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복지부장관이 왕따된 속사정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경제 부처 사람들보다 더 경제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그는 경제 부처에서 얘기하기 편한 복지 장관으로 통한다. 어떤 때는 경제 부처가 말하기 힘든 미묘한 문제들까지 알아서 먼저 개혁하겠다고 나서니 오히려 고마울 정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장애인 차량, LPG 보조금제나 의료 급여 개혁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이른바 ‘소외 계층’과 관련된 문제들이어서 경제 관료들이 얘기하기 곤란했던 부분이라는 것. 낭비되는 게 많다거나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면 곧바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몇 푼 지원하는 것 가지고 뭘 그러느냐’ ‘역시 돈밖에 모르는 골수 우파 경제 관료다’라는 식의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더구나 정치권에서 한가락 하는 실세 정치인들을 장관으로 모시는 복지부 관료들인 바에야 ‘경제적 효과’니 ‘낭비적 지출’이니 하는 얘기들이 처음부터 먹혀들 리 만무했다는 것.
그러던 것이 유 장관이 오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는 더 쓰게 되는 돈은 어떻게 마련할지 먼저 고민하고, 지금 쓰고 있는 것 중에 거품은 없는지 살피고 대책을 강구했다. 이전 복지부 장관들에게선 기대하기조차 힘든 모습이라는 평가다.
오죽하면 기획예산처 장관들이 복지부 장관을 칭찬하고 있을까(예산을 짜는 기획처 장관은 항상 복지부 장관을 개념 없이 돈을 쓴다며 비난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유 장관과 함께 일했던 변양균 전 기획처 장관(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장병완 현 장관은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유 장관을 ‘합리적이고 추진력이 있다’고 칭찬한 바 있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그늘도 짙은 법. 유 장관은 경제 부처로부터 강력한 신임을 얻게 된 대신 동료나 지원자들로부터 ‘깊은 태클’을 당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의 장관 재직 1년 동안 복지부의 전통적 동맹세력(복지부 입장에서 보면)들이 모두 복지부에서 등을 돌렸다. 그가 강조하고 있는 생산적 복지나 효율적 복지 등에 대해 복지면 복지지 무슨 생산적 복지, 효율적 복지냐며 비토(veto)를 걸고 있는 것. 복지에 경제적 개념을 접목하는 것 자체가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이다.
국회서도 견제·태클 대상
얼마 전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그에게 복지부 장관으로서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다며 국민의 이름으로 그를 불신임한다는 내용의 ‘국민 불신임장’을 전달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 빈곤층의 의료비 지원을 축소하는 의료 급여 개혁 등 그가 추진하는 이른바 ‘보수 개혁(복지에 시장과 경쟁 개념을 도입하는 개혁)’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본격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국회서도 그는 견제와 태클의 대상이다. 그가 공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국민연금법, 기초노령연금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같은 복지 개혁 법안들은 겉으로는 한나라당 때문에 발목이 묶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친정인 열린우리당이 그를 적극 돕지 않고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야당도 친정당도 그에게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터진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 99%’ 발언 파문은 그를 낭떠러지로 밀고 있다. 이 발언은 출입 기자단과의 맥주 파티에서 비(非)보도 전제로 나왔지만 엠바고가 깨지면서 전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정치인의 비보도 요청은 진정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는 억울해 한다).
보도 직후 유 장관은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역시 유시민은 트러블 메이커’라는 식의 ‘왕따’ 분위기가 형성됐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적 정리 이후 장관직을 내놓으라는 한나라당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유 장관은 “복지부 장관으로서 할 일이 많다.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고 싶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까지 장관직을 계속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이 같은 상황 전개에 대해 경제 부처 내에선 매우 안타깝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한 고위 관료는 “유 장관이 강조하는 경제적 복지, 효율적 복지, 생산적 복지는 웬만한 의욕이나 추진력, 철학적·지식적 기반 없이는 강력한 반발 때문에 추진되기 힘든 것들”이라며 “한 번 때를 놓치면 그런 모멘텀을 다시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박수진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