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소통] ‘의료법 개정안’
입력: 2007년 02월 20일 18:07:53
의료법개정안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관련 단체별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그 논리도 제각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의 진료권과 권한을 침해한다며 ‘결사저지’를 외치고 있다.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도 개정안에 반대하지만, 그 이유가 의사협회와는 다르다. 의료산업화 정책이 의료불평등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가하면 대한병원협회 등은 의료산업화 추진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된다며 찬성의견을 내놓고 있다. 경향신문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과 정상혁 이화여대 의대교수로부터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가정·예방의학 전문의인 우실장은 의료공공성에 역행한다며 의료산업화 반대 의견을, 정부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민간위원인 정교수는 의료에도 시장의 효율이 필요하다며 찬성 의견을 펼쳤다.
이화여대 정상현교수(왼쪽)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지난 16일 본사에서 의료법개정안에 대한 찬반 대담을 하기 앞서 환담하고 있다. /우철훈기자
우석균=의료는 기본권리의 영역이지 산업·이윤창출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같은 시각에 대해 일부 의료계에서는 의료사회주의라고 비판합니다만 이념으로 먼저 재단해 버리면 논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과 공공의료 비율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 국가 평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겁니다. 공공의료 병상비율은 OECD 평균이 70%대인데 우리는 10%이고, 건강보험 보장성도 OECD 평균은 70%대인데 우리는 50~60%대입니다.
정상혁=국가별로 의료 발전사가 다른데 유럽식 기준을 그대로 밟아야 옳은 것입니까. 공공의료·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주장은 추상적입니다. 어디까지 가야 강화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시민단체에서도 대기업 총수나 빈민이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국가가 의료를 보장해야 할 계층은 하위 15%여야 합니다. 중산층이 보편적인 치료를 못받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우석균=지금은 돈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의료서비스와 시설을 이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병에 걸려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본적인 건강진단과 치료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이걸 추상화해 누구나 똑같은 치료를 받자는 얘기냐는 식으로 문제를 돌리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상위 10%층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다수가 큰 병이 걸렸을 때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병에 걸리면 집부터 팝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입니까.
정상혁=국민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이를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는 것에 대해 사회적 동의를 얻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재원마련이 가장 중요한데 여기에 대한 청사진을 밝혀야 합니다. 중산층의 의료비 해결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시민단체 주장처럼 사회보험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약·신의료기술이 들어올수록 의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신기술에 대한 욕망으로 의료이용률도 높아지고 비용은 더욱 늘어납니다. 늘어나는 비용을 정부가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석균=재원마련 방법은 결국 공보험 아니면 민간보험입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민간보험 방식이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됐습니다. 의료비가 올라가는 이유는 의료가 너무 산업화돼 있고 이를 정부가 통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는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적습니다. 의사가 우위에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통제해야 합니다. 이같은 국가의 의무를 포기하고 의료를 돈벌이 영역으로 규정, 의료산업화를 추진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권리 향상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정상혁=나도 유럽 국가들 회의에 참석해 봤지만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투자하지도 않은 기관을 통제하는 데는 없습니다. 의료기관 수입의 원천이 사회보험의 강제 지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모든 의료기관이 국가의 통제를 받는 공공의료기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석균=우리가 유럽의 의료수준까지 간 적이나 있습니까. 복지가 없는 나라에서 복지병을 이야기하고, 규제가 없는 나라에서 규제완화를 얘기하면 곤란합니다. 유럽은 공공 의료기관이 90%지만, 우리는 민간 의료기관이 90%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이 60%라는 것은 나머지 40%는 병원 마음대로 의료비를 책정한다는 것입니다.
정상혁=국가에서 정한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원가에 못미친다는 것은 복지부에서도 발표한 바입니다. 원가의 90% 수준입니다. 의료 공공성을 말하면서 원가 이하로 의료비를 받으라는 것이 말이 되나요. 지난 30년간 의료계는 많은 공헌을 해왔고 희생을 감내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석균=원가 밑으로 받았으면 의료기관이 다 망했어야 했는데 왜 안망했습니까. 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부분에서 부족분을 메워왔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오히려 성장했습니다. 또 가격 자체도 치료 종류별로 높낮이가 있어서 비싼 진단과 치료를 더 많이 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의료기관이 힘들어 망할 정도라고 하면 국민들한테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정상혁=가격이 정상적으로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나마 중소병원에서는 보험적용 안되는 진료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중소병원의 1년 도산율이 10~15%입니다. 의료 가격을 정상화시키면서 보험 적용 안되는 부분도 줄여 나가야 합니다.
우석균=현재 해결책은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가격 높낮이도 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료산업화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반영된 내용을 보면 보험적용과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보험적용이 안되는 진료의 가격 할인을 유도하는 것은 보험적용 확대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의원 유치를 허용하는 것도 1·2·3차 병원 질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서 의원을 두고 프리랜서 의사도 가능해지면 중소병원은 더 힘들어집니다. 또 중소병원이 도산한다고 하는데, 중소병원은 성형·비만 등 특수 클리닉화하면서 또 다른 형태로 커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의료가 상업화하고 있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정상혁=비만클리닉이 늘어나는 것을 국민이 왜 걱정해야 합니까.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국민의 욕구를 국가가 통제해야 합니까.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공급이 있어야 합니다. 싼 곳, 비싼 곳이 있어야 합니다. 보험적용 안되는 의료 분야에서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내버려둘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의료법은 부분 수정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근간이 바뀌질 않았습니다. 이제는 규제를 풀어 의료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경제성장의 기초는 바이오산업으로 옮아갑니다. 의료 신기술과 신약 발전은 국가 경제성장률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갈 것입니다. 이 신약을 정부에서 모두 보험적용해 지원해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족한 재원으로 전국민을 상대로 의료보장을 해주다 보니 아무도 혜택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극빈층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의료보장을 해야 합니다.
우석균=다양한 요구의 충족이라고 하면서 기본 요구 충족과 상충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병원을 영리화하면 의료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또 의료 신기술과 신약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왜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와 민간보험 활성화와 연결되는지 논리적 설명이 없습니다. 영리법인이 돼야 신기술이 개발되고, 민간보험이 활성화돼야 신약이 개발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지금은 흔한 심장병 수술, 암치료, 뇌수술 등은 처음 시도된 1950·60대 당시에는 의료 신기술이었습니다. 신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면 의료 양극화는 심해집니다. 백혈병 신약인 글리벡의 가격이 비싼데, 형편에 따라 알아서 쓰라고 한다면 약두고 죽으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는 의료서비스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기술은 써도 좋고 안써도 좋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재산이 돼야 합니다. 의료를 공공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정상혁=의료 분야에서도 규제가 철폐돼야만 시장의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있는 프리랜서 의사 도입도 지역사회 입장에서 보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부정적 효과보다 큽니다. 의료시장 개방에도 동의합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의료 서비스가 통합된 공급 회사가 들어올 수 있는데 우리도 의료 브랜드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브랜드를 걸고 가면 수준있는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 의료 정의 문제, 유사의료행위 인정 부분 등에는 동의하지 않고 규제개혁도 미흡하다고 생각하지만, 의료산업화 등 몇가지 틀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우석균=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돈벌이 진료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이 체인병원 활성화입니다. 현재도 체인병원에 가면 불필요한 진료를 받고 나오는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스케일링만 해도 될 것을 체인병원 가면 수백만원 드는 치료까지 받고 나옵니다. 돈벌이가 병원의 목적이 되면 과잉 진료는 필연적으로 생깁니다. 병의 95%는 동네 의원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걸 개정안대로 병원에 개설된 의원에 가면 비싼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의원에서 병원의 비싼 세부 전문의에 의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병원은 돈벌이에 도움이 되겠지만 국민은 불필요한 의료비를 쓰게 됩니다. 의료광고 범위 확대도 의료 서비스보다 이미지에 집중해 의료 남용을 가져올 것입니다. 보험적용 안되는 진료 비용을 할인해 환자 유인알선 행위를 허용하는 것도 병원과 민간보험회사의 계약을 유도, 민간보험회사가 병원을 지배하는 형태를 초래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적보험이 약화됩니다. 병원은 민간보험사를 업고 보험적용 안되는 진료를 남발할 것이고, 국민들의 의료비는 급증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약해지고, 보장성은 줄어들어 의료 양극화가 심해질 것입니다.
〈정리|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