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다음 “백혈병 180만원 약값이 이제 3600만원“

“백혈병 180만원 약값이 이제 3600만원“  

“생명에 직결된 약값이 하루 아침에 20배 이상 오른다면 어떻게 약을 먹겠습니까.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듯이 먹을 수 없는 약은 약이 아니죠. 전 세계 인구 중에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인구가 8억입니다. 중증환자의 경우 한 달 약값만 300만원이나 되는 다국적제약 회사의 약만 먹으라고 강제하는 것은 그냥 죽으라고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

국내 백혈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지난 해 12월 인도가 ‘의약품과 농화학물에 대한 물질특허제도’ 도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옥스팜, PHM(people health movement), 국경없는 의사회 등 세계적인 NGO들도 법 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인도의 특허법 개정에 전 세계 백혈병 환자들이 크게 낙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는 ‘방법특허’만 인정하고 있었다. 같은 성분이라도 다른 방법으로 똑 같은 성분의 약을 만들면 됐다. 이 때문에 전세계 200여 국가에 에이즈와 백혈병 치료제 등을 다국적회사 제품의 20분의 1 수준의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국내 백혈병 환자들도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백’의 복제약인 인도산 ‘비낫’을 복용해 약값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세계무역기구가 인도에 방법특허가 아니라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고, 인도가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물질특허는 제조 방법이 달라도 제조 성분이 같으면 특허권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인도는 싼 약을 더이상 생산할 수 없다.

인도 정부는 2004년 12월 개정된 특허법을 공표, 2005년 7월 이내에 이를 비준할 예정이다. WTO의 조약(TRIPs plus)은 의약품의 물질특허를 20년 동안 인정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법안이 발효되면 인도는 복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없으며, 인도에서 수입한 복제약을 복용해 온 한국 등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에이즈, 백혈병 환자들은 당장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대체약 의존하는 환자들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 없어”

  [사진제공=HIV/AIDS 인권 모임 나누리+]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연합, HIV/AIDS 인권 모임 나누리+ 등 시민단체들은 “인도의 특허법 개정은 인도에서 만들어지는 대체약에 생명줄을 의지하고 있던 전 세계 수백만명의 환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 4000만명의 HIV 감염인, 에이즈 환자 가운데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600 만명이지만 실제 치료 받는 환자는 44만명에 불과하다. 현재 사용되는 15가지 에이즈 치료제는 대부분 특허의약품이며 다국적 회사의 독점으로 가격이 비싸다. ‘HIV/AIDS 인권 모임 나누리+’의 곽경호 간사는 “환자들 대부분은 생계비보다 몇 배 비싼 약값을 지불하지 못해 인도에서 생산하는 복제약에 의존하고 있다”며 “인도약의 공급이 끊길 경우 그 부작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180만원 약값이 3600만원으로” 백혈병 환자들 막막

인도의 특허법 개정은 당장 우리나라의 백혈병 환자및 가족들에게는 심각한 고통이 되고 있다.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백의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급성 백혈병 환자나 보험 적용 한도인 8알보다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중증 환자의 경우 한 달 약값 부담액은 300만원이 넘는다. 이들은 자기 치료가 목적인 경우에만 수입을 허용한다는 국제 조약에 따라 개인적으로 인도에서 약품을 구해 복용하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권성기 사무국장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백혈명 환자의 경우 인도에서 만드는 비낫을 먹으면 연간 수 천 만원의 약값 부담을 연간 180만원으로 줄일 수 있다”며 “WTO가 대체약을 만들지 못 하도록 강제한다면 환자들은 수 천만원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들의 처지는 글리백의 보험 적용과 본인부담금 인하라는 결과를 얻었던 2003년도의 글리백 투쟁과 비슷해 보이지만 구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열악하다. 권 국장은 “당시 글리백 투쟁을 벌였던 백혈병 환자 수보다 현재 보험 급여를 받지 못해 비낫을 먹고 있는 환자의 수가 30분의 1에 불과해 사회적 관심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급성 백혈병 환자가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급성 환자에 대한 임상 실험을 실시해야 하지만 대상자가 적다는 이유로 임상실험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에이즈 치료약 강제 실시한 브라질, 에이즈 사망률 50% 줄여
“WTO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대변인인가”

지난 2002년 글리백 투쟁에서 글리백 공대위 등 보건 단체들은 정부에 글리백과 똑 같은 약의 생산을 요구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강제 실시’를 청구했다. 강제실시란 공익상 필요하거나 특허권이 남용되는 경우 등 일정한 요건과 절차 하에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특허발명을 다른 사람이 실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노바티스사는 그러나 한국의 백혈병 환자 600여명은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는 규모가 아니고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며 강제 실시를 할 수 없다고 맞섰다.

문제는 미국 등 강대국들은 강제실시제도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지만 약소국들은 다국적 제약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WTO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4명이 죽은 탄저병 치료제를 생산하기 위해 강제 실시를 시행했고 브라질과 태국도 강제 실시를 통해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해 무상 공급하기도 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은 “브라질에서는 강제 실시 이후 에이즈 환자의 사망률이 50%나 줄어들었다”며 “인도의 복제약을 구하기 위해 동남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아우성을 칠 정도로 에이즈, 백혈병 환자들의 약값 부담은 살인적이다”고 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노바티스사의 신약 개발비 8억 달러 가운데 70%는 FDA, 20%는 암 연구센터에서 투자했고 노바티스가 부담한 액수는 10%밖에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바티스는 신약 출시 1년 3개월 만에 개발비를 모두 회수했다”며 “5년이던 특허보장기간을 20년으로 늘린 WTO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대변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심규진 기자  
2005.3.1 (화)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