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기는 한·미 FTA 누가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한·미 FTA 실무협의]
4일부터 미국 몬태나주 빅스카이에서 열렸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본협상이 8일(현지시간) 무역구제.의약품.자동차.농산물 등 핵심 쟁점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닷새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양국은 내년 1월 15~19일 한국에서 6차협상을 열기로 했다. 협상 장소로는 서울이 유력하다.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는 5차협상을 끝낸 뒤 “일부 분과의 협상 중단에도 불구하고 상품무역.서비스.지적재산권 등 상당한 실질적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핵심 쟁점 타결엔 ‘정치적 결단’ 필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다섯 차례 열렸지만 외관상으론 핵심 쟁점에서 양측의 이견이 여전하다. 특히 2차 협상 당시 의약품 분야에서, 5차 협상에선 무역구제 분야에서 양국이 일방적으로 협상을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한.미 협상단 내부에선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많아 관전자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양측이 협상 중단까지 불사하는 ‘밀고 당기기’ 전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이는 실무 차원에서 ‘가지치기’를 해나가면서 핵심 쟁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막판까지 남는 핵심 쟁점을 ‘주고 받기’하는 정치적인 타결을 통해 FTA 협상이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한.미 FTA 협상의 3대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 쟁점은 한꺼번에 타결된다=농업.자동차.의약품 등 양국의 이해가 상충하는 분야에선 각종 쟁점이 여전히 맞서 있는 상태다. 협상이 중단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이 때문에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FTA 협상이 전 분야를 한꺼번에 동시 타결하는 ‘일괄 타결(single-undertaking)’ 방식을 취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으로 보이지만 이는 협상 결과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힘겨루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내년 1월 6차 본협상부터는 지금까지 드러난 쟁점별로 ‘주고받기식’ 연계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협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게 양측 협상단의 전망이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보이는 데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분야의 협상 결과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는 탓도 있다. 양측 모두 협상 타결 후 성과를 한꺼번에 발표해야 그 과정에서 양보하거나 상대방에게 밀린 내용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에 협상 내용을 100% 공개하지 않고 있다.
◆ 손익계산은 지금부터 따져야=경제 강국인 미국과의 협상에서 주고받기식 협상을 하다 보면 미국의 압력에 밀려 우리만 손해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의 개방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비슷한 비율로 서로 양보하다 보면 한국의 개방 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통상 전문가들은 어떤 통상 협상이든 양국이 내놓을 수 있는 양보의 수준을 모두 보여주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에 협상 타결 여부가 결정되고, 손익계산도 이 시점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상대방 입장을 서로 충분히 탐색한 만큼 이제부터 주요 쟁점 분야에 대한 양국의 양보 수준이 드러나게 되고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봐야 양국의 실익을 제대로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 요구사항이 더 큰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한국 측의 반대논리를 힘 있게 하기 위한 한국 협상단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컨대 미국이 쇠고기 수입개방 요구를 강하게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약점인 무역구제.섬유 등에서 한국 측이 똑같은 논리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목표시한 내 타결 가능성은=’몸통’을 제외한 ‘잔가지’의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고 있기 때문에 6차 협상에서 핵심 쟁점에 대한 연계 협상이 시작되느냐가 시한 내 타결의 관건이다. 이렇게 되면 한두 차례의 추가 협상을 거쳐 내년 3월 말 이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가능하다고 협상단 관계자는 전망했다.
“감이 익을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익어서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김종훈 수석대표의 발언도 이런 맥락이다.
문제는 몸통의 해결을 위해선 정치적 부담이 많은 쌀.쇠고기 개방(한국 측), 반덤핑 제도 개선, 개성공단 문제(미국 측) 등에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고 정치권 내부의 합의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 의회가 행정부에 통상협상권한을 위임한 무역촉진권(TPA) 시한(내년 6월)을 넘겨버리면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의회 내 심의과정 등으로 실제 발효에 3~5년 이상 걸릴 수 있어 효과가 반감된다. 이 때문에 한.미 양측 모두 양국 간 대외 협상의 타결보다 내부 협상에 더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빅스카이(미 몬태나주)=홍병기 기자
“쇠고기 개방 문제 FTA와 관련 없다”
김종훈 한국 수석대표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는 “그동안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섬유분과에서 만족할 만한 기본틀은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8일(현지시간) 5차 본협상 결산브리핑에서 미국 워싱턴에서 차관보급으로 격상돼 별도로 열린 섬유분과 협상과 관련, “상호 조속한 진전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측의 무역구제 절차 개선과 관련,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면밀히 검토해 연말에 의회에 보고할 내용을 결정할 계획인 만큼 이 내용을 본 뒤 6차 협상의 대응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5차 협상에 대한 평가는.
“무역구제와 자동차.의약품 협상이 중단됐으나 양측이 유연성을 많이 발휘해 상품과 서비스.지적재산권 등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뤘다. 다만 농업 협상에서는 구체적 품목별 양허 협상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쌀 문제는 이번 협상에서 한마디도 안 했다. 앞으로도 못하게 하겠다.”
-한국이 가장 주력하는 무역구제 분야에서의 성과는.
“무역구제에서의 진전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전체 협상의 진전을 위한 물꼬를 터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미측이 무역구제와 관련, (우리 요구를) 면밀히 검토해 보고 내용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 기대를 갖고 주시하겠다.”
-앞으로 협상 전망은.
“양측이 내년 적절한 시기에 타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쇠고기 문제는 FTA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데 의견이 일치하며 양측 간에 오해는 없다. (미국의 자동차 세제 개선 요구는) 협상 전반의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양측의 득실을 따질 필요가 있다.”
“쌀시장 개방 문제 후반단계서 꺼낼 것”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협상 후반 단계에서 쌀 시장 개방문제도 꺼낼 생각”이라고 밝혔다. 커틀러 대표는 8일(현지시간) 한국 측 대표와 별도로 가진 결산브리핑에서 “한국에 쌀이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후반 단계에서 좀 더 고위급 대표들을 중심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수입재개도 FTA의 협상 대상은 아니지만 의회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완전한 쇠고기 시장 개방이 필요하다”며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다. 커틀러 대표는 한국의 서비스 시장 개방과 관련 “통신.온라인 비디오.방송과 함께 가스. 전기 등 시장도 더 열도록 계속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영모 한국 측 서비스 분과장은 “미 협상단에 확인한 결과, 가스.전기 공급 등 공공 서비스가 아니라 현재 한전 자회사 등이 맡고 있는 발전정비.수리.설계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5차 협상에 대한 평가는.
“상품 시장접근.서비스.지적재산권.경쟁.환경.노동 분야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자동차와 의약품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해 유감이다.”
-서비스 분야의 협상 성과는.
“전문직 자격증 상호 인정을 다룰 위원회 설립 문제를 논의하고 특송배달 분야에서 미국 측 공급업체들에 의미있는 시장접근을 제공하게 된 것 등이다.”
-향후 계획은.
“6차협상 전까지 시장접근 분야 등에서 전화.영상 회의를 진행할 것이다. 7차협상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공식 협상일정 외에도 양측 간 다양한 직급별 접촉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칼로스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장관이 다음주 방한, 미국의 협상 의지를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