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김재영/MBC <PD 수첩> 피디] 지난 4일 MBC <PD 수첩>의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 한미 FTA’ 편이 방영된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시청자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까? 프로그램의 방영을 전후한 정부 관계자들의 반응 또한 점입가경이다.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정부의 공식 대변인인 국정홍보처장은 수많은 출입기자들 앞에서 방송의 공영성과 공정성을 운운하며 이 프로그램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정부는 언제든지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에 공식으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신청할 수 있고, 다른 여러가지 통로로 공식적인 반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영도 하기 전에 정부 고위 관계자가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도에서인지 알 수 없다. <PD수첩>은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사회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부는 구체적인 증거도 부족한 상태에서 한미 FTA에 대해 찬양 일색의 홍보를 펴면서 여론을 주도하려 해 왔다. 언론으로서는 정부의 이런 행태에 대해 당연히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제대로 보지 못한 측면은 없는지, 정부의 논리에 문제는 없는지, 한미 FTA 추진과정은 민주적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몫이다.
그 비판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는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다. 국정홍보처장이 “이 정도면 횡포 아니냐”라며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전에 비난한 것이야말로 시청자와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의 ‘횡포’다.
방송이 나간 후 <국정브리핑>에는 ‘PD수첩의 외눈박이 보도’라는 제목의 반박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되묻고 싶다. 애초에 국민의 세금으로 엄청난 예산을 써가면서 ‘외눈박이 홍보’를 시작한 것은 누구인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수출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에 따라 고용이 증가하며, 심지어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마치 한미 FTA가 국내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선전한 것은 다름 아닌 ‘참여정부’였다.
FTA와 양극화가 관계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PD 수첩>을 비판한 <국정브리핑>은 “우선 빈곤층의 증가나 사회양극화 현상은 세계화와 정보화, 고령화 과정에서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것으로, FTA 체결국과 미체결국 간에 특별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국정브리핑>의 주장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결국 FTA 체결국들도 세계적인 추세 중 하나인 사회양극화 현상이나 빈곤층의 증가와 같은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미 FTA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FTA 체결로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정부의 홍보에 대해 여러 차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때마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 양극화가 해결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해 왔다. 언제는 대통령과 정부가 한 목소리로 한미 FTA로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는 FTA와 양극화 해소는 별 관계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정부의 논리인지 헷갈린다. <PD 수첩>을 비판하려다 보니 정부의 허술한 논리가 들통난 꼴이다.
▲ 정부의 ‘한미 FTA 추진 과정’에 문제를 제기해 국민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MBC 의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 한미 FTA’ 편. ⓒ프레시안
한미 FTA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한미 FTA가 고용을 증가시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미 FTA 찬성론자인 한 경제학자마저도 한미 FTA로 제조업 고용이 증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정부는 지니계수(소득 간 격차를 나타내는 수치)를 들어 캐나다, 멕시코의 사회양극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사회양극화를 드러내는 지표들은 지니계수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런 여러 지표들을 함께 살펴볼 때에야 비로소 사회양극화의 다양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멕시코의 경우 NAFTA 이후 상승한 노동생산성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반면에 국내총생산(GDP)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10%포인트 이상 상승해 70%에 육박했다. 즉 NAFTA의 실질적인 과실을 노동자들은 전혀 누리지 못했고, 그 대부분을 기업과 기업가들이 가져간 것이다.
게다가 NAFTA 이후 멕시코 노동시장에서 비공식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로 확대됐다. NAFTA로 인한 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인해 이런 기형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통계들은 멕시코에서 NAFTA로 인해 노동자, 농민 계층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이들 계층의 삶의 기반이 붕괴하면서 사회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4대 선결조건’에 대한 구차한 변명
<국정브리핑>의 구차한 변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방송에서 언급한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회의문건에서 ’4대 선결조건’이라는 어휘가 사용된 것은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로 진중하지 못한 표현이었다”며 “표현의 문제와는 별도로 이것은 한미 양국 간의 오랜 통상현안으로 존재해 오던 것이며, 정부는 우리의 기본원칙을 유지하면서 대응해 왔다”고 설명했다.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라는 궁색한 변명에 어이가 없다. 지금까지 참여정부는 ’4대 선결조건’이라는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외교통상부의 고위 관리들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4대 선결조건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한미 FTA 비판론자들의 잘못된 어휘 사용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 ’4대 선결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4대 선결조건의 추진현황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 왔다는 것이 이번 <PD 수첩>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도 외통부의 통상교섭본부에서 직접 만들고 ‘대경위’라는 대통령 직속기구에 보고된 이 문건에 쓰인 4대 선결조건이라는 말이 편의상 축약적으로 사용된 용어였을 따름이란다.
정부의 기본원칙? 문제의 문건에 의하면 4대 선결조건과 관련된 정부 부처들은 그 조건들의 해결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9월까지 각 부처의 기본원칙은 4대 선결조건은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기본원칙은 지난해 10월에 갑자기 사라졌다. 정부는 기본원칙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다.
정부의 무지, 무능, 자료의 빈약에 놀랐다
무엇보다 <PD 수첩>의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자가 가장 놀란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무지함과 무능함, 그리고 자료의 빈약함이었다.
NAFTA 11조에 의한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에 관련해 현재 가장 중요한 소송으로 꼽히는 것은 캐나다 포스트(캐나다 우체국)의 택배서비스에 대한 미국 운송회사 UPS의 제소 건이다. UPS는 캐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캐나다 포스트의 택배서비스 때문에 자사 사업이 손해를 보았다며 국제분쟁조정기구에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이 소송에서 캐나다가 패할 경우 캐나다의 모든 공공서비스는 미국의 경쟁기업에 의해 제소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로서도 관심을 기울여 당연히 참고해야 하는 소송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재정경제부의 고위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은 바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정부-투자자 소송 제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준 후 그로부터 나온 반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UPS가 뭘 잘못한 거죠?”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 있어서 미국 쪽이 공공의료(건강보험)나 교육분야(영리법인 설립) 등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홍보한 바 있다. 하지만 NAFTA와 같은 수준의 한미 FTA가 성립되면 사회의 모든 분야가 투자의 대상이 되고 투자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국내의 규제 및 법률은 모두 다 제소의 대상인 될 수 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미국이 지금 관심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캐나다 포스트와 UPS의 소송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경부의 고위 관료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소송의 사회적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론스타가 왜 한미 FTA 로비를 했는지 정부는 아직도 모른다
필자가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만난 모든 관련 공무원들은 한국의 기업 또한 ‘투자자-정부 소송 제도’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까지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이런 제소에 있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걸까? 더 큰 문제는 투자자-정부 소송와 관련해 프로그램에서 예로 제시한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 캐나다의 에틸 사건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기업(투자자)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확신하는 것은 ‘참여정부’는 지금까지도 론스타가 한미 FTA와 관련해서 왜 거액의 로비를 했는지 그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브리핑>의 <PD 수첩> 반박기사조차 <PD 수첩>에서 제기한 론스타 관련 문제들에 대해 전혀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가 왜 미국과의 FTA에서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을 포함시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추천해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주어도 정부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이미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과 합의를 해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무능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PD 수첩>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여러 차례 한미 FTA 협상의 주체인 외교통상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4대 선결조건에 관해, 투자자의 국가 제소권 제도에 대해, 그리고 1차 협상에서의 쟁점에 대해 묻고자 했다. 거절당했다.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한 김종훈 대표에게 직접 인터뷰를 요청한 적도 있다. 김종훈 대표는 국회 공청회에서
만약 ’4대 선결조건’이라는 단어가 정부의 공식문건에 나오면 책임을 지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서면으로 질문하라는 답변만 받았다. 서면으로 질의서를 만들어 전달하려 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했다. 외교통상부에 <PD 수첩>에서 확보한 취재내용들에 대해 질의를 하고 답변을 얻으려 했지만 모두 답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언론을 기피하는 이유를 필자는 알기 어렵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무능한 정부라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받으면서도 하나의 미덕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 정부가 ‘참여’정부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참여’정부가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서는 시민사회의 참여를 완전히 배제한 채 무능한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더 불안하다. “무능한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라는 경구가 어지럽게 머리에 맴돌고 있다.
김재영/MBC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