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약대생 공부 더 하겠다는데 의사가 파업을? 분석약대 6년제 학제개편 둘러싸고 대립하는 의-약계 속내

약대생 공부 더 하겠다는데 의사가 파업을?
[분석]약대 6년제 학제개편 둘러싸고 대립하는 의-약계 속내

▲ 약학대학의 학제를 6년제로 바꾸는 것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6월17일 서울 중구 쌍림동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한 약대 학제개편공청회장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책상 등으로 가로막고 있다. 공청회는 2주 뒤로 미뤄졌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의사들이 집단휴진 여부를 놓고 이번주 안에 찬반투표를 벌일 모양이다.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8일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정부가 약대 6년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집단 휴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번주 안에 찬반투표를 벌인 다음 임시 대의원총회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정 회장의 이날 발언은 지난 2000년 의사파업의 악몽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김 회장이 당시에도 의협 회장으로서 장기 파업을 이끌었던 장본인이어서만은 아니다. 약사파업도 다르지 않지만, 의사 파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내부 문제보다는 약사나 한의사 같은 인근 직능과의 관계 때문에 파업을 벌인다는 것이다. 2000년 당시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약사 쪽과의 갈등이 배경이다.

의협은 그동안 약대 6년제 학제 개편을 두고 잇따라 실력행사를 해왔다. 지난 6월17일 공청회를 무산시킨 데 이어 7월5일 교육부 주최 공청회도 파행으로 내몰았다. 약대의 학제를 4년제에서 6년제로 늘리는 것이 의사들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약대생들이 공부 더하겠다는데 의사들이 몸싸움은 물론 집단 휴진까지 마다지 않으려는 까닭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양쪽 모두 “국민을 위해”

“밥그릇 싸움으로 보지 마세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우리는 싸우는 겁니다.”

김준 의협 정책이사는 “약사들이 부적절한 전문지식으로 약을 지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의사들은 약대 학제가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는 것을 ‘약사들이 약을 조제만 하지 않고 처방까지 하겠다는 것’으로 등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약대 학제 변경을 의사 처방전 없이 약사가 약을 임의조제하려는 음모로 보는 것은 논리보다는 직관에 가까워 보인다. 인명을 다루는 최고 전문가들의 집단행동 근거로는 어딘지 모르게 취약하다.

약대 학제가 2년 늘어나면 예비 약사들은 그 기간만큼 임상실습을 하게 된다. 대한약사회는 “그동안 약사들은 임상 경험이 없어 환자들에게 적절한 복약 지도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학제를 늘리면 약사가 처방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환자들에게 정확한 복약 지도와 상담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50년 넘게 진단과 처방을 하며 의사 구실까지 해온 약사들이 정작 복약 지도에도 자신이 없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어쨌든 약사들도 ‘국민’을 위해 학제를 개편하겠다고 한다.

‘국민’은 의사들이 싸우는 첫번째 명분이자 두번째 명분이기도 하다. 약대를 6년제로 늘리면 국민 의료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의협은 “2년 더 배운 만큼 조제료를 더 받으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그러면 의약분업 때처럼 막대한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약사회는 “비용 문제는 학제개편과 직접 상관이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단지 2년을 더 배웠다는 이유로 의료비를 올려받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인상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이상의 서비스 향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진료비를 낮추려고 언제 한번 노력해봤느냐”고 쏘아붙인다.

의-약 갈등이 밥그릇싸움일 수밖에 없는 이유

이쯤 되면 감정싸움이다. 의협은 유통문제도 들고 나온다. 의협은 “약대 6년제가 세계적 추세라면서 슈퍼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경향은 왜 따르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또 “소비자의 의약품 선택권을 약사가 카운터에 서서 가로막고 있다”며 “먼저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부터 보장하라”고 말했다. 환자가 증상을 얘기하면 약사는 자신이 선택한 제품을 내민다는 것이다. 약사회는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는 의약품 분류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라며 “의사 역시 성분명이 아닌 제품명 처방을 하면서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고 있지 않느냐”고 맞받아친다.

  

▲ 의료계가 총파업을 추진했던 지난 2000년 6월, 의료공백이 장기화 되고 있는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에 보호자 대기실까지 환자들로 꽉 들어차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연합  

  
의료비와 유통은 의료시장 전체의 문제다. 그러나 약대 6년제 공방 과정에서 서로 공고하게 쌓아 온 비용과 유통에 관한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비용과 유통부분에서 의사와 약사는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의사들에 대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에 대해 “성분으로 처방해서 제품 선택의 권리가 약사에게 넘어가면 약사는 안 그럴 것 같으냐”는 의협의 말은 의사들이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다. “약사가 꺼내 준 약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제품을 찾으면 된다”는 약사회의 말도 마찬가지다. 비용을 지불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약대 6년제를 둘러싼 의-약 갈등은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국민을 위해 나섰다”고 하지만, 의사들의 분노에는 ‘영역침해에 대한 언짢음’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권용진 의협 사회참여이사는 “조제도 원래 의사의 몫이었는데 전문화되고 분화되다 보니까 약사의 역할이 생겨난 것이다. 약사 권한이 확대되면 우리 권한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며 “공부를 더 하든 말든 우리와 겹치는 부분은 상의하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약대 6년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나타날지도 모를 약사의 권한 확대다. 경쟁사회에서 전문지식은 권한이고 이익임을 감안할 때, “약사도 더 배우겠다”는 말이 의사들 귀에 이권침해로 들리는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의학’보다 더 어려운 ‘합리적 대화법’

그러나 문제는 ‘언짢음’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위해 더 배우겠다”는 약사회의 말이 처음부터 통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의사 처지에서는 “더 배우겠다”는 말 자체가 불쾌하다. 의협 홍보실장 오윤수씨는 “약사들이 더 배운다고 더 많이 알겠냐”면서 “약대에서 추가한 임상 부분은 우리가 이미 다 문제없이 해온 것들”이라고 말했다. 또 “약사는 약 만드는 법만 익히면 되고 진료는 의사의 고유영역”이라며 “환자에 대해 의사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전문성은 강조하면서 다른 이의 전문성은 폄하하는 편협한 전문주의가 묻어난다. 두 번의 공청회를 사실상 무산시킨 의협에게 “배운 사람들이 할 짓이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의사들의 실력행사는 ‘너무 많이 배웠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공청회 사태는 극으로 치달은 편협한 전문주의를 확실히 드러냈다. “의사만이 환자를 볼 수 있다”는 말에는 고유 권한인 진료권을 환자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를 신성시하는 데 쓰는 의사의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런 의사에게 다른 집단과 합리적으로 대화하는 법은 의학지식보다 더 어려운 ‘전문지식’이다.

“전문직은 전문성과 공익성 갖춰야…국민을 위한 폭력은 없다”


▲ ‘의약분업’ 논쟁이 뜨거웠던 지난 2000년 여름,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카톨릭의대에서 열린 의권쟁취 결의대회에 참가해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편협한 전문주의와 기득권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의료시장 변화에 대해 의사들은 언제까지나 ‘언짢을’ 수밖에 없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과)는 “전문직은 전문성과 함께 공익성을 가져야 한다”며 “의사의 경우 다른 이익집단에 비해 내부적으로 공익을 말하는 목소리가 미약하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파업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인 과거의 경험이 그들의 의사표현 방식을 더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며 “사회적 합의를 얻으려고 노력할 때라야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쪽 모두 “공개토론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의협은 약사회가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 못마땅하고, 약사회는 절차를 이유로 대답하지 않는 의협이 못마땅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교육비는 결국 국민이 부담하기 때문에 약대 6년제뿐 아니라 의대의 4+4제, 전문 치의제 등 보건의료 부분의 전문직 강화 경향에 대해 정부가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보다 의-약간 이해 조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우 국장은 “학제 개편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라며 “의료계의 문제를 교육부, 복지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독립기관을 따로 만들어 풀어가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김연주 인턴기자 mintcandy99@naver.com

기사등록 : 2005-08-09 오후 02:54:44기사수정 : 2005-08-09 오후 03:26:37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