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보험 아직 이르다
왜냐면
공공보험의 기반이 튼튼한 유럽 나라들과 달리 보장성이 취약한 상태에서 민간 의료보험을 도입한 칠레·멕시코 등의 공보험은 위기에 처했다.
최근 영리 의료법인 허용, 민간 의료보험 도입 등 정부의 의료 산업화 추진이 관련 학계나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층 더 탄력을 받은 듯하다. 지난달 16일 청와대가 작성한 ‘의료산업 전망과 발전전략’을 보면, 정부는 기존의 건강보험을 주보험으로 하되 민간 의료보험을 추가로 도입하으로 돼 있다. 정부는 또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영리 의료법인도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아직 60% 수준에 불과한 상태에서 민간 의료보험을 도입할 경우 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
첫째 민간 보험사는 영리추구에만 급급하여 질병 발생빈도가 낮은 건강한 계층만을 선별적으로 가입시킬 것이고, 공보험인 건강보험에는 저소득층과 질병 발생빈도가 높은 연령층만 남게 될 것인데, 이는 의료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야 할 계층이 소외되어 결국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부를 것이다.
둘째, 민간 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현재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민간보험사는 영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또, 민간 의료보험 가입한 고소득층은 보험료 부담을 덜기 위해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마련이 어려운 상황인데다, 정부도 재정부담의 문제로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상태에서 민간 의료보험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붕괴시키고, 국민 의료비 부담 증가와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초래할 뿐이다.
경제대국인 미국은 선진국 중 전국민 의료보장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전체 인구의 70%가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민 의료비는 세계 최고 수준인 국민총생산의 14.2%에 이르는 데 반해, 건강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최하위이며, 수차례 공보험을 도입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공공보험의 기반이 튼튼한 유럽 나라들과 달리 보장성이 취약한 상태에서 민간 의료보험을 도입한 칠레·멕시코 등의 공보험은 붕괴 위기에 처했으며, 이로써 의료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민간 의료보험 도입, 의료 산업화, 영리 의료법인 허용 등에 대한 논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0% 이상 확보하고 공공 의료기관을 30% 이상 확충한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김광수/대구시 수성구 만촌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