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거부한 美쇠고기, 왜 우리는 먹어야 하나”
광우병 위험 불구 美쇠고기 수입 재개…”국민 건강 포기하나”
2006-01-26 오후 4:18:26
일본이 광우병을 이유로 미국의 쇠고기 수입을 다시 전면 중단하면서 우리 정부의 처신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조처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방침을 고수할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광우병 유발지역 일본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하는데…”
5개 보건의료단체들로 구성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6일 “일본의 수입중단 조처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우리 정부의 행태는 국민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정부를 비판했다.
이 단체는 “일본이 미국의 쇠고기 수입을 다시 전면 중단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의 수입 방침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며 “정부의 이런 태도는 미국 정부의 압력에 국민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으로 절대로 용인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이런 정부의 태도는 캐나다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돼 우리 정부와 캐나다 정부 사이의 쇠고기 수입 재개협상이 중단된 것과도 배치된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멕시코, 대만 등은 미국에 대한 종속도가 높은 나라이거나 일본 등 이미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라며 “뉴질랜드, 호주, 유럽 등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조치를 국민 건강 보호정책으로 양보할 사항이 아니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우리의 경우에는 황우병 청정지역일 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등 대체 수입국이 존재하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24일 일본 정부는 미국에서 수입한 쇠고기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발견됐다면서, 이미 재개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다시 전면 중단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수는 국민 생명 포기 행위
한편 정부가 그간 미국산 광우병 수입 재개의 이유로 밝힌 이유도 허점투성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간 우리 정부는 살코기만 수입하면 광우병에서 안전하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축산업계가 ‘자동 기계를 이용한 쇠고기 도축·포장 과정에서 등뼈, 내장과 같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고 주장해온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최근 사태는 이런 정부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문제가 된, 등뼈가 붙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출업체에는 미국 정부 검사관이 상주하고 있다. 더구나 이 쇠고기에는 미국 정부의 검사필 증명서까지 첨부돼 있었다. 미국 정부의 쇠고기 검사 과정의 심각한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 정부는 ’30개월 미만’ 소를 수입하면 광우병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해 왔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30개월 미만의 송아지는 광우병 조사를 아예 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소를 도살할 때 소의 나이를 떠나 모든 소를 조사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광우병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쇠고기가 수입되는 것이다.
광우병 전달 물질이 살코기에는 없다고?
사실 ‘광우병 전달 물질이 살코기에 없다’는 전제마저도 과학적 검증이 안 된 주장이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의학 잡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는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에 걸린 환자의 근육에서 광우병 유발 단백질로 의심을 받고 있는 프리온이 검출됐다’는 논문이 실린 적이 있다. 이것은 소의 살코기에서도 프리온이 검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광우병 의심 소가 최초로 발견된 지난 2003년 12월 〈월 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소의 살코기 안전성을 자신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WSJ는 “그동안 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은 가축의 뇌조직, 척수, 내장 등에만 축적되는 것으로 간주됐지만 최근 소의 근육에 프리온 단백질이 축적돼 검출된 사실이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실을 최초로 주장한 스탠리 프루시너 박사는 1997년 광우병과 관계된 프리온 단백질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의 근거가 된 농림부 산하 방역기술협회 전문가들조차도 미국산 소의 살코기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안전하지 않다고 인정한 쇠고기를 국민에게 먹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캐나다산은 외면하면서 다르지 않은 미국산은 왜?
정부가 캐나다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협상을 중단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003년 발견된 미국 최초의 광우병 소가 캐나다산이었던 것에서 드러나듯이 캐나다와 미국 북부 지역의 소는 사실상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2005년 6월 발견된 광우병 소는 캐나다산이 아니라 미국산이다. 또 캐나다는 광우병 전염의 원인으로 알려진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를 금지하지도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광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소의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 △검역 및 검사 기준의 강화 △도축 과정에서 살코기에 뇌수·내장 등이 섞이지 않도록 할 것 △소 혈장 성분 인공분유로 송아지 사용 금지 등의 지침을 세웠다. 미국의 축산업계는 현재 이 중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미국에서 동물성 사료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고, 소의 피가 섞인 인공분유로 송아지를 사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 눈치 보느라 국민 건강 외면?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방침을 고수하는 이유가 미국 정부의 강한 압박 탓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국 정부는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자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된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등 미국산 쇠고기의 주요 수입국에 강한 압박을 해왔다.
이런 압박은 미국 축산업계와 현 조지 부시 행정부의 유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매번 대통령 선거 때마다 미국 축산업계가 기부한 선거자금의 80%는 공화당 후보를 위해 쓰이고 있는 형편이다.
일례로 지난 2004년 민간단체인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미국 축산업계가 기부한 선거자금 470만 달러 가운데 79%가 공화당으로 제공됐다. 또 2004년 대선을 위해 미국 축산업계가 제공한 선거자금의 80%도 공화당으로 흘러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 때문에 2004년 대선 때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부시 행정부의 광우병 파동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강양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