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미 FTA와 국민건강
[국민일보 2006-06-21 19:21]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총론부터 쌀 시장 개방과 같은 각론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대상도 다양하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주로 경제적인 손익에 대한 판단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경제만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영역이다. 안타깝게도 사회적 관심은 이 문제의 중요성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작년에 이미 협상의 4대 선결조건으로 의약품을 포함할 정도로 이 분야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그렇지 않아도 협상과정의 투명성이 논란거리지만 보건의료 영역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는 이유로 대응이 더욱 허술해 보인다.
FTA 협상의 대상 중 건강과 직접 관련된 것은 크게 의료 서비스와 약품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의료 서비스는 협상 당사자들이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긴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가 모든 협상에서 완전히 빠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의료산업이나 민간보험은 의료분야 문제인 동시에 금융이나 산업분야에도 걸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전체 민간보험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없앨 것을 요구하면,의료 영역의 민간보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느 경우라도 의료 서비스에 대한 협상 원칙은 명확하다. 민간보험이든 영리병원이든 어느 것 없이 국내 정책인데다 국민건강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틀이다. 따라서 어떤 기준에서도 FTA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혹 제도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사실 의료 서비스보다 더 크고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 약품이다. 특히 약품은 미국측이 중점 협상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협상의 결과가 미칠 영향이 작지 않다. 얼마 전 1차 협상에서 건강보험 약가제도 변경 계획이 논란이 됐지만 사실 의약품 허가제도에 대한 협상이 더 중요하다. 건강보험의 약가제도는 국내 정책이기 때문에 아예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마땅하다.
앞으로 주로 문제가 될 의약품 허가 제도는 특허와 관련된 의제가 많이 포함돼 있다. 한국 시장에서 외국 제약사의 특허와 신약을 더 철저하게 보호하라는 것이 미국측 요구의 핵심이다. 이러한 요구의 이해관계는 단순하다. 제기하는 이슈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신약과 오리지널 의약품 비중은 더욱 커지고 시장 독점력도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가 의약품 가격의 상승과 전체 약제비 증가로 이어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필수 의약품을 제대로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특허와 재산권을 송두리째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약품의 특허 자체가 신성불가침이 아니라는 사실도 명확하다. 특허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다가 지적 재산권이 순전히 개별 회사가 노력한 결과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마냥 흘려버릴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의약품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사 경제적으로 이득이 크다 하더라도 경제 효과만 따질 일은 아니다. 만약 국민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다소의 경제적인 효과가 있다치더라도 그 빛이 바랠 것은 뻔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보호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하고 협상 기준에도 이 조건이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의료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