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건보흑자, 암무상진료 가져오나

건보 1조3천억원 흑자, 암 무상진료 가져오나
민간의료보험 대부분 차지하는 암보험… 무상진료 놓고 논쟁 뜨거워

    송상호(seonjeon03) 기자  
  
지난 24일자 미디어다음의 ‘건보재정 흑자 어떻게 써야 할까요’ 설문조사에서 참가자 4천여명 중 48%가 암 등 중증질환 치료에 써야 한다고, 42%가 보험료를 내리거나 돌려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후자 의견이 적지 않은 것은 우리 나라의 보험료 수준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 나라의 보험료율은 현재 4.31%인데 이것은 서구 유럽의 1/3, 이웃 일본이나 대만과 비교해도 1/2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낮은 보험료율이 ‘저부담 저급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다.

해마다 교통사고로 7천5백명이 사망하지만 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9배 가량인 6만4천명이다. 한달에 무려 5300명, 하루에 177명 꼴이다. 암 환자들은 발생 첫 연도에만 1000만원의 공식적인 의료비를 사용한다. 건강보험에서 암에 대한 보장성은 50% 수준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낮은 보장성 때문에 국민들은 여유가 안되더라도 민간 암보험에 가입한다. 40세 남성이 ㅅ보험사의 암보험에 가입하려면 월 십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암 진료시 최고 5천만원까지 보상이고 40년 후인 80세가 되면 원금의 80%를 돌려주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2004년의 건보재정흑자분 1조5천억원을 MRI와 암 등 중증질환의 급여를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MRI 급여 적용 등에 7천억원을 사용할 것은 결정했지만, 나머지 8천억원의 사용우선순위는 아직 논의 단계다. 그리고 직장보험에서 당초 추계치보다 최소 5천억원이 더 걷힌다. 즉, 쓰임새를 정하지 않은 1조3천억원의 건보재정이 있는 것이다. 1조3천억원 중 1조원을 암 질환의 투입하면 사실상 완전한 보장성이 이루어진다. 국민 누구나 암 보험에 따로 가입하지 않아도 암으로 경제적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급여’가 탄생하는 것이다.

올해 민간의료보험(생명보험)의 보험료 수입은 6조8천억원이며, 이 중 암보험 보험료가 최소 3조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나라 모든 가구가 암 때문에 적어도 16만7600원 이상씩 더 부담하는 셈이다. 암에 대한 공포로 가입자들이 수십년 동안 매월 10만원을 암보험에 부을 것인가, 현재 확보된 보험재정으로 모든 암환자에게 무상진료를 해줄 것인가. 이 선택은 어떻게 결정되는냐에 따라 사회연대의식의 공유와 확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암은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에서 1.5배가 더 많이 걸린다. 하지만 이들은 민간 암보험 가입은 고사하고 암에 걸려도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암에 대한 무상진료는 민간 암보험에 대한 비용 지출을 중단하고, 그 일정 부분을 공보험에 지출할 수도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도 기대할 수 있다.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해 법으로 무상 진료를 규정하고 있는 대만의 공보험에 대한 만족도는 85% 수준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창보 국장은 “암에 대해 완전한 보장성을 주장하는 까닭은 이것이 이루어지면 다른 중증 질환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보장성 강화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며 “여론을 환기 시키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암의 우선 무상진료 주장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 나라의 민간의료보험 보험료 수입은 건강보험의 40%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남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예를 보면 2001년에 영국 3.3%, 독일 12.6%, 네덜란드 15.2%(OECD World Health Report, 2004년)이다. 이들 국가는 민간의료보험의 무분별한 적용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보험 와해 현상의 심화로 많은 계층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남미 국가들은 2001년에 칠레 56%, 아르헨티나 46.6%, 멕시코 55.7%, 브라질 58.4%(WHO Health Dater, 2004년)이다. 최근 WHO는 칠레의 보건의료시스템평가를 통해 전 세계 191개국 중 168위로 평가했다.

모처럼 불붙은 ‘암의 무상진료’ 논의가 시사하는 바는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건강보험의 새로운 방향 설정을 고민하는 것임과 동시에,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핵심상품인 암 관련 보험상품의 생사와도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도입이 핵심인 ‘의료의 산업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잠재적 폭발력도 간과할 수 없는 ‘후폭풍’이다.  

2005.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