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환자’들이 병원비 낼 수 있을까?
정부의 의료급여제도 변경 방침에 암담한 수급권자 이씨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급여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말이 많다. 복지부는 의료급여비용 증가에 따른 ‘개선’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내 모는 ‘개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급여제도 개정에 따라 실제 수급권자들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인 이 모씨의 경우로 살펴봤다.
먼저 이씨의 현재. 이씨는 뇌병변 장애로 몸 뒤틀림이 심한데다 몸이 점차 경직되고 있어 자주 병원을 찾고 있다. 의사 처방에 따라 근육을 풀어주고 경직을 완화시켜 주는 약을 먹은 지 올해로 28년이 됐다. 3년 전엔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역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내려가다 리프트 아래로 떨어져 두개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몸에 경직이 더 심해져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씩 대학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후 배변 기능에 장애가 생겨 배변을 돕는 장치를 몸 안에 설치했는데 이것이 탈이 나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약 5개월 전엔 등이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담당 의사가 등에 뼈가 자라고 있다며 그것을 깎아내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300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아파도 참고 있다. 이 때문에 병원을 찾는 횟수는 더 늘었다.
의료급여제도 어떻게 바뀌나. 복지부가 내놓은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은 만 18세 미만인 사람, 난치성질환자, 임산부를 제외한 나머지 의료수급권자들에게 의료기관 방문 시 500원에서 2000원 사이의 본인부담금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외래 진료를 위해 의원에 가면 1000원, 병원에 가면 1500원, 그 외 대학병원 같은 의료기관에 가면 2000원, 처방전으로 약을 살 때는 500원을 내야한다.
대신 복지부는 수급권자들이 본인부담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건강생활유지비를 지원한다. 현재 책정된 건강생활유지비는 6000원. 또 수급권자들의 비용능력을 고려 본인 부담금 상한선을 정해놓고 있다. 본인부담이 2만원을 넘어가면 초과금의 50%를 정부가 지원하고, 본인부담금이 5만원이 넘으면 그 초과분을 받지 않을 계획이다.
복지부 계획에 따라 이씨가 내야할 본인부담금을 계산해 보자. 일주일에 3번 대학병원을 찾고,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구입하는 이 씨가 내야하는 본인부담금은 2만4500원이다.
종합병원 이용료 2000원 X 3일 X 4주=2만4000원, 약국 이용료 500원
여기에 복지부가 지원하는 건강생활유지비와 본인부담 상한제를 적용해 계산하면, 이씨가 실제 지불하게 되는 비용은 1만6250원이 된다.
2만4500원-2만원 초과 시 초과금의 50%할인(2250원 할인)-건강생활유지비(6천원)=1만6250원
하지만 의료비가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씨가 언제 무슨 일로 병원을 찾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만6250원은 이씨가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돈으로 다른 사유로 의료기관을 찾을 때는 별도의 부담금을 내야한다. 이씨는 “지금 계획대로 제도가 바뀌면 내가 지금처럼 병원에 다닐 수 있겠냐”고 했다.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 본인부담금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재 복지부 계획에 따르면 수급권자가 병원을 아무리 많이 가도 본인부담금은 5만원이 넘지 않는다. 5만원. 어떤 사람에겐 ‘몇 만원밖에 안 되는 돈’일지 모르지만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사람들에겐 귀하다. 이번 의료제도 개선책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가난한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 있어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 본인부담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 장담하고 있다. 한달 3~40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건강생활유지비를 생활비로 전용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또한 이씨의 경우 해당하지 않지만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의료기관 이용이 잦은 만성질환자, 난치성질환자, 정신질환자, 관절염 환자 등에 대해 1~2곳의 병의원을 선택해 이용토록 하는 선택병의원제도 포함돼 있다. 선택한 병원을 이용할 경우 본인부담금이 면제된다. 복지부는 중복투약 등을 막기 위해 도입한다고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현재 종이로 된 의료수급증을 플라스틱 카드로 전환하는 계획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의료급여수급자들만 플라스틱 카드를 갖는 것은 건강보험자들과 구분하는 것으로, 가난한 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외에도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진통 완화 등에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파스’를 비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파스는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의약품이 아닌 진통 완화제에 불과하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파스를 비급여로 전환해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수급권자들에겐 “고통으로 죽어가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부의 의료급여제도 개선안 발표 후 가난한이들의건강권확보를위한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민주노동당 등은 ‘의료급여 개악안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를 저지키 위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한 ‘정부 의료급여제도 개정안에 대한 긴급 토론회’에서는 의료급여제도 개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양승욱 변호사는 “의료급여제도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기여와 부담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하며, 본인부담을 두는 복지부 계획은 이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중대 사안을 행정부에서 단독으로 결정하기보다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는 “현재 복지부의 의료급여제도 개선안은 국회에서 각 당이 제출한 의료급여 제도 개선 방향과 정반대의 기조에 서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이 나라가 30년간 실시해 온 의료급여정책의 기조를 행정부가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쉽게 변경하려 하고 있다”며 입법예고 철회를 요구했다. 최은희 민주노동당 정책담당자는 “공정한 민관공동위원회 구성을 통해 정책을 다시 논의했으면 한다”고 재검토를 주장했다.
복지부의 의료급여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은 입법예고를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후 규제개혁심사,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처리된다. 복지부는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오는 8일까지,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오는 18일까지 접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