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국민부담 5년간 10조 덤터기’
입력: 2007년 03월 10일 10:15:4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 특허기간 연장과 정부의 의약품 정책변화로 인해 향후 5~7년간 10조~12조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의약품에 대한 특허심사기간 단축으로 특허기간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피해금액 7조원에,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반쪽짜리’로 전락하는 데 따른 국민 부담 3조원, 부실특허·전문의약품 대중광고 허용으로 발생하는 금액 1조원 안팎 등이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이 책정한 약값에 다국적 제약사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등 의약품 시장이 개방되면서 생기는 피해다.
한·미 FTA저지 보건의료대책위원회와 지적재산권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등은 9일 한·미 FTA 8차 협상이 열리고 있는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결국 FTA체결로 한해 평균 2조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며 “신약 가격 인상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 증폭과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초래할 의약품 협상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가 신약의 특허출원 및 시판허가시 제출된 안전성·유효성 자료를 특허기간 만료 후에도 일정기간 국내 제약사들이 볼 수 없도록 해달라는 미국측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사실상 특허를 연장해주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로 인해 국내 제약사들의 복제 의약품 생산은 늦춰질 수밖에 없으며 다국적 제약사들의 독점권 강화로 결국 소비자들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신약을 사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신약과 주요성분은 같으면서 염류(salt), 에스테르(ester) 등 일부 성분만 변경한 유사의약품에 대한 시판 허가 판정을 내릴 때 제출된 자료의 독점권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신약 연구가 가능한 대형 제약사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엄청난 비용과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신약보다 복제 의약품 제조에 치중하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큰 피해가 예상된다.
우석균 실장은 “더 중요한 건 국민 피해가 가장 우려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식약청의 의약품 품목 허가와 특허청의 특허를 연계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도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식약청-특허청 연계는 약품의 주성분에 대한 특허만이 아니라 다국적 제약회사가 걸어놓은 의약품의 제법, 용법 등 수많은 특허 중 단 하나만 남아있어도 식약청이 의약품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는 제도다.
대책위 등은 특허 침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다른 제약사들의 신약 복제를 금지할 경우 의약품 선택 권한을 박탈하는 셈이어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신약 특허출원 심사 및 임상·판매허가 심사 기간을 2년 정도 단축하는 미국의 주장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부실특허 남발 우려는 물론 결과적으로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이 단축된 심사기간만큼 빨리 시중에 유통되는 효과를 불러와 이 기간을 포함해 20년으로 돼 있는 특허기간이 사실상 연장된다는 설명이다.
대책위는 허가기간 단축, 자료독점권 연장, 식약청-특허청 연계 등 기간을 합하면 한·미 FTA에 따른 특허기간 연장효과가 최소 5년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만일 미국측이 요구하는 처방을 요하는 전문의약품의 대중광고까지 허용하면 다국적 신약사가 만드는 고가 신약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사용량은 천정부지로 불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FTA 체결로 늘어날 의약품관련 부담과 관련해 한·미 FTA체결지원위원회 홍영표 단장은 “의약품 분과 협상에서 아직 결론난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피해 규모도 어떤 산정방식을 도입하느냐에 따라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국적 제약사의 약가 산정 이의 신청 보장으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무력화됐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독립적 이의기구 신설 자체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며 최종 약가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권재현기자 jaynew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