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21 의약품 개방 FTA 핵심의제…국내 업체 공포감에 떨어

[커버] 의약품 개방 FTA 핵심의제…국내 업체 공포감에 떨어

의약품 시장 개방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의제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 상태다. 미국 쪽 요구사항만 알려졌을 뿐 그 의미와 전망, 그리고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 등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벌써부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연구 보고서 하나 나오지 않았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벌써부터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의약품 개방 FTA 핵심의제…국내 업체 공포감에 떨어

국민들 부담을 생각한다면 약값은 싸면 쌀수록 좋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제약회사들의 경쟁력도 생각해야 한다. 튼튼한 제약회사들을 키워내지 못하면 언젠가 우리는 모든 약을 외국에서 사다 먹게 될지도 모른다. 약값이 터무니없이 뛰어오르고 결국 약값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치명적인 질병이 돌았는데 외국 제약회사가 국내에 약을 공급하지 않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오리지널과 제네릭 약품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 파는 약은 대부분 제네릭 약품이다. 오리지널 약품은 11종밖에 안 되고 나머지 2만종 이상은 모두 제네릭 약품이다. 제네릭 약품은 흔히 카피약이라고도 하는데 직접 개발한 약이 아니라 이미 개발된 약 가운데 특허기간이 끝난 약을 흉내내 만들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특허기간이 끝난 당뇨병 치료제 아마릴 같은 경우는 한꺼번에 100여종 이상의 제네릭 약품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오리지널 약품의 경우 연구·개발과 임상 실험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특허를 신청하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만 특허 기간이 끝나고 나면 수많은 제네릭 약품들과 경쟁해야 한다. 제네릭 약품의 경우 연구·개발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생산라인 하나 만드는데 3천만원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오리지널 약품을 만드는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제네릭 약품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게 최대의 과제가 된다.

이번 한미 FTA 협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간단히 오리지널 약품을 파는 미국 제약회사들과 제네릭 약품을 파는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의 대결 구도로 이해하면 쉽다. 의약품 개방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사항은 크게 다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오리지널 약품의 가격을 인상하라”

미국의 가장 큰 불만은 우리나라의 약값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오리지널 약품의 가격을 문제 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오리지널 약품을 혁신적 신약과 일반 신약으로 구분해 약값을 차등 책정하고 있는데 혁신적 신약의 경우는 미국 등 선진 7개국의 평균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우선 혁신적 신약의 구분 기준이 모호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혁신적 신약은 15종밖에 안 되는데 이를 더 늘리라는 것이다.

한국제약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값은 혁신적 신약을 제외하면 선진 7개국 평균의 48.4% 수준, 미국의 31% 수준밖에 안 된다. 혁신적 신약의 경우도 7개국 평균 대비 76% 수준이다. 미국은 혁신적 신약 지정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오리지널 약품의 약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저하게 미국 제약회사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오리지널 약품의 약값이 크게 오르게 되면 미국 제약회사들의 국내 진출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는 국내 제약회사에 개발·판매권을 주고 원재료를 공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익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판단하면 직접 진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국내 제약회사들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외국 제약회사와 제휴, 수입 의약품을 취급했던 회사들도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2.“미국 약을 자유롭게 처방하게 하라”

지난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나온 정책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건강보험의 급여 기준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보험 급여를 제약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리지널 약품의 처방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위궤양 치료제 로젝이나 관절염 치료제 바이옥스 등은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었는데 국내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내시경 검사에서 궤양 판정을 받은 경우에만 급여를 지급하는 등의 까다로운 제약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이 약품들을 처방했다가 나중에 처방료를 환급받지 못하거나 삭감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결국 이 약품들은 자연스럽게 처방이 줄어들게 된다. 미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정식으로 사용을 허가한 약품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별도의 처방 규제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급여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고 있다. 과학적 근거도 없고 투명하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만약 이 같은 보험 급여의 제한이 완화될 경우 이들 오리지널 약품의 처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제네릭 약품의 처방이 줄어들고 국내 제약회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약품의 처방이 늘어나면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고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3.“미국 제약회사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라.”

또 하나의 중요한 쟁점은 의약품의 특허권 보호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특허권은 특허 출원일을 기준으로 20년 동안 보장받는다. 문제는 국내에 진출할 때 식약청 등의 심사 과정에서 3~5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인데 미국은 이 기간만큼 특허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리지널 약품의 독점을 연장하겠다는 의도에서다. 만약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그만큼 제네릭 약품의 출시가 늦어지게 되고 역시 국민들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미국은 또 자료독점권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오리지널 약품의 임상 실험 결과 등을 다른 제약회사가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 자료를 활용할 수 없다면 제네릭 약품을 만드는 제약회사들은 별도의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시장 진출도 늦어지게 된다. 미국은 이미 싱가포르나 칠레, 호주 등과 FTA를 체결하면서 이같은 요구를 관철시킨 바 있다.
심지어 미국은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 기간이 끝나기 전에 제네릭 약품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회사들의 제네릭 약품 개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국가 비상사태나 긴급한 상황의 경우 정부가 특허를 강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 실시 규정을 제한 또는 폐지하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4.“한국 제약회사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라”

국내 제약회사들을 가장 긴장하게 하는 것은 리베이트 문제다. 보험 급여보다 훨씬 싼 값에 약을 넘겨주면서 의료기관이 이중으로 이익을 챙기도록 도와주는 게 대표적이다. 비슷비슷한 제네릭 약품이 난립하는 가운데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제약회사 제품을 처방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품질 경쟁이 아니라 마케팅 경쟁, 더 정확하게는 리베이트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 딱히 핑계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새로 개업한 병원에서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을 모아놓고 대기실 의자나 정수기, TV 등의 가구와 비품 구매를 할당해주는 경우도 있다. 해외 연수라는 명목으로 의사들에게 공짜 해외 여행을 제안하는 경우도 흔하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리베이트는 한때 약값의 40%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나마 의약분업 이후 10~25% 정도로 줄어들었다. 완전히 뿌리 뽑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리베이트 관행이 사라진다면 경쟁력 없는 중소 제약회사들은 시장에서 버티기 어려운 현실이다.
미국이 리베이트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소 제약회사들을 퇴출시키는 게 결국 미국 제약회사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예 제네릭 약품의 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오리지널 약품의 최대 80%까지 약값을 보장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조금 높은 편이다.

국내 제약사에게 절대 불리한 FTA

결국 FTA는 국내 제약회사들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미국의 의약품 관세율은 1%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원료 의약품의 경우 5.5~6.5%, 완제 의약품의 경우는 8% 수준이다. 관세가 폐지될 경우 우리 제약회사들의 미국 수출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되지만 미국 제약회사들의 국내 진출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국의 의약품 관리 기준을 만족하는 국내 제약회사는 30개 밖에 안 된다.

국내 제약 산업은 이미 상당 부분 외국 제약회사들에게 잠식당했다. 외국 제약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00년 22.2%에서 지난해에는 27.3%까지 늘어났다. 매출액 기준 상위 10개 제품 가운데 국내 제약회사 제품은 LG생명과학의 자니딥이 유일하다. 20위까지 봐도 중외제약의 가나톤과 대웅제약의 가스모틴 정도가 고작이다. 만약 FTA가 통과되고 제네릭 약품 생산이 제동이 걸리게 되면 국내 업체들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뒤쳐질 수밖에 없다.

국내 제약회사들은 아직 마땅한 대응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건 있지만 아직 언론에 밝힐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제약협회는 FTA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 오죽하면 외국계 제약회사 임원이 이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인데 그만큼 통상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LG경제연구원 고은지 연구원은 “미국의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진다면 제네릭 약품에 치중해왔던 국내 제약회사들 입지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화증권 배기달 연구원은 “제약과 바이오 산업을 향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정부가 제약 산업을 고사시킬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염려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교보증권 이혜린 연구원도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배 연구원은 “그러나 국내 제약회사 수익성이 지금보다 악화될 것은 분명하다”면서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투자 여력을 잃고 지금 수준의 제네릭 약품 생산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래에셋증권 황상연 연구원은 “전선이 뚜렷하면 전략을 짜기도 쉽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떤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상위 업체와 하위 업체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인터뷰 /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
“공공펀드 만들어 제약산업에 투자하자”

“우리나라는 의료비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28%나 됩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30%가 넘습니다. 선진국은 이 비율이 10~15% 정도밖에 안 되죠. 미국은 약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라고 요구하는데 그건 구매력 수준을 감안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죠.”
우석균 정책국장은 현직 의사다. 그는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학자가 단 한 명도 없느냐고 반문했다. 같은 약이라도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오리지널 약품의 약값이 싼 것은 맞다. 그러나 그건 약품의 가격이 그렇다는 것이고, 전체 약값 비중을 보면 우리가 상대적으로 훨씬 비싼 약을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떻게 된 것일까.

“금액 기준으로 상위 10% 품목이 전체 약품비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15종의 혁신적 신약의 건강보험 청구액이 514억원이나 됩니다. 2002년 140억원에서 3배 이상 늘어난 겁니다. 결국 외국 제약회사의 비싼 약이 약값의 대부분은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국민들이 약을 더 싸게 사먹을 수 있게 만들려면 이들 외국 제약회사들의 약값을 깎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최근 FTA 논의는 정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우 국장은 FTA가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원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 국장은 제약산업의 공공성을 강화할 아이디어의 하나로 제약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공공 펀드를 제안했다. 이른바 사회책임투자(SRI)의 일환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항생제나 치료제의 개발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대형 제약회사들은 돈이 안 되니까 약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잘 낫지 않는 질병들, 비싸고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을 만드는 게 훨씬 많은 이익이 남으니까요. 이들 대형 제약회사들과 싸우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의 미래는 훨씬 끔찍할 겁니다.”

오리지널 약품, 얼마나 남기는 것일까.
제목 : 에이즈 치료제, 제네릭의 16배

오리지널 약품을 하나 만드는데 보통 9억달러 이상, 우리 돈으로 거의 1조원이 들어간다. 20년 이상의 특허 기간을 두는 것은 이 개발 비용을 뽑기 위한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개발 비용을 충분히 뽑고 특허기간이 끝난 뒤에는 가격이 내려가야 맞다. 그런데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제네릭 약품의 가격이 오리지널 약품의 가격에 맞춰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제약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인가 추정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에이즈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약이 3종류가 있는데 스타부딘과 라미부딘, 네비라핀이다. 이 약들을 적정 비율로 조제해 하나의 캡슐에 담아서 팔 수도 있겠지만 만드는 회사가 모두 다른데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불가능하다.

2000년 8월 기준으로 에이즈 환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의약품 비용은 연간 1만439달려였다. 그런데 브라질에서 이 약들을 하나의 캡슐에 담은 제네릭 약품을 만들어내면서 약값 인하 경쟁이 시작됐다. 브라질은 물질 특허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약품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이 약을 쓰면 비용이 연간 2767달러로 거의 4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든다. 결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오리지널 약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그 이듬해부터 약값을 크게 낮췄다.

그 뒤 2001년에는 인도에서 또 다른 제네릭 약품이 350달러에 팔리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역시 인도에서 201달러짜리 제네릭 약품이 나오기도 했다. 나중에는 168달러까지 떨어졌다. 결국 이 약의 실제 생산 비용은 168달러가 채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오리지널 약품의 가격도 562달러까지 떨어졌다. 한때는 1만달러 이상을 받던 약을 16분의 1의 가격으로 팔게 됐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