 치료될 수 있기 때문에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이 직접 사망 원인이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므로 미국 보건당국이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을 베르니케 뇌병증으로 발표했을 가능성은 0%라고 보면 된다. 미국 보건당국이 진짜 발표를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빈슨의 사망원인을 발표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는 현재 제대로 교육받은 의사도 하나 없고, 비타민제 한 알도 없으며, 의료체계도 아예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온 세계에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중앙일보>는 그 기사에 의학전문기자의 해설 기사를 덧붙여 신뢰도를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의학전문기자가 익명의 의료계 인사의 주장을 빌려 덧붙인 촌평이 더욱 가관이다. 미국 보건당국이 사망 원인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비타민 주사만으로 치료 가능한 환자가 사망한 게 미 의료계로선 수치스러워 밝히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보건당국은 부끄러워 공식 발표도 하지 못할, 자기 나라의 그렇게 수치스런 사실을 비판 언론을 잡도리 하려는 한국의 검찰에게는 소상하게 자상도 하게 확인해 주었다? 상식선에서 납득 가능한 일인가?

지금 <중앙일보>가 해야 될 일은 헛칼질 해대는 검찰의 바람잡이 노릇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사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는 일이다. 먼저 자사의 기사에 정말 자신이 있다면 언론의 목을 죄려는 검찰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미국의 의료 수준을 아예 시궁창 속으로 몰아 넣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 있는 익명의 의료계 인사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보건당국이 “아레사 빈슨이 베르니케 뇌병증으로 사망했다는 결론! 그런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정말 한국 검찰 쪽에 통보해주었는가에 대한 사실 여부를 <중앙일보> 스스로가 입증해야 할 것이다. 미국 보건당국이 정말 그런 결론을 내렸다면 그 사실은 좁은 국내 시장에서 떠들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언론과 의료계에 타전해야 할 특종 중의 특종 아닌가?

그런 후속 조치가 없다면 <중앙일보>는 쇠고기집 사진 조작에 이어 또 한 번 헛발질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검찰이 <중앙일보>를 수사하거나 압수 수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평화뉴스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