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약값상승→환자부담 증가’ 코앞에
한국 약값 결정 과정에
미 제약사 ‘참여’ 요구
‘특허보호’ 앞세워
‘복제약 차단’ 가능성
이창곤 기자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상 본협상이 시작된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려다 이를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앞서 기자회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에 기반을 둔 초국적 자본들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물과 에너지 등 최소한의 공적 서비스조차 초국적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사유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복지부 내부문서 분석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내부 문서는 미국 쪽이 이번 협상에서 들고 나올 요구사항을 주무부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예측하고, 그 문제점과 대책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보건의료 및 시민단체들은 경제논리가 강한 영향을 끼치는 에프티에이 협상에서 과연 우리 협상단이 의약품과 관련한 국민의 건강권을 적극적으로 방어해낼 수 있을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5C신약 가치와 지식재산권 인정 요구 거셀 듯=이번 한-미 협상 과정에서 약값과 관련한 미국의 최우선적 요구사항은 ‘혁신적 신약의 가치 인정’일 것으로 전망했다. 혁신적 신약에 대해서는 특허보호 수준의 적절한 정책적 보호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국은 또 ‘절차의 투명성’을 강하게 밀고 나올 것으로 복지부는 예상했다. 약값 및 급여기준 등 약값 제도를 변경하려면 입법예고나 고시, 구체적인 행정결정 등 단계마다 미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제약회사에 그 내용을 ‘통보’하고, ‘의견제출 기회’를 보장하며, ‘정보요청 요구에는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를 두고 “국내 정책 결정 과정이 미국 또는 미국계 회사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평가했다.
복지부의 내부문서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최근 맺은 협정 내용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작성된 것이다. 복지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약값 상승이 결코 없으리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행정부의 설명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아 상원은 약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오스트레일리아 상원은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새로 도입한 제도에 대해서도 “추가 운용비용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의 후생 증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구 충족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협상에서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또다른 이슈는 지식재산권 보호일 것으로 복지부는 예측했다.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협상에서도 특허와 의약품 품목허가의 연계를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은 실제로 그동안의 통상 회의에서 “(한국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특허청 간의 직접적 연계가 없다”며 “식약청은 특허청과의 연계를 통해 특허기간 중 제네릭 제품의 시장 진입을 방지할 책임을 명백히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5C건강보험 약값 정책의 근본을 뒤흔들 수도=복지부는 결론적으로 이런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우리 쪽의 건강보험 약값의 급여를 결정하는 보건복지부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단일 보험자로서 (다국적 제약사 등과의) 보험약값 협상력에 중대한 손상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협상력 손상 및 약화는 중장기적으로 약값 상승과 환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런 점에서 “한-미 에프티에이 의약품 분야에서의 협상 결과는 한국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칠 악재”라고 보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가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복지부도 문서에서 “미국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때 국내 법령·제도, 국내 제약산업, 건강보험 (약값) 비용 등에 끼칠 영향에 대한 사전 검토작업이 필요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박실비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의약품산업팀)은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양자간 무역협정이 개발도상국에서 의약품 접근성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지식재산권 조항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등을 내세워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건강권)은 무역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