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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이 죽은 ‘조직’ 살려냈다?”
‘참여정부 정책자문한’ 의대교수에 대한 이적성 적용 논란

박형숙 기자

학생운동, 통일운동 등에 이어 진보성향의 의료단체에도 ‘이적성’을 적용한 첫 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지난 6월 8일 서울지법 형사 21부(황찬현 부장판사)는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연합(이하 진보의련)’을 결성, 사상학습을 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등)로 불구속 기소된 J대학 의대 이모 교수(39세)에 대해 징역 10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모 보건소 소장 권모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진보의련은 강령 등에서 우리 사회를 ‘소수의 자본가가 절대 다수의 노동자를 지배 착취하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체제로 규정한 만큼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미 해체된 조직에 이적단체 구성죄 적용

“헌법에 보장된 국민건강권 추구”한 죄
진보의련 어떤 단체?

경희대 의과대학 선후배들로 구성된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연합(진보의련)’은 각종 무료치료 및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에서 활동해오다가 95년 2월 정식 결성되었다.

이들은 “국민이면 누구나 아플 때 동일하게 형평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에 반하는 자본주의 보건의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보건의료의 사회화’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진보의련은 출범 당시부터 많은 한계를 지녀왔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동문 선후배들이었고, 사회운동의 전반적 퇴조로 인해 친목적, 써클적 성격을 극복하지 못한채, 주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정기적인 간행물을 발간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면서 활동을 주도한 이모씨는 집권여당의 전문위원과 대학교수로 재직하게 되면서 사실상 활동을 접었고, 권모씨는 보건소 등 지역사회의 공공의료 활동에 집중해 왔다.

그러다가 2001년 6월, 권모씨의 제안에 따라 운영위원회에서 해체를 결의하였고, 8월 사무실 폐쇄에 이어, 2002년 1월 25일 진보의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 박형숙 기자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9일 성명서를 내고 “진보의련이 주장해왔던 것은 공공의료의 강화와 의료보험 통합, 의료보험료 인상반대, 의료보험 본인부담 인하를 주장해온 수많은 진보적인 보건의료인까지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한 죄인으로 모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한 이들은 “죽은 조직을 공안당국이 살려낸 꼴”이라고 항의했다.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진보의련 조직원들을 강제연행할 당시인 2001년 10월은 이미 사무실이 폐쇄된 상태였다. 조직원 수가 20여명도 채 안 되는 등 활동이 답보상태를 지속, 진보의련 운영위원회에서는 해체를 결의하였고 이듬해 1월 공식 해체되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국가보안법 수사에 있어 최초의 불구속 기소 사건’이라는 점에서 법원 판결에 무리수가 지적되고 있다. 진보의련 전현직 대표인 이모, 권모씨를 비롯한 8명 조직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다시 이모, 권모씨 두 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다시 기각처리된 사건이었다.

진보의련 활동가였던 김모씨(현재 국책 연구소 근무)는 “95년 대학원생, 보건소 의사, 학생들이 모여 보건의료정책을 공부하고 자료집 등을 생산하는 단체로 시작되었다”며 “우리가 공유한 것은 국민의 건강권과 보건의료의 국가적 책임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한 검찰이 압수한 이적표현물 등에 대해서는 “정책을 공부하고 고민하는 단체로서 사회주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등의 용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적 용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의 우석진 정책국장 역시 “진보의련은 현재 강조되고 있는 의료의 국가적 책임을 일찍부터 주창해온 단체”라며 “이는 오히려 보건의료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기여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누가 썼는지도 모를 80년대말 제작된 팸플릿을 소지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면 국가보안법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냐”고 반문했다.

전형적인 정권말기 ‘보험성’ 공안사건

보건의료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정권교체기 으레 정치권에서 반복돼온 색깔논쟁의 희생양”으로 해석했다.

진보의련에 대한 경찰의 강제연행이 있던 2001년 10월은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김대중 정부에 대한 ‘친북세력’ 규정과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의장의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출자제한 폐지 방침과 관련한 ‘사회주의적 발상’ 논란으로 정국은 색깔논쟁에 휘말려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민주당 보건의료 전문위원으로 있던 권모 교수에 대한 이적성이 드러났다면 ‘논란’이 ‘사실’로 인정되는 근거로 작용했을 거라는 해석이다.

보건의료단체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선거 캠프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권모 교수에 대한 수사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있을 수 있었던 정권말기 ‘보험용’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후 권모씨는 대통령직 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한편 서울지법의 황찬현 부장판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조직이 해체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문제삼은 것은 창립 이후 일정 기간의 활동내용”이라며 “이적규정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3/06/10 오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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