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농민들도 국제연대에 나서야
[먼슬리 리뷰] 초국적 농기업의 위협(2)
[프레시안 2006-11-26 오후 2:12:18 / 윤병선 교수]
초국적 농식품복합체(TNAC)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현재의 농식품 체제는 환경적으로 균형 잡힌 영농체계를 무너뜨려 생태학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농업 시스템으로 인해 농가의 구성요소들 간 결합이 이완된 빈약한 구조를 발생시켰고, 단일곡물 생산으로 인해 다량의 살충제와 비료 사용을 초래하여 투입물 사용의 효율성은 감소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의 농업 파괴
현재의 농식품 체제에서는 공장식 농업경영(industrial agriculture)이 농약의 남용을 가져오고, 농촌에서 농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체를 위협하고, 작물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과도한 기술의 이용을 초래해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조장함으로써 결국은 가족농을 몰아내고 전통적인 농촌사회를 파괴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나라든 농업기반이 TNAC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식품의 다양성이 파괴될 뿐 아니라 ‘값싼 위험식품 문화(junk food culture)’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세계화의 파고와 TNAC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은 후진국이나 농식품 수입국의 농업 생산자 및 소비자뿐만이 아니며, 선진 농식품 수출국의 중소 가족농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인 농식품 수출국인 미국의 경우도 농식품복합체의 사업영역 확대 과정과 맞물려 가족농의 괴멸과 대규모 기업농의 급성장으로 인해 생산의 특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위 2%의 농가가 전체 판매액의 50%를 생산하고, 하위 73%의 영세농 및 가족농은 단지 9%의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장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농가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고, 농민보다도 감옥에 수감 중인 사람들이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TNAC들은 농업의 특화를 더욱 심화시켜 환경적으로 균형 잡힌 영농체계를 무너뜨려서 유전적 자원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표준화된 생산물의 공급을 확대시키며, 농업생산의 획일화를 강제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과는 반대로, 생태순환을 파괴하는 영농형태가 강요되고 있다. 현재의 농식품 체제는 지역성이 풍부한 인간다운 식생활, 식문화를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이와 반대로 식생활, 식문화를 획일적이고 왜곡된 방향으로 치닫게 한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현재의 농식품 체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모순이 모든 선·후진국에서 무차별적으로, 그리고 동일한 형태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며, 국가개입의 형태에 따라 그 위기의 양태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농민과 곡물 판매업자 등이 미국정부로부터 받는 평균 보조금은 민다나오(Mindanao) 섬의 옥수수 생산자가 취득하는 소득의 약 100여 배에 달한다. 이와 같이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농업에 대해 각종 보조금을 지불해 왔고 그 덕분에 값싼 식료품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지만, 기아와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후진국에서는 국민이 먹는 식량 생산의 자립으로 나아가는 방향과는 반대로 종속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1950년대에는 10%에 불과했던 세계 밀 수입량 중 후진국의 비중이 1980년에는 57%로 확대된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고, 후진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도 지역경제의 확대나 지역의 식품 필요성과는 더욱 괴리되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농업 및 농식품에 대한 TNAC들의 지배가 세계적 규모로 강화되어 농식품의 원료 생산에서부터 가공,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이 세계적 통합체제에 포섭되면서 각국 정부가 실시해 온 농산물가격 지지정책이나 전통적인 양자 간 혹은 다자 간 농산물 무역정책도 그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농업생산은 TNAC들의 수직적 통합 및 다각화에 포섭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다른 농산물 수입국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농업도 수입자유화라는 압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입자유화 압력으로 곤경에 빠져 있는 한국 농민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국의 농업경영자들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전 세계 농민들을 압박하고 있는 국제 독점자본의 일환으로서의 TNAC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농산물 수출대국인 미국에서도 TNAC들의 시장행동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국농민동맹(National Farmers Union)이나 미국농업운동(American Agriculture Movement)과 같이 중소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농민조직들이 다국적기업 반대와 가족농업경영 옹호 등의 정책을 내걸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중소 농민경영이 농장 수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농업생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중시해 TNAC들의 농업·식량 지배를 엄격하게 규제함으로써 중소 농민의 경영 개선과 중소 농민의 농산물 판매비중 회복을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실현할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전국농민동맹(NFU)은 가족농이나 중소기업 경영자, 소비자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에 의한 자원 및 부의 수평적·수직적 통합을 억제하고, TNAC들의 사업활동에 대한 감시와 규제조치를 강화하여 공정한 시장경쟁을 촉구하는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TNAC들의 진출이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는 유전공학 부문에서는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들뿐만 아니라 대안농업 운동을 하는 단체들과 환경운동 단체, 소비자 단체 등이 이미 유전자조작식품(GMO)에 대한 반대에 나서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 운동과 함께 이들 TNAC들의 세계화 전략에 대한 저항도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소수의 TNAC들이 공공적 성격이 강한 식품을 지배하는 문제와 함께 식품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TNAC들의 ‘유전자원 약탈(bio-piracy)’에 의해 선진국의 가족농과 제3세계 농민들이 이들 기업에 대해 갈수록 더 예속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적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보더라도, 후진국의 소농들은 물론 선진국의 가족농들도 자국의 농업을 지키고 자신의 생활터전을 지킨다는 견지에서 농산물 수출국 또는 수입국을 초월하여 TNAC들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예를 들면, 1992년 중미·북미·유럽의 가족농들로 결성된 비아 캄페시노(Via Campesino)를 통해 TNAC들의 농업 지배에 대한 대응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안정적인 농업생산의 유지 및 식량의 안정적 확보와 더불어 생물종 다양성의 유지를 위한 관건이기도 하다.
윤병선/건국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