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약값 적정화 방안’ 1월 시행…얼마나 손질될까? ‘한미 FTA’와 ‘제약업계 반발’로 애초 취지 빛 바래

‘약값 적정화 방안’ 1월 시행…얼마나 손질될까?  
  ’한미 FTA’와 ‘제약업계 반발’로 애초 취지 빛 바래  

  2006-11-27 오후 2:29:06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다 싼 값에 양질의 약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이 내년 1월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방안은 본래의 취지에 무색하게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미국 제약업계로부터 받은 ‘입김’은 물론 ‘밥그릇 챙기기’에 나선 국내 제약업계의 이해관계도 이미 부분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 상태여서, 최종 확정 단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더 변질될까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약값 적정화 방안, 복지부 안대로 규제위 통과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의 세부내용이 담긴 복지부의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 안 및 ‘신의료기술 등의 결정 및 조정기준 일부 개정안’에 대한 규제 부문 심사를 통과시켰다.
  
  개정(령)안은 대부분의 의약품을 건강보험 적용대상으로 하는 현행 제도를, 약값에 비해 효능이 좋은 의약품 위주로 선별등재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제도로 전환하자는 복지부의 원안대로 통과됐다.
  
  아울러 의약품 등재기간의 연장,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값 상한금액 협상, 미(未)신청 품목에 대한 직권등재, 약값 상한금액 및 급여여부 조정, 특허만료약과 제네릭(복제약) 약값의 20% 연동 인하 등도 대부분 복지부 안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날 규개위 심사를 통과한 개정(령)안은 한미 FTA 협상 결과를 반영해 암 치료제 ‘글리벡’과 같은 의약품 가격을 높게 책정하도록 하는 ‘혁신적 신약의 선진7개국 평균약값 기준’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기존 의약품의 경우 선별등재 방식을 적용하는 것을 2008년 이후로 미뤄 1년 유예해주는 것으로 돼 있어,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 온 ‘진정한’ 약값 인하 방안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복지부는 규개위를 통과한 약값 적정화 방안을 최종적으로 손질한 후 법제처 심의를 거치는 대로 늦어도 12월 중에는 고시·공포하고 내년 1월에는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규개위 권고 “복제약값 인하는 조금만”…제약업계 입김 반영?
  
  단 규제개혁위원회는 23일 본회의에서 제약업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4가지 권고사항을 복지부에 전달했다.
  
  구체적으로 규개위는 △제약업계 육성 방안의 마련 △약값 적정화 방안의 시행 후 사후점검 및 평가보고 △약제비 적정화 방안 개선 관련 법안의 시행령 이상 상위법령으로의 격상△특허 만료의약품 가격과 제네릭(복제약) 가격의 연동 인하 시 인하폭의 하향조정 등을 복지부에 권고했다.
  
  이런 권고사항들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규개위가 제네릭 가격의 인하폭을 낮추도록 권고한 부분이다.
  
  복지부는 원래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과 해당 제네릭의 가격을 20% 연동해 인하하는 안을 제시했다. 즉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을 원래 가격의 80%로 인하하고 이를 기준으로 제네릭의 가격을 그 가격의 80%인 64%로 인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규개위는 제네릭 가격의 인하폭을 이보다 줄여 특허만료약 최고가(80%)의 90%인 72%선으로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행(가정): 특허만료약 100원, 제네릭 80원(특허만료약 가격의 80%)
  △복지부 안: 특허만료약 100원→80원(기존가격의 80%), 제네릭 80원→64원(80%)
  △규개위 안: 특허만료약 100원→80원(80%), 제네릭 80원→72원(90%)
  
  규개위가 이런 권고사항을 내놓은 것은 약값 적정화 방안의 시행에 대한 국내 제약협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약협회는 복지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공포하는 대로 법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나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태다.
  
  국내 제약업계는 특허만료약이든 제네릭이든 약값을 20%씩 인하하면 전체 매출이 20%가 줄어들어 제네릭의 생산은 물론 신약 개발이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특허만료약 가격과 제네릭 가격을 연동해 인하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실련, 전농, 한농, 민주노총 등 20여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에는 (제네릭의) 가격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부안(80%)보다 더 낮은, 원래 의약품의 40~70%로 책정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보험 약값제도의 결함으로 보험 약값이 고(高)평가돼 있는 것을 바로잡겠다는 것이 어떻게 제약회사를 죽이는 정책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는 또 “오리지널 의약품과 연동해 (제네릭) 가격을 조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OECD 국가들은 물론 우리나라도 이제까지 제네릭 가격은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과 연동해 계산해 왔다”고 지적했다.
  
  한국 “이의신청기구 만들어 줄 테니 GMP·GLP 상호인정 협정 맺자”
  
  한편 한미 FTA 의약품·의료기기 분과의 협상에서 약값 적정화 방안과 관련해 우리 측 협상단이 우리나라의 ‘우수의약품의 생산 및 품질 관리기준(GMP)’과 ‘실험실 운영기준(GLP)’을 미국이 인정해 주면 독립적인 약값 이의신청기구를 만들어 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해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미국의 통상 관련 인터넷 매체인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는 지난 24일 복수의 한국 쪽 소식통들을 인용해 한국정부가 미국 측이 요구하는 약값 이의신청기구의 설립을 수용하는 대가로 미국정부에 한미 양국의 GMP와 GLP를 상호 인정하는 협상을 맺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 측은 이런 요구에 응할 것 같지 않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미국 쪽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지난 2002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미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연합(EU) 간 GMP에 관한 상호인정 협정을 체결하려고 추진했으나 FDA의 거부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한국 측 협상단이 내년 1월에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미국 측에 알렸으나, 한미 FTA 협상의 결과에 따라 이 방안의 세부내용을 변경시킬 가능성은 열어 뒀다고 보도했다.  
    
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