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구제 협상 결렬…의약품·자동차 협상도 중단
FTA 미국 협상대표 “한국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촉구
2006-12-07 오전 9:04:17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 셋째날인 6일 오전 10시(현지시각) 무역구제(trade remedy) 분과의 협상이 결렬됐다.
우리 측 협상단은 전날인 5일 협상이 개시된 무역구제 분과에서 기존의 요구사항들 가운데 5가지를 선별해 미국 측 협상단에 제시하고 6일까지 이에 대한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6일 오전 미국 측이 우리 측 요구를 모두 다 수용할 수는 없다고 밝혀와 협상이 결렬됐다.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이 중단됨과 동시에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도 예정보다 이틀 일찍 종료됐다. 또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도 하루 일찍 종료됐다. 하지만 나머지 분과의 협상은 원래 일정대로 계속되고 있다.
무역구제 협상 왜 중단됐나?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6일 오전 1시간30분 간격으로 연달아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및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이 중단된 이유와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양국 수석대표 모두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이 중단된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대표는 미국 측이 무역구제 분과에서 진전된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웬디 커틀러 대표는 우리 측이 5가지 요구사항을 한꺼번에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요구를 했다고 반박했다.
김종훈 대표는 “어제 무역구제 분과의 5가지 요구사항에 ‘다자 세이프가드 적용 배제’라는 1가지 요구사항을 더해 총 6가지의 요구사항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을 오늘 오전까지 밝혀달라고 요구했다”면서 “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이 없어 무역구제 분과 (협상을 계속해 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오늘 오전 10시경 협상을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웬디 커틀러 대표는 “어제 오후 한국 측이 우리 측에 구체적인 요구사항들을 제시하면서 ‘모두 수용하든지, 아니면 관두든지 하라(Take them all, or leave)’고 통고했다”면서 “무역구제가 미국에 있어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 측에서 매우 ‘비합리적’인 요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약품과 자동차 작업반 협상은 왜 중단됐나?
한미 양국 수석대표는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과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이 각각 이틀과 하루 일찍 종료된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했다.
김종훈 대표는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 결렬을 이유로 우리 측에서 ‘자발적으로’ 두 작업반의 협상을 중단시킨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커틀러 대표는 이 두 작업반의 협상이 조기에 마무리된 것이지 협상 중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김종훈 대표는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 결렬과 연계해)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을 중단시켰고, 미국 측 관심 분야인 자동차 작업반의 회의도 어제 종료했다가 오늘 재개할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 이 작업반(의 협상)을 속개해도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는 판단 하에 재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웬디 커틀러 대표는 “김 대표가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을 중단시켰다고 하는데 실은 이 작업반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이미 다 했기 때문에 조기에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커틀러 대표는 또 “김 대표가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도 ‘중단’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그 용어 선택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어제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이 마무리되어 더 이상 논의할 게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과 자동차 작업반의 협상이 계속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에서는 우리 측이 연내에 시행하기로 한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에 추후 한미 FTA 합의사항을 반영해 주기로 약속했다. 또 자동차 작업반에서는 미국 측이 이번 협상에서 제시한 안에 대해 우리 측이 국내 검토를 거쳐 수정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양측 간 합의가 됐다.
한미 FTA 협상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이렇게 5차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한미 FTA 협상이 아예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도 협상 셋째날인 6일 현재 무역구제 분과와 의약품·의료기기, 자동차 작업반을 제외한 다른 분과들의 협상은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또 오는 8일에 이번 5차 협상이 끝나도 연말 이전에 한미 양국 협상단이 다양한 협의채널을 통해 무역구제 분야의 쟁점들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측을 맹비난했던 웬디 커틀러 대표도 회견을 마무리하면서 “5차 협상이 중간에 장애물을 만났지만 FTA 협상에서, 특히 민감한 쟁점들에서 이런 일은 이례적인 게 아니다”라면서 “큰 밑그림을 보면 우리는 아직 14개 분과에서 협상을 계속하며 꾸준히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내년 초까지 협상을 타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종훈 대표도 “나머지 협상 분과(의 협상)는 예정대로 잘 진행될 것”이라면서 “오늘 저녁 (9시로 예정된) 브리핑에서 이 분과들의 협상 진척상황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나아가 “우리 측 협상단은 협상의 전반적인 진전을 위해 ‘연말까지’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국 측을 설득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이 4차 협상 때까지에 비해 (무역구제 분과의 우리 측 요구사항들에 대해) 전향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미 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무역구제 관련 쟁점을 포함해 한미 FTA 전반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무역구제보다 더 무서운 건 쇠고기?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 한미 FTA 협상의 더 큰 장애물은 무역구제 문제가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상륙 좌절’을 둘러싼 한미 양국 간 장외 갈등인 것으로 보인다. 6일(현지시간으로는 5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이 재개된 후 국내로 반입된 세 번째 쇠고기가 ‘또’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우리 측 검역당국은 세번째로 반입된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됨에 따라 해당 쇠고기를 반송 조치한 것은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고 밝히면서도 이같은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데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미국 측은 △엑스레이(X-Ray) 전수검사 등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리 측 위생검역이 지나치게 엄격하다 △살코기에 뼛조각이 몇 개 들어가 있다 해도 살코기가 위험하지는 않다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국 측에 쇠고기 수입 압박을 전방위로 펼치고 있다.
웬디 커틀러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역구제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가 사실은 쇠고기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도 “한국 측이 쇠고기 선적 물량을 3차례나 거부한 것은 ‘식품안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커틀러 대표는 나아가 “정확히 말해 이 문제는 한미 FTA 협상에서 다룰 사안은 아니지만 (한미 FTA가 미국 내) 이해당사자들의 지지를 받고 미 의회에서 비준을 받으려면 한국 측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빅스카이=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