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게보린이라는 의약품을 한번쯤은 들어봤거나 복용하였을 것이다. 여러 매체를 통해 매일 광고되고 있는 게보린하면 어떤 것이 연상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인의 두통약 게보린’ ‘두통 치통 생리통에 맞다 게보린’ 이라는 문구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두통약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면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게보린이 현재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두통환자들이 많이 찾는 게보린에는 ‘이소프로필 안티피린(IPA)’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재생불량성 빈혈과 의식장애, 혼수, 경련등의 치명적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어 많은 국가에서 판매되지 않고 있다. 여러번 게보린의 위험성을 경고하였음에도 꿈적않던 우리나라 식약청도 심각한 위험을 깨달았는지 1년안에 안전성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하면 허가 취소를 하겠다고 제약회사에 통보한 상태이다. 이렇게 위험한 의약품이 ’한국인의 두통약‘이라는 이미지 포장을 통해 계속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현행 법체계안에서도 대중광고할 수 있는 게보린의 경우만 살펴봐도 의약품 광고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전문의약품(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 광고가 허용되면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예측할 수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넓히기 위해 몇가지 사례를 더 열거해 보겠다. 몇 년전까지 젊은 여성들이 많이 복용하는 다이안느라는 의약품이 있었다. 이 의약품은 한국에서 여드름이 있는 여성에 장기간 복용할 수 있는 피임약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서 광고되었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안드로겐 의존성 여드름에 사용되고 피임약 용도로는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장기간 먹어도 안전한 피임약으로 광고된 이 의약품은 결국 전문의약품으로 변경되어 처방을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해졌다.
유명탤런트 김희애가 살빼기 홍보대사를 맡은 시부트라민성분의 의약품이 있다. 이 의약품은 전문의약품이어서 직접 광고가 허용되지 않았지만 의료기관을 상대로 강력한 마케팅을 통해서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의약품은 뇌졸증과 심장발작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야기하여서 2010년 유럽을 필두로 하여 미국, 한국에서 차례차례 시장에서 퇴출되어졌다. 신체외모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광고가 허용되었다면 더욱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고 치명적 부작용 또한 많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이야기하며 전문의약품 대중광고를 포함하여 의료광고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최근에는 한발짝 물러서서 의약품 재분류를 통하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여 광고 품목을 늘리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를 보건대 편향된 정보를 통해 건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의약품 광고가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과 건강증진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의약품 광고는 만성질환 치료제나 경쟁제품이 없거나 경쟁제품이 소수인 분야에 집중되어서 소비자의 보편적인 알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또한 의약품 대중광고를 비판한 보고서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의약품 광고는 충분히 운동이나 생활개선, 식단개선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의약품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으며 의약품의 맹신으로 인해 치료가 잘 안될 경우 환자를 낙담시켜 상태를 더욱 안좋게하고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를 악화시켜서 치료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시장확대와 이윤에 초점이 있는 제약회사의 정보는 불충분하니 정부나 공공기구에서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 오히려 비용지불없이 알 권리와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정부와 국가기구들이 유해하고 실익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대중광고 허용을 추진하는 방통위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종편 먹여살리기에 다름 아니다.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어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키는 전문의약품 대중광고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보다 많은 정보를 주기 원한다면 공익적 성격의 기구를 설립하여 제공하는 것이 훨씬 이로울 것이다.
신형근(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