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단언컨데, 한미FTA 하면 약값 폭등한다”

“단언컨데, 한미FTA 하면 약값 폭등한다”  

최원목 교수의 ‘한미FTA 흔드는 무모한 가정들’ 비판  
  

남희섭(IPLeft)  / 2006년08월22일 7시08분  

“법이 비록 사회 구성원 중 어느 일방의 이익을 옹호하고 타방의 이익을 배제하는 것이라도, 법조문이 강자의 이해관계를 적나라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 듯한 외관을 갖추도록 조치함으로써 법의 원만한 집행을 도모한다(이상수, 민주법학 제15호).”

법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강조한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 최원목 교수가 “한미FTA를 흔드는 무모한 가정들”이란 제목의 칼럼을 보면서 왜 이 표현이 생각날까? 한미FTA로 인해 약가가 폭등하고 투자자 보호 조항이 공공정책을 파괴할 것이라는 시민사회 단체의 우려가 ‘무모’하다는 최 교수의 주장은 FTA 협정문에 숨어 있는 미국의 의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작 무모한 쪽은 FTA 반대론자가 아니라,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협정만 체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정부다. ‘무모’란 말은 “계략이나 분별이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은가? 납득할만한 계략도 제시하지 못하고,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한미FTA를 분별없이 추진하는 정부를 보노라면, ‘무모’란 이런 경우에 쓰라고 만들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최 교수는 미국이 주장하는 지재권 강화 요구가 신약개발에 대한 긍정적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면서 1987년에 도입된 물질특허 제도가 국내 신약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예를 든다. 물질특허란 의약품 자체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물질 특허가 신약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는 주장은 특허권 옹호론자들이 퍼트리는 동화 같은 미신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물질특허 도입이 장려한 것은 신약개발의 동기가 아니라 물질특허 도입 후 2배로 늘어난 외국 제약사의 특허출원일 뿐이다.

특허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기술 수준이 낮을 때 그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강화하여 기술발전을 이룩한 예는 없다. 중세 유럽에서 특허제도가 처음 생겨난 것도 자국의 우수한 기술자가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특혜를 주려는 것이었다. 세계 상위 10대 제약사 중 3개나 가지고 있는 스위스는 1977년까지 의약품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1888년에는 특허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되어 특허제도 자체가 없었다. 당시 가장 발달했던 독일의 제약 기술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기 위해서였다.

미국도 자국의 저작권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외국 저작물을 미국의 출판업자들이 ‘해적질’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주었다. 미국이 1790년에 만든 저작권법은 외국인의 저작물을 보호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불리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1840년대에 자신의 저작물의 보호를 주장하기 위해 미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미국의 출판사들이 디킨스의 소설을 무단으로 출판해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 저작권법이 외국의 저작물을 차별한 것은 1986년까지 무려 2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저작권에 관한 최초의 국제조약인 1886년 베른협약에 100년이 넘게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베른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가 외국 저작물에 대한 내국민대우를 하지 싫어서란 점은 미국 저작권법 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기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소위 ‘선진 제국’들이 자신들이 ‘후진국’일 때 선진국으로 올라가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 ‘후진’ 나라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유무역이다.

‘자유무역’으로 포장된 지재권 강화를 미국이 전세계에 퍼트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인데, 그 첨병에는 바로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있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미국의 무역대표부나 특허청과 이른바 ‘회전문’ 관계를 형성하며 미국 통상정책에 직접 개입하였고 한미FTA에서도 의약품 관련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협상 과정에서 반드시 의견을 들어야 하는 자문위원회 중 지재권 분야를 전담하는 위원회는 절반 가량이 미국 제약사의 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이 한미FTA에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혁신에 대한 보장’이나 ‘의약품 특허권의 강화’는 한국 제약사들에게 신약의 개발 동기를 부여하거나, 한국 국민들의 치료접근권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신약 개발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제약사들의 독점이윤을 보장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언하건대, 한미FTA를 하면 약값이 폭등한다. 한국의 약값이 폭등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근거 없는 가정이 아니다. 미국은 상대국에게 미국 수준의 지재권 보호 기준을 만드는 것을 FTA 협상 목적으로 삼는다. 이 협상 목적은 통상법을 통해 미국 의회가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미국 협상단이 양보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지재권의 보호를 미국 수준을 끌어 올리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미국 사회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미국 제약시장에서 제네릭(복제약)이 전체 처방약의 품목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에 56%다. 그런데, 시장 규모는 전체 251억 달러에서 13%에 불과한 22억 달러만 제네릭 시장이 차지하는 데에 그친다. 87%나 되는 시장은 특허권으로 무장한 다국적 제약사가 가져간다. 특허 의약품의 가격이 미국보다 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약값이 높은 스위스도 미국의 80%에 미치지 못한다. 한미FTA를 체결하면, 한국의 제약시장도 미국처럼 재편될 것인데, 어떻게 약값은 올리지 않고 지재권 보호수준만 올릴 수 있다는 말인가?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의 위험성은 지재권 강화로 인한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투자자에게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국제법의 이단’으로 불리는 위험천만한 제도다.

한국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이 투자유치국 정부가 조약상의 의무조항을 위반해 불법적인 규제를 가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순진한 정도를 넘어 무지한 것이다.

나프타에 처음 들어간 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은 처음에는 그 위험성이 부각되지 않았다가 1996년 에틸사와 캐나다 정부 사이의 분쟁이 있고 나서 주목을 받았다. 캐나다 정부는 에틸사의 석유첨가제가 환경 오염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규제를 했다가 에틸사로부터 제소를 당해 1998년 7월 에틸사에 양보하여 규제를 철폐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했다. ‘불법 규제’에만 적용될 줄 알았던 ‘장롱 속의 제도’를 미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활용해 성공함으로써, 국가의 공공정책을 투자 보호의 하위 개념으로 끌어 내렸다. 캐나다는 나프타가 체결된 이후 겨우 2개의 환경관련 법률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들 모두가 투자자-국가 소송의 대상이 되어 미국 기업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법률을 폐기하였다. 환경을 파괴한 자가 비용을 대는 것이 아니라, 환경 파괴를 막으려는 정부가 도리어 보상금을 주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을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가 초래한 것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의 대상이 되는 당사국의 조치는 범위가 아주 넓고 이 조치의 ‘불법’ 여부도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 투자 조항에 적용되는 당사국의 조치는 법률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뿐만 아니라, 행정부가 만든 고시는 물론 사법부의 판결도 포함될 수 있다. 또한, 투자자-국가 소송은 투자 관련 조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FTA 협정문의 다른 조항에도 적용된다. 나프타에는 ‘최소한의 국제 기준’에 따라 투자자를 취급해야 한다는 의무를 투자 조항에 두고 있는데, 투자 관련 조항 이외의 협정문을 당사국이 지키지 않은 것도 ‘최소한의 국제 기준’을 따르지 않은 것이 되어 투자자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메탈클래드(Metalclad)와 멕시코 정부 사이의 분쟁이나, 마이어스(S.D. Myers)와 캐나다 정부 사이의 분쟁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은 한미 FTA에서 비위반 제소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데, 비위반 제소는 협정문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기대 이익이 무효화되거나 침해된 경우 분쟁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것은 지적재산권과 농업, 정부조달 조항에 적용된다. 형식상 투자 조항과 별개로 되어 있는 비위반 제소 조항이 투자자-국가 소송의 대상까지 되었을 때 초래될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법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강조한 서두의 표현은, 법 조문만을 놓고 보면 이를 통해 관철하려는 강자의 이익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런데, 투자자-국가 소송은 문구만 보아도 이것이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것인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역진금지 원칙에 따라 한번 양보한 것은 되돌릴 수 없도록 한 한미FTA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을 미국에 이미 합의해 준 한국 정부가 싱가포르에 가서 별도의 의약품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협상단의 여행 경비까지 대주는 ‘구걸’ 협상에서, 그것도 조항의 문구만 봐도 알 수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한국 정부가 건강보험제도의 공공성을 지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일까?  

    
남희섭 님은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로, 한미FTA저지지적재산권공대위 집행위원장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