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장관, 빈민에게는 1천억도 아깝다더니…
[기자의눈] FTA로 2조 원 의료비 부담, 유시민 장관님 무슨 생각이 드나요?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 2007년03월11일 21시06분
보건의료단체, 한미FTA 체결 시 국민의료비 부담 연간 2조원
보건의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한미FTA 체결 시 의약품 특허기간이 최소 현재 보다 5년 이상 늘어나고, 연간 2조원의 추가적인 국민의료비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는 조사 분석은 충격적이다.
환자권리를위한환우회연합모임, 한미FTA저지보건의료대책위, 한미FTA저지지재권공대위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9일 한미FTA협상 의약품 관련 쟁점인 △특허기간연장 △자료독점권 강화 △식약청-특허청 연계 △독립적 이의제기기구 설치를 통한 약제비적정화방안 무력화 등이 미국의 요구대로 관철될 시 “특허연장과 약제비적정화방안 포기의 피해액만 계산해도 5년간 10조원의 추가의약품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단체의 이번 조사 분석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목록 및 상한금액표 품목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사실 그 피해규모 예측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미 정부에서도 비슷한 예상을 내놓은 바 있다.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지난 해 특허기간 연장에 따른 약제비 증가규모를 9천418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미FTA 협상에서 특허기간연장 등 미국의 요구가 수용될 시 “향후 5년간 6천억 원에서 1조원의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구체적인 피해 액수에서 차이가 있지만, 한미FTA 체결에 따른 의료비에 대한 전 사회적인 부담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라는 얘기다.
암․심장병․중풍 등 3대 중증질환 무상의료하고도 8천억 남아
상황이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고 말하던 보건복지부 수장이 앞장서서 ‘이건 아니다’고 외칠만도 한데 그렇지 못하다. 국민을 향한 유시민 장관의 ‘연민’이 정치인의 그저 그런 ‘쇼’라고 치더라도,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 별로 없다”고 토로하던 현실론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의료재정 절감을 위해 한국사회에 가장 극단적인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줄인 그가 아니던가? 정부는 의료급여1종 수급권자들에게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현행 의료급여제도를 변경한 바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평균 1천억 원의 재정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겨우’ 1천억 원을 아끼겠다고, 극빈층 환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제도를 변경하는 마당에 그 보다 적게는 10배, 많게는 20배의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리려 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지 의문이다.
‘2조’라는 액수가 언뜻 감이 안 오지만, 이 돈이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 보건의료단체들에 따르면, 2조원이면 우선 연간 진료비가 300만 원 이상인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고도, 3천4백억 원이 남는다. 그게 아니라면, 전국의 14세 미만 청소년들에 대한 진료비 1조3천9백억 원을 면제할 수 있는 금액이다. 또 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현재 비급여인 초음파검사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1조1천4백억 원)으로도 쓸 수 있다.
또 2조원으로 할 수 있는 획기적 조치 중 하나는, 암, 중풍, 심장병에 대해서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 3대 중증질환에 대해 무상의료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연간 1조2천억 원이 필요할 뿐이다. 또 2조원이면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에 대한 입원 시 본인부담금(5천5백억)을 면제할 수 있고, 비급여인 틀니에 대해서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다.
“돈 없다”던 유시민 장관, 2조원 날리고 얻고자 하는 것 무엇인가
정부는 지금껏 한미FTA를 반대해 온 보건의료단체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때문에 ‘2조원을 절약할 수 있고, 3대 중증질환에 대해 무상의료를 실시할 수 있다’는 등의 조언도 ‘쇠 귀에 경 읽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 아니었을까.
한미FTA를 체결해 연간 2조원을 날리고, 미국과 자본의 신뢰를 얻는 대신 환자들의 신뢰를 택했다면 어땠을까. 전국의 학부모들, 암․중풍 등으로 ‘병원빚’에 짓눌려 시름하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 틀니가 필요한 노인들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유시민 장관은 지금쯤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99%”라는 푸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됐을런지 모른다. 정부 그리고 유시민 장관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건강권을 생각해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바야흐로 대선정국을 향해 가고 있는 요즘, 최소한 이들을 유권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리 쉽게 한미FTA를 체결하지는 못할 것 같다.
유시민 장관은 최근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을 통해 “가난과 질병과 장애와 소득 없는 노후라는 시련에 직면한 국민들의 절절한 사연을 거론하면서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질타하지만, 돈 없이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거의 모두가 눈을 감는다”고 밝혔다. 또 진보진영의 참여정부 복지정책에 대한 비판이 구체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 별로 없다”는 복지부 장관의 현실적 고뇌가 십분 이해간다. 또 진보진영에 대한 쓴 소리도 일면 타당한 점이 있을게다. 그러나 ‘의료비 폭등’에 대한 경고와 한미FTA 체결 후 증가하게 될 사회적 비용을 의료보장성 강화에 쓰라는 보건의료단체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한미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와 유시민 장관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미 한미FTA는 미국의 요구대로 거의 타결국면에 이르렀다. 정부와 유시민 장관은 이제라도 연간 2조원을 날리면서까지 한미FTA를 체결해 얻고자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솔직히 밝혀야 할 것이다. ‘돈이 없다’며 빈민들에 대한 의료지원을 철회한 유시민 장관이 ‘돈이 없어’ 죽어가는 빈민들에게 ‘한미FTA는 희망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2007.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