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다국적 제약사 파워 국민 건강 좌지우지

다국적 제약사 파워 국민 건강 좌지우지

[동아일보 2006-06-08 08:05]    

  

[동아일보]
《올해 초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당뇨병 치료제와 고혈압 치료제를 이용하던 한국 환자들은 약을 구하지 못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들 약품의 해외 공장이 생산라인 개선 작업에 들어가면서 수입이 지연돼 제품이 일시적으로 품절된 것. GSK의 당뇨약은 2005년 국내 건강보험 청구금액 5위인 인기 제품이다. 환자들은 약을 구하러 약국을 전전하거나 다른 약으로 처방을 바꾸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아야 했다.》

한국와이어스의 호르몬 제제도 지난해부터 품절 상태다. 해외 생산 규격이 바뀌면서 국내 허가를 받지 못해 제품 수입이 막힌 것.

호르몬 제제 1위 제품이라 아직도 환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몇 년 전에는 ‘기적의 치료제’로 불리는 항암제 글리벡의 약값이 너무 비싸 약을 못 구한 백혈병 환자들이 ‘살기 위해’ 인도에서 카피약을 수입해 쓰기도 했다.

이는 수입 의약품 의존도가 너무 높은 한국의 현실이 빚어낸 몇 가지 사례다.

의약품의 수입 의존도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완제의약품 무역 적자 규모는 7652억 원. 연도별 증가율은 △2002년 18% △2003년 19% △2004년 32% △2005년 40%에 이른다.

의료기기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수입 의료기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64%. 2004년 이 분

야 무역 적자는 4년 전인 2000년의 두 배로 늘었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심각하다.

수출품은 대부분 일회용 주사기, 안경렌즈 같은 저가품이지만 수입품은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 자기공명영상(MRI) 기기 등 대당 수십억 원씩 하는 고가(高價) 장비가 주류다.

제품 경쟁력에 따라 수입 제품에 수요가 몰리는 것을 문제랄 수는 없다. 외국 기업의 진출은 국내 업체들의 기술 개발을 자극하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윤형로 연세대 의공학과 교수는 “제품 특성상 의료산업이 외국에 종속되면 건강도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산업 측면에서도 가격 상승을 부추길뿐더러 국내 업체들이 성장 기회를 잃게 된다.

세금과 통관비용, 물류비 때문에 수입 제품은 가격이 높다. 다국적 제약사의 주력 상품인 ‘신약(新藥)’은 선진국 수준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데다 특허 기간이 끝나도 카피약보다 비싸다. 그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 비중이 높아질수록 건강보험 재정도 압박받게 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의료기기는 고가 부작용이 더 크다”고 말한다. 의사들이 비싸게 산 기계의 ‘본전’을 뽑기 위한 과잉 진료를 유발한다는 것.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국산 의료기기가 개발되면 경쟁 때문에 가격이 30∼50% 떨어진다. 의료용 레이저수술기는 국산화 이후 가격이 1억5000만원에서 1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외국 업체의 시장 지배는 국내업체들의 성장잠재력도 위협한다. 박혜경 대한약사회 전문위원은 “다국적사들이 신약을 만들면 국내 업체들은 카피약 만드는 데급급해 연구개발(R&D)에 눈 돌릴 틈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경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BT산업전략센터장은 “의약품의 경우 해외 시장에 진출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뒤 창출된 수익을 신약 개발에 사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의료기기 산업은 기반 산업부터 취약한 만큼 정보기술(IT) 산업과의 접목 등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부터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