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에이즈 `약값 논쟁` 재연
에이즈 치료제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의료단체들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관료주의및 무책임을 비판하는 제약회사측이 국제회의에서 맞붙으면서 에이즈 약값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에이즈의 원인균인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규명 20주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에서 13일 개막된 에이즈총회에는 각국의 과학자와 의사, 구호활동가 등 5000여명이 참석해 아프리카의 에이즈 확산 문제를 놓고 책임공방을 벌였다.
이 회의에서 에이즈 구호활동가들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치료제 가격 인하를 약속해놓고서도 일부 약품의 값을 홍보용으로 내렸을 뿐 실질적인 조치를 미루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브룬디의 구호활동가 음부제나캄웨는 “브룬디에는 감염자가 9만명이 넘지만 비싼 약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1000명에 불과하다”면서 선진국들과 다국적 제약회사,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구호기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에이즈 활동가들은 제약회사들과 선진8개국(G8)의 참여가 절실하다면서 선진국들에 답변을 요구했으나, 대답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반면에 독일의 대형 제약회사 베링거 인겔하임의 롤프 크레브스 회장은 “비정부기구(NGO)들의 요청에 따라 에이즈 치료제를 무료공급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무성의 때문에 전달이 잘 안되고 있다”면서 아프리카국 정부들에 책임을 돌렸다. 베링거 측은 지난해부터 신생아들의 에이즈 수직감염을 막기 위해 임산부에 투여하는 ‘바이러뮨’을 무료 공급하고 있는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 중 우간다와 보츠와나만이 약을 받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NGO들은 그러나 ‘선심성 조치’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0년부터 NGO들이 아프리카와 인도, 브라질 등에서 제약회사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 로슈, 머크, 브리스톨마이어스큅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로부터 일부 약품의 가격인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 NGO들은 제약회사들에 에이즈 치료제의 특허권 행사를 포기 혹은 유예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세계무역기구(WTO)의 의약특허 유예 협상은 제약업계의 반발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정부 차원에서 에이즈 치료제의 지적재산권을 인정치 않고 값싼 카피약과 일반항생제 공급을 확대해온 브라질의 경우는 치료비용을 80% 이상 낮춘 것으로 나타나 구호활동가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유엔 산하 에이즈구호기관인 유엔에이즈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6년과 비교해 지난해에는 개발도상국의 에이즈 치료비용이 3억달러에서 28억달러로 9배 이상 뛰었다. 유엔에이즈는 에이즈 확산을 막으려면 2007년까지 매년 100억∼150억달러를 지출해야 한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구정은기자 koje@munhwa.co.kr
2003년 7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