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 길, 노-사 자율교섭으로 열다”
금속 산별교섭 사실상 타결…26일 최종 조인식 예정
2005-07-20 오후 2:34:11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국내의 대표적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교섭시작 100일만에 사용자단체와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총 6일간 26시간 시한부 파업을 벌이는 등 진통이 있었지만, 총파업 등 파국에 이르기 전에 노·사 자율교섭으로 문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특히 이번 노·사 합의에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한 조항들이 대거 포함된 점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로 사회문제로 지목돼 왔다. 이번 합의는 비정규 문제 해결에 산별노조 접근 방식이 효과적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계기이기도 하다.
금속 노·사 사실상 합의 도달
지난 4월 12일 제1차 중앙교섭이 시작된 이래 만 100일만에 금속 노사가 19일 밤 18차 중앙교섭에서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교섭 초기 ‘사용자단체 구성 미비’ 등을 이유로 난항을 겪던 금속 산별교섭이 노·사의 끈질긴 대화 노력으로 무리없이 타결된 것이다.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단체(준)에 따르면 금속 노·사 합의사항은 △해외생산품 국내반입 시 고용문제 노사합의 △최저임금 월 76만5060원의 비정규직 적용 △노조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비정규직의 고용보장 △불법파견 확인시 정규직 채용 △사내식당 우리쌀 사용 등 5개 부문이다.
19일 밤 10시30분 김창한 금속노조위원장과 이금구 금속산업사용자단체(준) 대표는 이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노조는 오는 22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에 대한 중앙위 위원들의 승인 절차를 밟은 뒤 26일 경 사측과 최종 합의문에 공동 서명할 방침이다.
금속 노-사는 19일 제18차 중앙교섭에서 교섭 시작 100일만에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 합의는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최저임금 적용에 비정규직-이주노동자 포괄…노동자 연대원칙 지켜
이번 합의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저임금과 불법파견 관련 조항이다.
최저임금 관련 노사합의문을 보면, 사용자는 최저임금으로 월 통상임금 76만5060원과 통상시급 3280원 중 높은 금액을 적용키로 했다. 적용대상은 비정규직·이주노동자를 포함해 금속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로 확대했다.
일단 금액 면에서 보면, 노조 당초 요구안인 81만5100원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지난해 70만600원보다 9.2% 인상됐다. 특히 지난 6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 최저임금보다 11만7160원(주 40시간 기준) 높다.
또한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이주노동자를 제외하자는 사측의 끈질길 요청에도 비정규직과 함께 이주노동자를 최저임금 적용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금속노조 협상단이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낸 것으로 평가된다.
금속노조 박점규 선전국장은 “교섭기간 내내 사측은 이주노동자가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며 “하지만 노동자 내의 차별을 노조가 용인할 수 없다는 기조를 끝까지 유지해 사측의 양보를 끌어냈다”고 밝혔다.
금속 노-사가 19일의 제18차 중앙교섭에서 마련한 잠정 합의안은 비정규노동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기본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비정규직 권리확보 틀 마련
또한 이번 합의문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기본틀을 마련할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점도 높게 평가된다. 그동안 비정규노동자는 비록 헌법과 노동관계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었지만, 일상적 고용불안 위협과 열악한 처우로 노동 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합의문은 이와 관련 “사측은 사내하청 및 비정규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노조가입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비정규노동자의 노조 결성, 가입, 활동이 자유로워질 수 있게 했다. 또 합의문은 “사내 하청노동자의 노조활동을 이유로 원청회사가 하청업체와 계약해지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조항이 적용되면, 하이닉스-매그나칩,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사례처럼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활동을 할 경우, 원청회사가 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하는 행위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금속노조는 이와 관련 “단협에서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 동안 숨죽여 있던 금속산업 비정규노동자들의 대거 노조가입과 결성이 앞으로 기대된다”며 “올해 하반기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 길 열려
끝으로 금속 사업장의 현안인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도 금속 노-사는 높은 수준의 합의에 이르렀다. 불법파견이란 사측이 ‘도급’형식을 빌어 불법적으로 파견근로를 제공받는 것을 말한다. 특히 자동차-조선업종에서 노-사 갈등의 핵심 사안으로 두드러져 있다.
합의문은 “사측은 노동부 등 관계기관에 의한 불법파견 확인 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혀 사실상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화 원칙을 규정했다. 또 “사측은 경영상 부득이한 사유로 일부 부서나 물량을 도급으로 전환할 때는 노조와 합의하여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이금구 금속산업사용자단체(준) 대표(왼쪽)와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이같은 합의가 현장에 적용될 경우 불법파견 철폐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내하청노조들에 큰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GM대우 창원 비정규노조, 기아차 화성 비정규노조의 정규직화 투쟁은 이번 금속 노-사 합의에 당장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