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유시민 장관의 “참 나쁜” 철학

    
  유시민 장관의 ‘참 나쁜’ 철학  
  [기고] 가난한 사람 울리는 의료급여제 개선안  

  2007-01-15 오후 3:24:33    

  

  
  말 잘 하고, 글 잘 쓰는 것은 큰 재주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여기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재주꾼이다. 그런 장관이 오랜만에 자신의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국민 세금을 갉아먹는 의료급여 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작년 10월의 대국민 반성문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이들이 장관의 반성문 내용을 접하고 의료급여환자들의 부도덕성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한 사람이 1년에 파스를 5000개 넘게 사용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장관의 반성문 발표 이후, 복지부는 일사천리로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공공의료 확충, 건강보험의 보장성 임기 내 80% 달성, 의료전달체계 정비 등과 같은 사안들이 집권 4년이 다 되도록 제 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가난한 사람들, 지금도 충분히 많이 낸다
  
  복지부는 그 동안 의료급여 제도의 양적 확충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이제는 질적인 수준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그 동안의 성과로 내세운 양적 확충조차 실제로는 함량 미달이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약 183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3.8% 수준이다. 이 같은 규모는 정부가 인정한 공식적인 빈곤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유경쟁체계의 본산인 미국에서 전체 국민의 15%가 우리나라의 의료급여 제도와 같은 메디케이드 수혜 대상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초라한 수치다.
  
  게다가 장관이 대국민 반성문에서 반복적으로 거론한 탓에 상당수 국민의 뇌리에 각인된 ‘의료급여 환자는 진료비가 공짜라서 무한정 병·의원을 이용한다’는 주장도 명백한 거짓이다. 2005년 복지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급여 환자도 전체 진료비의 14~26%를 직접 부담하고 있다.
  
  정부 보조금이 매월 20만~30만 원에 불과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입장에서 볼 때, 이 정도의 부담은 의료이용의 심각한 경제적 장벽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도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18%가 돈이 없어서 병의원에 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천 원의 돈이 아쉬워서 작은 병을 참고 버티다가 큰 병으로 키워서야 병·의원을 찾고, 대학병원 같은 곳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것이 의료급여 환자의 보편적 상황이다. 이에 반해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1년에 5000개가 넘는 파스를 사용한 경우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0.001%에 해당하는 22명에 국한된 특수한 상황이다.
  

  홧김에 애꿎은 사람 뺨 때린 복지부
  
  장관의 타고난 말재주와 글재주는 대다수 의료급여 환자가 직면한 보편적 상황을 해결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몇몇 선정적인 사례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가난한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칼날을 겨누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말았다.
  
  물론 의료급여 제도의 양적 확충만 계속하고, 질적 향상이나 재정 누수 방지 노력은 등한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국민의 혈세를 단 한 푼도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더 많은 소외계층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명의 범인을 잡기 위해 나머지 99명을 덩달아 범인 취급하는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고, 문제의 해법도 아니다.
  
  의료급여환자의 의료이용을 제한한다고 해서 의료급여 재정 지출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의료급여 재정 지출 증가는 전체 대상자가 늘어난 때문이지 의료급여 환자의 의료이용량이 많아서가 아니라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정부의 의료급여 제도 개선안은 홧김에 애꿎은 사람 뺨을 때린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한 도덕성을 의심받아야 할 대상은 의료급여 환자가 아니라 산하기관의 실증분석 결과를 애써 무시하고, 잘못된 통계를 내놓았다가 며칠 만에 슬그머니 바꿔치기를 하는 해프닝을 벌인 정부 당국이다.
  
  최근 장관은 빈곤층에게 가난한 환자의 혜택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 아니며, 정부의 의료급여제도 개선안은 자신의 철학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남의 철학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의 철학으로 인해 숱한 사회적 약자들이 부도덕한 도둑으로 매도당하고 아파도 참고 버텨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면, 그것은 ‘참 나쁜’ 철학이다.  
    
  

  이진석/서울대 교수ㆍ의료관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