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FTA…스위스는 중단하고 한국은 잰걸음
[한미FTA 뜯어보기 1] 농산물시장 개방이 미국의 제1목적
2006-02-01 오전 9:27:08
한국과 미국의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협상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로버트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월 2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고 있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로이터〉 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2월 2일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7번째 교역대상국인 한국과 FTA를 체결한다면 미국이 지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한 이후 최대의 무역협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미국은 행정부가 대외교역 협상권을 한시적으로 갖는 ‘무역촉진권한(TPA)’의 만료시한이 2007년 6월로 다가옴에 따라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과의 FTA 체결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 정부에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고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라는 압력의 수위를 높여 왔다.
우리 정부는 이런 미국 측의 요구에 화답해 올해 초에 갑자기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크린쿼터도 절반으로 축소해주는 ‘신속성’을 보였다. 아울러 정부는 2월 2일 ‘한미 FTA 관련 공청회’를 개최해 미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하기로 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의 각계에서 한미 FTA에 관한 논의를 해 왔지만, ‘한미 FTA는 무조건 좋은 것’ 혹은 ‘한미 FTA는 세계화 시대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입장과 ‘한미 FTA는 악’ 혹은 ‘FTA는 우리 입장에서 취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 맞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물론 그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한미 FTA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한미 FTA 협상의 진행과정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하는 논의들을 점검하며, 이 협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 “FTA는 그 나라 농업 개방 겨냥한 것”
다보스 포럼에 참가한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1월 28일 “미국의 FTA 협상의 기준은 농업”이라고 밝혔다. 즉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FTA을 맺으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미국의 농산물을 관세 부담 없이 싼값으로 수출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포트먼 무역대표의 발언은 한국과의 FTA 협상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미국은 한국과의 FTA 협상에서 우리 측에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와중에 스위스는 농업을 완전 개방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국과의 FTA 협상을 포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스위스 정부 “농업을 완전 개방하느니 미국과 FTA 체결 안 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월 27일 미국과 스위스는 FTA 협상 개시에 앞서 열린 양국 간 경제공동위원회에서 농업 분야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FTA 협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양국은 ‘무역투자 포럼’을 구성해 양국간 경제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미국과 스위스가 FTA 협상을 개시조차 하지 못한 것은 한마디로 ‘농업 분야를 전면 개방하지 않으면 FTA 협상을 시작할 수 없다는 미국의 압력에 스위스가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농업 전면개방 요구에 스위스는 “치즈, 고기 및 밀 등 일부 농산품은 FTA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맞선 것이다. 미국은 스위스의 전체 수출 중 11%를 차지하는 제2의 수출시장이다.
한국 정부 “한미 FTA 체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이와 달리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개, 스크린쿼터의 축소 등 미국이 요구해 온 FTA 협상 개시 조건을 다 들어주어, 스위스 정부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1월 13일 미국 측의 요구로 원래 일정보다 앞당겨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일본이 최근 광우병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다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금수 조치를 내렸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재개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1월 26일 정부는 한국영화의 의무상영 일수 기준인 스크린쿼터도 미국 측의 요구대로 현재의 절반 수준인 73일로 줄여 7월부터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결정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그 배경에 미국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들은 모두 미국과의 물밑 교섭을 통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 특히 쇠고기 수입 재개와 스크린쿼터 축소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축산업 농민들과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정부는 교섭을 끝낸 후 국민에게 일방적인 ‘통보’만을 했을 뿐이다.
현재까지의 정부의 태도를 놓고 봤을 때 미국이 우리나라에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을 요구해 오면 우리 정부가 국내 농업을 보호하려는 성의를 조금이나마 보일지 의심스럽다.
일단 정부는 향후 10년 간 119조 원을 쏟아붓는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마련하겠으며, 5년 간 4000억 원 규모의 ‘한국영화발전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등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불이익에 대해 보상해준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처방만으로 한미 FTA의 후폭풍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미 FTA, 정말로 실보다 득이 큰가?
일부 통상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국내산 자동차, 섬유, 전기전자 제품 등에 대한 미국 시장의 수입장벽이 사라지며, 이에 따라 대미 수출은 12~17%, 연간 GDP 성장률은 1.99% 정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이런 개방의 결과 국내에 일자리 10만 개가 창출되고 국내총생산(GDP)이 13조 원 가량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미 FTA로 인해 농산물 시장이 완전 개방될 경우 농업 부문에서 일자리가 8만5000개 정도 줄어들고 농업생산도 8조 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수치상으로만 놓고 봤을 때 한미 FTA 체결로 인한 실익은 일자리 1만5000 개, GDP 5조 원 증가라는 것이다.
물론 정부와 재계는 자본시장의 투명성 제고, 국가경제의 신인도 상승, 금융시장의 국제화,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한미 양국의 외교·안보적 동맹 강화 등 수치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익들을 적극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들은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또 이런 이익들이 무역자유화로 인해 타격을 입을 산업부문들의 노동자와 농민들의 피해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비용을 능가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로 ‘양극화’를 꼽았는데,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는 DDA 협상에서 한국을 불리하게 할 것
게다가 미국과의 FTA 협상이 성급히 개시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는 데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은 관세의 점진적 감축을 추구하는 DDA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 관세 및 국내 보조금 감축에서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와 무역장벽을 완전 철폐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FTA를, 그것도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인 미국과 체결해 농산물 관세를 전면 철폐하게 되면 DDA에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은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기 힘들어질 것이고, 중국과 유럽 등으로부터도 농산물 시장 개방의 압력이 물밀듯 밀어닥칠 것이다.
현재의 여러 상황들을 감안할 때 정부가 주장하듯 한미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부정적인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불투명한 변수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