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방역체계 허점 드러나…”그냥 채혈한 것으로 하자더라”
[한국일보 2006-02-27 19:12]
“양주에서 그 일을 했지만 피를 뽑은 적이 없다니까요. 시청 등에서 사람이 (AI 잠복 기간이 지난 뒤에) 나와서 ‘감기 증상 같은 것이 있느냐’고 확인한 적은 더더욱 없었어요.”
2004년 3월 경기도 양주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닭을 땅에 파묻는 일을 했던 이모(47)씨는 지난 주말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03년 12월~2004년 3월 동안 AI에 감염된 가금류 도살 처리 작업에 동원됐던 사람들에게서 당시 채취한 혈청을 분석한 결과 4명이 감염(무증상) 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이씨는 2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양주 AI 감염 현장에서 당시 100~150명이 일을 했지만 아무도 피를 뽑은 적이 없다”며 “일을 할 때 시청 또는 정부에서 나온 것 같은 사람이 ‘원래 혈액 채취를 하게 돼 있지만 별 이상 없으니 한 것으로 하고 넘어가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AI에 감염됐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스러워 했다.
질병관리본부측은 이날 이씨의 주장에 대해 “AI가 처음 발생한 2003년 12월에는 감염 가금류 처리 작업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혈액을 채취했다”며 “그러나 2004년 1월 말 한국에서 발생한 AI가 위험하지 않다는 검사 결과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전달 받고 2~3월부터는 선택적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씨는 “당시 AI 감염이 발생한 양주시 은현면 모 양계장에서 직접 도살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감염 고위험 지역에서 일을 한만큼 마땅히 혈액을 채취해야 했다.
또 혈액을 채취하지 않았더라도 작업 후 AI 잠복기인 일주일 여 뒤에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감염 증세 점검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 것은 더 큰 문제다.
이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 권모(48)씨도 “일을 끝낸 뒤 정부나 시청 등에서 어떤 연락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측은 “원래 잠복기가 지난 뒤 증상 여부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는데, 당시 양주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야겠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측은 이씨의 AI 감염 여부를 특별히 조사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측은 “이씨 등이 원하면 할 수도 있지만, 2년이나 지난 지금 AI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도 위험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미 확보한 1,600명에 대한 혈청에 대해 추가로 AI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학술적 분석이 필요해서”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우준희 교수는 혈액 채취 누락 등 일부 방역체계가 부실했던 것에 대해 “전염병 방역에서는 아무리 위험성이 낮아보여도 검사를 하고,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한데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