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약값정책’ 문제로 2차협상은 ‘결렬’
커틀러 “외국약 차별”…김종훈 “의약품 심사방식, 논의가능”
2006-07-14 오후 1:41:4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이 마지막 날인 14일 한국 정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으로 인해 예정된 분과별 협상이 전면 취소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한미 양국 협상단에 따르면 이날 한미 양국 협상단은 무역구제, 서비스, 상품무역, 환경 등 4개 분과의 협상을 열 예정이었으나 건강보험 약값 정책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모두 취소했다.
이에 앞서 미국 측 협상단은 2차 본협상 둘째 날인 지난 11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오는 9월에 도입할 예정인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협상장을 떠났다.
이어 미국 측은 13일 같은 이유로 무역구제 분과와 서비스 분과 등 추가로 2개 분과의 협상에 일방적으로 불참했고 14일에도 이 두 분과의 협상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한국 측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14일 열릴 예정이었던 상품 분과와 환경 분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미국 측에 통보함으로써 이날 분과별 협상은 전혀 열리지 못했다.
커틀러 “한국의 약값 정책 FTA 정신에 부합하지 않아”…김종훈 “모두 오해”
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대표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브리핑을 열어 “의약품 문제가 의미 있는 협상을 배제시켰다”면서 한국 측의 ‘건강보험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이 협상 무산의 원인이 됐음을 시인했다.
커틀러 대표는 “건강보험의 개혁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해외에서 만들어진 의약품을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뒤 “서울에 와서 놀랍게도 한국이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을 통해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포지티브 시스템이란 효능을 인정받은 신약이라고 해도 모두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건강보험 지원 의약품으로 등재하는 방식이다.
커틀러 대표는 “한국의 그같은 결정은 의약품 협상 작업반의 목표와 일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FTA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보건복지부의 결정은 혁신적인 신약을 차별하는 것이며 후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커틀러 대표의 주장에 대해 김종훈 대표는 같은 날 저녁 7시에 정부 중앙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모두 오해일 뿐”이며 “포지티브 리스트를 구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리 정부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고 이는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의약품의 심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회의에서) 논의해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포지티브 시스템의) 내용도 보지 않고 제도 자체가 싫다, 제도 자체가 나(미국)에게 불리하다고 하니까 오해라고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차 협상은 결렬…전체 협상은 ‘계속된다’
이같은 상황이 전개되면서 지난 10일부터 열린 한미 FTA ’2차 본협상’은 사실상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는 오는 9월 4일이나 5일께 미국에서 예정대로 3차 협상을 열어 한미 FTA 협상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어서, 한미 FTA 협상 ‘전체’가 중단되거나 결렬된 것은 아니다.
한미 양국의 대표들은 이날 각자 가진 브리핑에서 ‘한미 FTA 협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커틀러 대표는 “의약품을 둘러싼 차이점이 비록 도전적이기는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면서 “오는 9월 4일께 시작될 3차 본협상에서 이 문제가 생산적으로 접근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종훈 대표 역시 “협상이 결렬된 4개 분과를 제외하고 다른 분과들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며 “3차 협상은 예상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측이 한국 정부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취소하거나 대폭 손질하지 않으면 협상을 더이상 진행하지 않는다는 완강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한국 측이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에 대해 양보하지 않을 경우 3차 협상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측은 한국 측에 앞으로 협상을 원만히 진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한국 측이 건강보험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의 추진을 중단하고 이 방안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서로 협의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통상교섭본부가 이날 오후에 발표한 한미 FTA 제2차 본협상의 ‘분야별 협상 결과’ 전문이다.
분야별 협상 결과
1. 상품/농산물/섬유
① 상품 : 양허안 작성에 대한 기본원칙(framework)에 합의
o 양허단계(category)는 즉시 철폐, 3년, 5년, 10년, 기타(undefined: 양허 제외, 10년 이상 등 포함) 5개로 구분해 교환하기로 합의
* 기타(undefined) 항목에 우리 측 민감품목을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할 예정
② 농산물·섬유 : 양허안 작성에 대한 기본 원칙 합의 없이 각각 작성, 교환 예정
③ 양허안 교환시기 : 상품, 섬유, 농업 양허안을 8월 중순경 일괄 교환하기로 결정
2. 서비스/투자
o 양측은 7.11(화) 서비스/투자 1차 유보안을 교환하고, 양측간 주요 관심분야에 대한 질의응답을 진행
o 미국 측 유보안은 미국 측이 기존 FTA에서 제시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개방안을 담은 것으로 평가
3. 개성공단 원산지 특례인정
o 우리 측은 역외가공 방식에 관한 기존 FTA 사례 소개와 원산지 인정을 위한 기술적인 사항을 설명하였으나, 미국 측은 개성공단 문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
4. 기타
□ 원산지/통관
o 미국 측 대표단을 부산세관에 초청해 우리의 선진화된 통관시스템을 소개
- 미국 측 대표단은 선진화된 시스템을 높이 평가하고, FTA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 전달
□ 서비스
o 미국 측은 우리의 교육, 의료 시장의 개방 및 수도, 전기 등 공공분야의 개방에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함
- 미국 측은 우리의 국민건강의료보험제도(national health care system)를 존중하겠다는 의사도 전달
□ 금융
o 우리 측은 미국 측의 신금융 서비스 개방 요구는 지난 1차 협상시 확인되었던 제한사항 이외에 서비스 공급자의 국내 상업적 주재가 필요하며, 금융감독당국이 신금융상품을 건별로 심사하여 허가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함
* 1차 협상시 확인된 제한사항 : 미국 측은 국내법의 변경을 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또한 금융시장 안정, 소비자보호 등 건전성 확보를 위한 감독당국의 허가 하에서 신금융 서비스 공급 허용을 요청
□ 통신/전자상거래
o 양측은 각국 법령 체계 하에서 전자상거래상 소비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관련 기관 간 협력 노력을 규정한 온라인 소비자보호에 합의
이주명,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