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표되자 페루시민들이 ‘NO TLC(FTA)’라는 피켓을 들고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때가 마침 부활절이라 예수의 십자가를 진 시위대가 행인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라 레뿌블리까. 리마, 페루
페루, ‘대미 FTA’ 로 정국 대혼란
김영길의 ‘남미리포트’〈146〉대선 기간중 전격 체결
2006-04-14 오후 3:00:25
페루 대선이 결선투표 진출 후보 2명을 가리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페루 정부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미 통상대표단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해 페루정국이 혼란해질 전망이다.
알레한드로 똘레도 페루 대통령은 이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서명식을 끝내고 “역사적인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지난 2년동안 양국 정부가 심사숙고한 이번 협정은 야당의 반대나 국민들의 비판을 떠나 페루와 미국 의회가 이를 승인해줄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대선에서 선두권을 달리며 결선투표 진출이 확정된 오잔따 우말라 후보는 FTA 체결 무효를 주장하면서 이 문제는 국민들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며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해 일부 정치권과 농민층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똘레도 정부는 이에 대해 “만일 의회가 국민투표를 결정한다면 이에 따르겠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의의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그러나 우말라가 민족주의자라면 이번 결정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진정한 민족주의자라면 이번 협상을 통해 창출되는 일자리와 빈곤타파 등 경제적인 이점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달 치러지는 결선투표의 승자에게 정권을 맡기고 오는 7월 8일 퇴임해야 하는 똘레도 정부가 서둘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비평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대선 결선투표와 맞물려 국회가 제대로 된 심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일부 정치권은 페루경제와 농민들에게 미칠 충격을 신중히 고려해서 이 문제를 심의해야 하며 정파를 떠나 지혜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해 이 협정이 국회비준에 실패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페루 정치권은 현 상황에서 이 문제를 논하기에는 시간과 정국 분위기가 적절치 않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페루 정치권 FTA 발효에는 회의적’
페루 전역의 농민단체들도 긴급회합을 갖고 수도인 리마와 국회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똘레도 정부가 국민투표를 받아들이도록 물리적인 압력행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져 대선 결선투표를 앞둔 페루 전역이 극도로 혼란해질 전망이다.
대선기간 중 갑작스럽게 발표된 미국과 페루의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우말라 진영은 “친미성향의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부의 실직적인 선거운동”이라고 평가하고 이는 결선에서 우파동맹의 결합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결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똘레도 정부가 미국과 FTA의 이점들과 경제적인 효과 등을 결선투표 선거기간 중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평소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반대했던 우말라 후보에게 유권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현지 정치평론가들도 미국과 페루의 갑작스러운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중남미에서 더 이상의 좌파정권 탄생을 저지해보려는 숨은 의도가 엿보이는 꼼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 반대하고 있는 미주공동시장(FTAA)의 확장을 노리는 것이어서 남미 다른 국가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있다.
때가 마침 부활절 연휴기간이어서 남미정치권의 즉각적인 반응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내년 1월 발효를 목표로 한 미국과 페루의 자유무역이 아직까지도 ‘산 넘어 산’인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영길/프레시안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