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세상읽기 -22] 대기업 특혜 주는 기업도시특별법
이제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삼성시’나 ‘현대시’, 또는 ‘LG시’가 생길지 모른다. 충무시(지금은 없어졌지만), 을지로, 충무로, 율곡로 등 지명에 사람의 이름이나 호를 붙이기도 하므로 재벌 그룹의 이름을 도시에 붙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국가발전이나 국민의 삶의 질에 또는 특정한 지역의 주민의 삶에 긍정적인 기여를 해서 이름이 붙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기업투자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워 대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기업도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건설교통부가 ‘민간투자활성화를 위한 복합도시개발 특별법(기업도시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건교부는 기업도시가 기업투자 활성화,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획기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의 실상은 경제, 교육, 의료, 환경 등에 있어 포괄적 규제완화를 통해 대기업에게 온갖 특혜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또는 ‘상생의 뉴딜프로젝트’ 등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지만 기업도시 건설은 국가의 기본 법질서까지 무시하면서 재계의 특혜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전경련과 재벌기업은 그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수렴한 기업도시특별법이라는 종합선물세트를 건교부로부터 추석 선물로 받은 셈이다.
기업도시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도시개발의 공공성을 빌미로 민간기업이 50% 이상 협의 매수하면 나머지 토지에 대해 강제수용권을 주는 것이 문제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에 이런 엄청난 권한을 주는 것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수용제도’의 원칙에 어긋난다. 자칫 심각한 지역갈등과 분쟁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둘째, 출자총액제한과 신용공여한도를 완화시켜 주는 것도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공정거래법, 은행법 등은 무력화되고 재벌의 지배구조는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예외적 규제완화는 기존 법률과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와 기업 개혁정책에도 역행한다. 더 큰 문제는 ‘기업도시특별법을 계기로’ 규제완화의 물꼬가 터졌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대기업들이 ’또 다른 특별법 형식으로‘, 때론 ’기존법에서도‘ 규제완화를 하나둘씩 추가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셋째, 기업도시의 지원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기업이 도시개발과 동시에 학교와 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의 설치, 운영에도 타 지역과 구분되는 자율성을 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립학교법, 고교 평준화체계 등에 혼란이 일어나고, 의료의 공공성도 침해될 수 있다. 이미 취약한 보건의료체계에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무너뜨리고 만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넷째, 입지선정도 기업의 자율에 맡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개발입지의 선정에 경제적 효과만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환경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이 막 개발되고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밖에도 기업도시특별법은 법인세, 소득세, 개발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등 각종 조세지원과 부담금 감면혜택 등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기업도시특별법은 건교부가 민간기업에게 토지수용권과 처분권을 통한 개발이익보장에서부터 포괄적 규제완화를 통한 특례조치와 게다가 세제지원, 세금감면까지 몰아주는 “초강력 대기업 특혜 보장법”이다.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기업도시특별법은 특정 재벌의 이익만을 보장할 뿐이다.
기업도시 건설은 투자확대와 고용증대를 빌미로 그간 재계가 요구한 각종 규제완화를 집대성한 것이다. 모든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어 개발이익을 독점하려는 대기업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정부가 이에 말려 들어가는 것은 투자 위축과 고용 불안 때문이다. 이헌재 부총리가 기업도시 건설이 건설경기와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도시가 그 해법은 아니다. 기업도시가 만들어진다 해도 수출중심의 불균형 성장을 개선하지도 못하고 내수부진 타개를 위한 투자활성화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토지개발 및 경영, 세제, 노동, 환경, 교육, 의료 등과 관련한 모든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지금까지 어렵게 진행된 개혁마저 포기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공론화 없이 경제, 환경, 교육, 의료 등에 있어 포괄적 규제완화와 특혜를 대기업에게 부여하는 건교부의 ‘민간투자활성화를 위한 복합도시개발 특별법(기업도시특별법)’은 철회되어야 한다.
손혁재(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등록일 : 200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