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재협상 앞두고 여론조성? 역할분담?
재경부 “뼛조각 美쇠고기 반송은 무리” 주장
2006-12-22 오전 11:52:31
미국이 ‘쇠고기 시장의 전면개방 없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없다’는 태도로 한국에 대한 쇠고기 시장 개방 압박을 계속 가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경제부가 쇠고기 수입 문제를 관장하는 농림부를 압박하는 형태로 국민들에게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하는 게 어떠냐’고 떠보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김성진 차관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조치” 주장
김성진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은 22일 오전 KBS1 라디오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에 출연해 “국민 건강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보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샘플조사도 아닌 전수검사를 하고도 작은 뼛조각을 이유로 수입물량 전부를 돌려보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진 차관보는 “국민건강을 볼모로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농림부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의 날을 세웠다.
농림부가 최근 국내로 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수검사에서 잇달아 뼛조각이 발견됨에 따라 해당 쇠고기를 반송·폐기 처분한 뒤에 외교통상부나 재경부에서 이미 ‘농림부가 융통성 없이 행동해 한미 FTA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미국 관료도 아닌 우리나라 관료가 우리나라 검역기준이 ‘불합리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진 차관보의 이날 발언은 전날인 21일 농림부가 이미 뼛조각이 발견됐던 미국산 쇠고기에서 추가로 치명적인 발암성 환경호르몬 다이옥신이 허용치 이상으로 검출됐다고 밝힘에 따라 곧 열릴 예정인 미국과의 쇠고기 검역 관련 기술적 협의가 한층 더 어려워진 것에 대한 ‘우회적인’ 반감의 표시로도 읽힌다.
농림부는 21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지난 1일 미국에서 수입된 냉장 쇠고기 10.2t를 정밀검사한 결과, 국내 허용 기준치 5pg/g(피코그램, 1조 분의 1g)를 웃도는 6.26pg/g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며 “국내에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허용치를 넘는 다이옥신이 검출된 것은 처음’이라고 발표했다.
재경부와 농림부, ‘갈등’인가 ‘역할분담 공조’인가?
일각에서는 재경부, 외통부 등 한미 FTA 주무부처와 농림부가 표면적으로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 완화 또는 쇠고기 시장의 전면개방이라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미 FTA 우리 측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한미 FTA 협상에서만큼 국내 주요 부처들이 잡음을 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한미 FTA라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각 부처들이 ‘자기 부처 때문에 협정 체결에 실패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모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경부 등이 농림부의 검역기준이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여론의 동조를 구하면 ‘국민 건강’과 ‘국내 축산농가의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기 힘든 농림부가 조만간 열릴 미국과의 쇠고기 검역 관련 기술적 협의에서 미국 측에 양보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커진다.
이와 관련해 김성진 차관보는 “쇠고기 협상과 FTA는 별개”라면서도 우리나라 쇠고기 가격이 국제가격보다 5~10배 비싸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내 축산농가의 소득 보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쇠고기 시장을 전면개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한 셈이다.
미국 보커스 의원 측 “쇠고기 빠진 한미 FTA엔 반대”
미국 측에서는 ‘한국 측이 손톱만한 뼛조각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거부한다면, 우리(미국) 측에서도 한미 FTA를 체결할 수 없다’고 연일 노골적인 압박을 가해 왔다.
미국 측은 지난 12일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우리 측의 1~3차 미국산 쇠고기 수입분에 대한 검역 및 반송 조치에 대한 기술적 협상을 공식으로 요청해 왔다.
미국 측은 또 지난 19~20일 이틀 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위생검역(SPS) 분과의 협상을 이 기술적 협상이 끝난 후에 하자며 연기시킨 바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이 이 SPS 협상에서 쇠고기 뼛조각 문제에 대해 협의하자고 요구해 우리 측에서 협상을 연기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편집국장은 21일 “우리 측이 협상을 연기한 것이 아니고 미국 측이 지난 16일 일방적으로 협상 연기를 통고한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또 지난 19일 바이런 도건 민주당 상원의원(네브라스카 주)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미국은 한국정부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쇠고기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아울러 도건 의원은 “한국이 근거 없는 구실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계속 막을 경우 청문회 개최와 보복관세 부과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미 FTA의 열렬한 지지자인 맥스 보커스 민주당 상원의원(몬태나 주)의 한 측근은 최근 <프레시안>과의 면담에서 “보커스 의원이 지난 6년 간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해 온 것은 이 협정이 이 지역 축산농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음 때문”이라며 “미국 축산농가에 도움을 주지 않는, 즉 한국의 쇠고기 시장이 더 개방되지 않는 한미 FTA에는 반대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맥스 보커스 의원은 차기 상원 재무위원회 위원장 내정자로서, 한미 FTA를 포함한 미국의 대외통상 정책 전반에 대해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