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후유증 국내 38만명 추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
◈대(代)를 이은 전쟁의 고통〓미군이 살포한 고엽제의 피해는 3 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참전용사는 물론 그 2세들까 지 후유증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보훈처 자 료에 따르면 정부가 공식 인정한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7만7000 여명. 그러나 고엽제 후유증 신고자 중 약 20%만이 후유증 판정 을 받았을 뿐이고, 월 23만~46만원의 수당을 받는 사람은 정부가 인정한 환자의 55%에 불과하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은 “ 참전 용사 2세에게서도 각종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지만 2세에 대 한 정부차원의 연구는 계획조차 없다”고 정부의 무성의를 질타 했다. 베트남 노동사회부는 지난해 “고엽제 장애인은 약 62만명 이며, 그 중 16세 이하 청소년이 15만명”이라고 발표했었다.
미군은 지난 61~71년에 베트남 2000만 갤런이 넘는 고엽제를 살 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65년부터 집중적으로 살포된 ‘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포함돼 있었다.
대한민국 고엽제후유의증 전우회 관계자는 “당시 에이전트 오렌 지의 약 80%가 한국군 작전지역에 뿌려졌지만, 한국군은 아무런 주의사항도 듣지 못했다”며 “하늘에서 노란비가 내리는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 99년 고엽제 후유증 환자 1만7200명은 미국 고엽제 제조회사 다우케미컬 등을 상대로 낸 5조원대 손?晩邕?소송을 청구했으나 1심에서 기각되는 등 보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베트남서 버림 받은 ‘라이 따이한’◈부끄러운 전쟁의 자화상〓베트남전은 ‘라이따이한’이라는 말 을 말들어 냈다. 한국인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 태어난 한인 2세 를 뜻한다.‘라이(혼혈잡종)’와 ‘따이한(한국)’이라는 베트남 어를 합친 것으로 경멸의 의미를 갖고 있다.
라이따이한은 1500여명이라는 주장부터 수만명이라는 주장이 있 을 정도로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참전 용사들은 현지의 부인과 자식들을 남겨둔 채 귀국했고, 이제는 3 0~40대가 된 라이따이한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자 라야 했다.
베트남 전문가 서강대 동아연구소 이한우 상임연구원은 “베트 남에서는 친목 단체를 만들 경우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들을 체계적으로 돕는 단체가 만들어지지도 못한다”며 “라이따 이한은 한국과 베트남의 무관심 속에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92년 한·베트남 수교 이후 한국 기업인들이 베트남에 진출, 라 이따이한을 채용하면서 일부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번에는 ‘신 라이따이한’으로 불리는 2세대들이 생겨나 부끄러 운 과거가 반복되는 실정이다.
(::’참전국의 과거사’ 아직 숙제로::)◈민간인학살 의혹〓한국군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했다는 의 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숙제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가 제기된 상황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교양학부)는 “베트남에는 한국군이 만든 수많은 노근리가 있는 셈”이라며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솔직 히 사죄해야 일본, 미국에도 더 당당하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는 마을마다 주민들이 어떻게 죽어 갔는지를 기록한 비석 ‘증오비’가 세워져 있고, 참전용사 중에 서도 소수나마 민간인 학살을 증언한 사람들이 있다.
평화운동단체들은 지난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본의 아니 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이후 증오비 소재지역에 초등학교 40여개를 지어준 것을 부분적 책임인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민간인학살 문제는 베트 남전의 진정한 종전을 위해 넘어야할 또하나의 산이다.
김성훈기자 ta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