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E 판정 나왔으니 쇠고기 수입해야 한다고?”
WTO SPS 협정, “OIE 기준과 각국의 위생 기준은 별개” 명시
임은경 기자
지난 11일 미국과 캐나다가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Controlled Risk) 국가라는 예비 판정을 받은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척 램버트 미 농무부 차관보 등은 국제기구인 OIE의 판정 결과가 나오면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당연히 개정해야 한다는 의사를 피력해왔고, 재정경제부와 중앙일보 등은 이를 받아 OIE 판정이 곧 우리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의무로 이어지는 것처럼 여론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국제수역사무국의 육서동물위생규약 광우병 관련 챕터(Terrestrial Animal Health Code 2.3.13장)는 의무사항이 아니고 권고사항(recommendations)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가’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수입위생조건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미 간에 협상을 통해 적절한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적인 상식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는 14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캐나다 등에 대한 OIE의 ‘광우병 통제국가’ 판정은 우리 수입 위생조건에 의무사항이 결코 아니다”면서, 이번 판정을 빌미로 쇠고기 개방 압력을 가속화하고 있는 미국과, 한미FTA 타결에 목을 매 미측의 요구를 슬금슬금 들어주려는 한국 정부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협정(SPS)의 규정들을 제시하며 OIE의 판정이 각 나라의 수입 위생조건을 강제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
송기호 변호사, “WTO는 위생 검역에 관한 각국의 독자성 인정”
송 변호사는 “OIE의 기준이나 가이드라인 또는 권고를 기초로 회원국 간의 조화를 도모하되, 회원국에 대해 자국민 건강과 생명의 보호 수준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된 SPS 서문을 예로 들어, “소뼈를 고아 곰국을 먹는 특이한(?) 식생활을 가진 우리나라의 경우,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뼈의 수입을 거부하는 규정을 취할 수 있다”면서 “어느 것을 선택하든 그 나라의 독자적 권리임을 인정하는 것이 SPS 규정”이라고 말했다.
SPS 규정은 또한 “WTO 회원국은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보호 수준을 설정할 권리가 있”으며(SPS 제5조), “WTO 회원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SPS 제3조)”고 서술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이같은 규정들이 “통상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들”이라면서, “WTO가 각 국의 독자권을 침해할 수 있는 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WTO의 EC-호르몬 사건 항소심 판결문 104절에는 “OIE 기준 준수가 원칙이 아니다. 그리고 OIE 기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원칙에 대한 예외가 아니다”는 내용까지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세계무역을 관장하는 국제기구가 OIE 판정이 각 국가의 위생기준을 강제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OIE 판정을 근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억지라는 것이다.
2006년 3월 농림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의 근거로 삼은
8단계 ‘수입위험분석(import risk analysis)’ 조치
1. 수입허용가능성 검토
2. 수출국정부에 가축위생설문서 송부
3. 가축위생설문서에 대한 답변서 검토
4. 가축위생실태 현지조사
5. 수입허용여부 결정
6. 수출국과 동물 또는 축산물 수입위생조건안 협의
7. 수입위생조건 제정·고시
8. 수출작업장 승인 및 검역증명서 서식협의
WTO SPS 3조는 또 “WTO 회원국이 OIE 기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려면 위험평가(Risk Assessment)라고 하는 과학적 근거를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 농림부가 2006년 3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위생조건을 고시한 것은 8단계에 걸친 수입위험분석(import risk analysis)을 진행한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므로, OIE 판정과 무관하게 현행 수입위생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설명.
따라서 어느 모로 보나 무조건 OIE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통상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일본이 미국의 압력을 뿌리칠 수 있는 것 역시 WTO가 규정한 통상법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스스로 우리 기준이 국제 기준보다 더 엄격하다고 밝혀왔듯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국제 기준보다 엄격한 수입위생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7년03월14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