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치료제 확보 비상…”치료제 생산을 ‘허’하라”
인구 2% 분량도 확보 못 해…강제실시권 적용해야
2005-10-14 오후 1:48:19
14일자로 전국에 조류 독감 발생 예보가 내려진 가운데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확보하는 데 비상이 걸렸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가 독점 생산하고 있는 이 약에 대해서 “강제실시권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류독감 치료제 확보 비상…우리 인구 2% 분량도 확보 못해
세계보건기구(WHO)가 조류독감에 대해 경고하고 나서면서 각국이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스위스는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25% 분량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이고 유럽연합(EU)도 자국민의 20% 분량을 확보하기 위해 대량 구매를 예정하고 있다. 당장 이웃 일본도 2000만 명 분량을 주문했다. 고작 80만 명 분량을 확보하는 데 그친 우리나라와 크게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편 이런 각국의 타미플루 확보 움직임에 힘입어 이 약을 독점 생산하고 있는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 최근 들어 타미플루 주문이 급증해 평상시보다 매출이 최고 7~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로슈는 이미 올해 상반기 타미플루 판매로 약 4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연간 7억 달러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로슈는 이런 상황에서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2006년 중반까지 타미플루 생산량을 지금보다 최대 10배 이상 늘릴 예정”이라며 “타미플루를 하청 생산할 의향이 있는 회사가 있으면 누구와도 협조할 수 있다”며 여유를 과시했다.
”로슈 독점하고 있는 타미플루에 대한 ‘복제 약’을 허하라”
한편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타미플루에 대해 각국이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발동해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강제실시권은 지적재산권 관련 국제협정도 보장하고 있는 권리로서 “각국이 국가 긴급 사태나 극도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특허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공중 보건과 관련해서는 각 정부에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다. 타미플루의 경우 강제실시권을 적용하게 되면 국내 제약회사들은 이 약과 효능이 거의 흡사한 복제 약을 생산해 환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4일 성명을 내고 “WHO가 밝혔듯이 로슈가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앞으로 10년이 걸려야 전 세계 20%가 복용할 수 있는 타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을 뿐”이라며 “조류독감이 인체 간 전염병으로 번질 경우 전염 속도가 아주 빨라 로슈 혼자서는 이 약 생산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7일 발표했듯이 조류독감이 인체 간 전염병으로 번지면 우리나라 국민 중 1500만 명이 감염돼 이중 9만~44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며 “타미플루 등 치료제를 많이 확보하면 할수록 사태의 악화를 막을 수 있지만 국내에서 확보하는 타미플루는 턱없이 모자라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이미 대만에서도 타미플루의 강제실시권 적용을 준비 중”이라며 “우리 정부도 결단을 내려서 이 약에 대한 안정적인 국내 공급 기반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이렇게 타미플루에 강제실시권을 적용하게 되면 국내는 물론 조류독감 최대 피해 지역이지만 타미플루 생산 시설이 없는 동남아시아 등으로 값싸게 공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강제실시권 적용에 ‘새 가슴’…미국 캐나다는 국익 위해 과감히 적용
강제실시권은 자국적의 다수의 초국적 제약회사가 있는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탄저균 소동이 일어나자 미국 정부는 탄저병 치료제 ‘시프로베이’의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의 특허를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실제로 강제실시권을 적용했다. 심지어 캐나다는 탄저병이 발생하지도 않았지만 시프로베이 특허를 무시하고 자국 제약회사 아포텍스에게 100만 정의 복제 약 생산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가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대해 2000년대 초 환자들의 강제실시권 적용 요구가 빗발쳤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긴급 상태’나 ‘극도의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강제실시권 적용을 포기했었다.
전 국민 대비 2%에도 채 못 미치는 타미플루 물량 확보에 그치고 있는 우리 정부가 이 약의 강제실시권 적용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할 일이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