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고) 가난한 이들 옭아매는 의료급여제

[기고]가난한 이들 옭아매는 의료급여제

  <윤태호/부산대 의대교수·예방의학>

보건복지부의 의료급여제도 혁신 정책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이번에 발표된 의료급여 혁신 정책은 국민의 3.5% 정도에 불과한 사람들이 진료비를 많이 쓰기 때문에 의료급여제도는 비효율성의 결정판이라는 것이다.

왜 가난한 이들은 의료 이용을 많이 하게 되는지, 의료급여 제도가 우리나라의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과 개선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수급권자들의 의료 이용을 억제하여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의료급여제도를 만들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수급권자들은 정부의 발표대로 과잉 의료이용을 한 것일까. 또한 수급권자들의 과잉 의료 이용을 그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전자와 관련하여 단언컨대 이것을 일반화할 수 없다. 과잉 의료라 함은 단순한 의료이용의 횟수가 아니라, 필요하지 않는 의료이용을 얼마나 하느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과잉 의료를 의료적 필요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능력에 따른 수요를 근거로 한다. 그 결과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비해 의료이용을 많이 하는 것을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2004년 ‘의료급여제도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급권자들은 건강보험 저소득층에 비해서도 만성질환 유병률이 2배 정도 높고, 장애율도 2배 이상 높았다.

의료 이용에서도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한 경험률이 의료급여 1종에서는 21.5%, 2종에서는 31.8%, 최저생계비 150% 미만의 가구에서도 17.1%에 달했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의 의료이용 문제를 일반화시켜 본다면 불필요한 과잉의료가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의료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옳은 진단이다.

따라서 과잉 의료이용이 아니라 수급권자들의 합리적 의료이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급자의 합리적 의료제공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수가 지불이 의료이용이 많을수록, 제공되는 서비스의 양이 많을수록,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의료공급자의 입장에서도 합리적 의료이용을 하도록 상담하고 권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수급권자들의 합리적 의료이용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현행 진료수가 지급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주요 정책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내용은 빠져 있다. 그 대신 현재 법정 본인부담이 면제되는 1종 수급권자들에 대한 본인 부담금제 도입, 의료 이용량이 많은 수급권자에 대해서는 일부 의료기관만 이용하도록 하는 의료기관 선택제, 개인 정보 누출 가능성이 높은 진료비 카드 도입 등을 통해서 합리적 의료이용을 유도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의료 이용자들을 옭아매는 정책들은 그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의료이용을 차단시킴으로써 건강수준을 더욱 더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진료비 부담이 더 증가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보건복지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급여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고하여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근원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