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평택 국가폭력 · 인권침해 진상조사단’ 1차 조사결과 발표

  ”가리워진 대추리의 진실을 밝혀낸다”  
  ’평택 국가폭력 · 인권침해 진상조사단’ 1차 조사결과 발표

  2006-05-10 오후 7:51:06    

  지난 4일 이후 미군기지 확장이전으로부터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또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일과 5일 총 630여 명의 시민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수백 명의 시민들이 부상당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일어났지만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이를 외면한 채 오히려 평택 주민들의 저항에 대해 ‘외부 불순세력이 개입했다’,'무방비 상태의 군인을 폭행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택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이에 인권단체, 보건의료단체, 법조계 등 사회단체들은 지난 4일 ‘평택 국가폭력 · 인권침해 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이들은 “평택에서 발생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구체적인 진상을 조사해 정부가 저지른 만행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정부, 정치권, 보수언론이 한 목소리로 왜곡하고 있는 평택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서 긴급 조사활동을 벌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상수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 진상조사단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피해현장을 조사하고 인권침해자들의 진술과 증언을 확보하는 등 긴급 조사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10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크게 △부상자 및 주민 상태에 대한 의학적 소견 △군부대 투입과 관련한 법적 문제 △군부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 및 진압, 연행,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피해자 증언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 ‘평택 국가폭력 인권침해 1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 프레시안

  ”중상 비율 높아…경찰, 도망가는 사람도 폭행한 듯”
  
  보건의료단체연합 김정범 공동대표는 “4일 당일 평택 지역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진료내역을 입수해 기초적인 분석을 시행했다”면서 “당일 부상자 중 진료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은 120명이었으며, 여러가지 사정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이들을 감안하면 실제로 병원 진료를 필요로 하는 부상을 입은 사람은 200명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정범 대표는 “피해자의 19%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이에 봉합수술이 필요했던 이들까지 중상으로 분류한다면 더 많은 중상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경찰의 방어적인 폭력이라고 말하기에는 피해자들 중 중상자의 비율이 너무 높아, 경찰이 피해자에게 상당한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김 대표는 “특히 머리 뒤, 허리, 등 쪽이 찢어지거나 뼈가 어긋난 환자들은 가해자에게 뒷모습을 보인 상태에서 가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찰이 대치할 의사 없이 도망가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가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머리 부상 가장 많아…집단 구타도”
  
  김정범 대표는 “경찰 폭력 피해자의 63%가 머리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어깨나 팔 등이 23%로 그 다음으로 많았다”면서 “이로 미루어 볼 때 경찰의 폭력은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가격자가 상대방에게 크게 손상을 입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어깨나 팔 등의 손상은 머리를 방어하려다 입은 손상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다발성 손상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면서 “이는 다수의 경찰이 한 사람의 피해자를 집단 구타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김정범 공동대표는 “폭력 피해자의 성별을 보면 여성 피해자가 7명이나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 중에는 안면 손상, 뇌좌상, 자궁내출혈, 머리 부상 등 중상자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면서 “이는 경찰의 폭력이 여성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말했다.
  
  4일 시위대 진압 당시 경찰은 의료진에 대해서도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범 대표는 “환자 중에는 당시 주민들에게 의료지원을 하기 위해 마을을 방문했던 의료진도 포함되어 있었다”면서 “전쟁 중인 경우에도 의료진에게는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인 것을 고려해 보며, 이와 같은 양상은 이번 폭력이 무차별적, 비인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라고 지적했다.
  
  ”벼가 자라던 논에는 군인들 만이”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는 4일 행정대집행을 통해 철조망을 치고 대추분교를 부순 다음날인 5일 대추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현장의 모습을 소개했다.
  
▲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지도에 경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과 군인 숙영지, 초소 등을 표시한 지도. 빨간 선은 이 일대에 설치된 철조망을 나타내며 까만 점은 초소를 뜻한다. 초소는 철조망을 따라 10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 평택 국가폭력 · 인권침해 진상조사단  

  
▲ 경찰이 대추리 일대 들판에 막사와 초소를 짓고 생활하고 있다. ⓒ 평택 국가폭력· 인권침해 진상조사단

  ”경찰 진압 과정에서 성추행도 비일비재”
  
  박진 활동가는 “군에 의한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애초에 국방부 장관이 천명한 것과 달리 군에 의한 민간인에 대한 폭력이 일어났으며, 이들은 민간인을 전쟁포로 다루듯 포박했고, 곤봉을 사용해 폭행도 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은 농지를 무단으로 침탈하여 철조망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통행을 통제하였으며, 무자격 용역업체를 통해 용역을 고용하고 행정대집행법이 허용하고 있는 범위를 넘어 폭력적으로 대추분교를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5일 이후에도 군은 대추리와 도두리를 잇는 마을길도 한 곳만을 남겨놓은 채 철조망으로 차단하고 주민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으며, 도두리에서도 주민들이 사용하는 물을 군인들이 사용함으로서 물이 끊겼던 일이 있는가 하면, 수시로 헬기가 마을 상공을 저공비행해 주민들에게 공포감과 스트레스를 심어주고 있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진 활동가는 “앞서 김정범 공동대표가 말한 것처럼 4일 진압과정에서 경찰의 인권침해도 심각했다”면서 “특히 시위대 연행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성추행도 광범위하게 자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시위자를 남성 경찰관이 연행하면서 여성의 옷이 벗겨져 속옷이 드러나는 일도 비일비재했을 뿐아니라 남성 경찰관의 손이 여성의 옷 안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면서 “파주 경찰서의 경우 여성에 대한 알몸 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국민 대우 받고 있는 거 맞소?”
  
▲ 평택 대추리 주민 방승률 할아버지 ⓒ 프레시안  

  이날 1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는 평택 대추리 주민인 방승률 할아버지와 지난 4일 경찰에 의해 폭행당한 피해자, 5일 군인에게 폭행당한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일 먼저 발언 기회를 얻은 대추리 주민인 방승률 할아버지는 마이크를 잡은 이후에도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기자들도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방승률 할아버지는 어떤 회상에서 깨어난 듯 문득 말을 시작했다.
  
  ”나는 논밭만 부쳐먹고 산 사람이라 민주주의고 반미고 아무 것도 몰라요. 하지만 1만2000명이라는 경찰들이 들어와 늙은이는 끌어다가 밖에 내놓고 젊은이들은 닥치는 대로 때리고 연행하는 게 민주주의요? 나는 무식해서 그런지 당최 독재와 민주주의를 구분할 수가 없소. 인터넷이 되고 우주를 왕복하는 시대가 온들 뭐 하오. 아주 기가 막힙디다. 부상자가 생겨도 길도 안 내줘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이오?
  
  우리 마을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전경차는 맨날 시동 걸어놓고 웅웅 거리고, 경찰들은 몇몇이 짝을 지어서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소리를 지릅디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아주 깜짝깜짝 놀라요.
  
  들판에는 군인들이 몇 천 명씩 새까맣게 깔려 있소. 그 군인들을 철조망 밖에서 경찰 또 몇 백 명이 서서 지켜요. 땅 파먹는 농부란 말이오, 들판에 나가 자기가 심은 곡식들 자라는 거 바라보는 게 삶의 낙인 게요. 근데 우리가 들에 필요한 일이 있어도 가기는커녕 경찰한테 막혀서 군인과 이야기도 못합니다.
  
  대추리에는 들어오는 길이 딱 두 개 있소. 근데 지금 2km 밖에서 두 길을 다 막고 지키고 있소. 5월 4일날 그 난리 났을 때, 전경애들 부모가 찾아 왔는데 그것도 안 들여보내줘요. 대추리가 도둑이 사는 동네요, 강도가 사는 동네요? 왜 내 마을 내가 가는데 주민증을 내놓으라 하는 거요? 시내버스가 안 들어와서 우리 아이들이 학교까지 그 먼 거리를 걸어다녀요. 왜 그래야 해요?
  
  우리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오? 우리가 국민 대우 받고 있는 거 맞소?”

  ”국민 소송단 구성해 정부에 법적 대응 할 것”
  
  진상조사단은 앞으로 국민소송단을 구성해 정부에 대해 총체적인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마을 주민과 시위 참가자 등 당사자와 국민들로 국민소송단을 구성해 진행할 것이며, 이를 위한 법적인 검토와 준비작업에 즉각 착수할 것”이라며 “이를 시작으로 범국민적인 저항운동으로 넓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이 국민소송단은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 취소 확인 소송 △국방부장관, 경찰청장 등을 폭력행위처벌법과 경비용역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로 고소, 고발 △불법 연행, 폭행 등에 대해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경찰과 군, 검찰 등에 의한 인권침해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인권침해 감시단을 구성하여 대추리, 도두리 마을에 파견하는 등의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4일과 5일 일어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진정 및 예방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고, 향후 일어날 인권침해에 대해 인권피해 예방을 위한 종합적인 권고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 진상조사단은 군, 경찰, 검찰 등의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해 작전 계획 수립과정과 시행과정의 불법성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2차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은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