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운동은 현실 아닌 양심을 따르라”
하워드 진 “민주당 철군안, 부시에 대한 조건부 항복”
2007-03-26 오후 4:44:25
민주당이 주도의 미국 하원은 지난 23일 내년 9월1일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조건으로 한 1240억 달러 규모의 전비법안을 218 대 212로 통과시켰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즉각 거부권 행사를 선언하고 나섬으로써 이 법안이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철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서도 그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민주당으로서는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 반전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는 ‘현실과의 절충’을 명분으로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철군 시간표’를 집어넣은 민주당의 모순적 행태를 “부시 행정부에 대한 ‘조건부 항복’”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전비법안을 통과시킨 민주당을, 몇 년 후 노예를 해방하는 조건으로 ‘도망노예송환법’ 시행 비용을 허가했던 남북전쟁 이전 노예폐지론자들과 비교한 하워드 진 교수의 통렬한 비판은, “민주당이 정치연극을 하고 있다”던 부시 대통령의 원색비난보다 더 아픈 질책으로 민주당 지지층을 파고들 듯 하다.
하워드 진 교수는 또 민주당이 제시한 ‘허위 절충안’을 ‘현실적’이란 이유로 옹호하는 미국의 반전운동 진영을 향해서도 “당신들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며 시민은 승산이 있는 길보다 정당한 길을 택해야 함을 기억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노엄 촘스키 MIT대 교수와 더불어 양심적인 미국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하워드 진 교수의 이 글은 미국의 진보주의 저널 <프로그레시브> 24일자에 실렸다.
<우리는 정치인인가, 시민인가: Are We Politicians or Citizens?>
▲ 하워드 진 교수는 이라크 전비 승인의 조건으로 철군 시한을 못박은 민주당의 안을 ‘부시에 대한 조건부 항복’으로 규정하며 반전 운동 진영 만이라도 민주당 옹호에서 벗어나 양심의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했다. ⓒwww.radiofreemaine.com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의회에서는 이라크 철군 시간표가 논의되고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증파 계획과 공화당의 이라크 내 미군의 임무제한 거부에 맞서 민주당이 철군을 하되 가깝게는 1년, 멀게는 18개월이 지나서 하는 소심한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반전운동 진영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전운동 단체 연합인 <무브온>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회원들은 민주당이 내놓은 안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확실한 첫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또 충격적이게도 이 법안은 철군시한을 명시하는 동시에 전쟁비용 1240억 달러를 승인하고 있다. 마치 남북전쟁 전 노예폐지론자들이 1,2년 혹은 5년 후 노예 해방을 약속받으면서 당장은 ‘도망노예송환법’을 시행하기 위한 기금을 승인했던 것과 같은 노릇이다.
사회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 내민 절충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행태다. 그들의 역할은 정치인들에 도전하고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것이지 묵묵히 정치인들의 병풍이 돼 주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다. 우리는 시민이다. 정치인들이 무엇을 하려 하든 간에 제일 먼저 시민들의 힘을 의식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은 ‘겁쟁이 의회’처럼 승산 있는 데에만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옳은 것을 말해야 한다.
미군이 이라크를 ‘돕고’ 있다면 철군은 왜 하나
철군 시간표는 미군의 야만적인 임무수행을 인정했다는 면에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할 뿐 아니라 (당신의 집에 쳐들어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당신의 아이들을 위협한 괴한에게 물러날 ‘시간표’를 준다니…)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만약 미군이 이라크에서 내전을 막고 사람들을 돕고 유혈사태를 통제하고 있다면, 도대체 왜 철군을 해야 하나. 반대로 미군이 내전을 촉발하고 사람들을 해치고 혼돈을 격화시키고 있다면, 배든 비행기든 모든 방편을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 본국으로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미국이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이라크 침공을 시작한 지 4년이 흘렀다. 이만하면 미군의 존재가 이라크 인들의 삶을 악화시켰는지 개선시켰는지를 판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판단의 증거들은 넘쳐난다. 침공 이후 이라크 인 수십만 명이 죽었고 200만 명이 이라크를 떠났다.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이라크 내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 잔인한 독재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세인의 체포와 사형이 이라크 인들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했다. 그 대신 미군이 혼돈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먹을 물이 없고 인구 절반이 실업 상태인 데에다가 음식도 전기도 연료도 부족하고 영양실조 어린이와 영아 사망률이 늘어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군이 폭력을 잠재웠나? 정 반대다. 이라크 내 저항세력의 공격은 나날이 늘어 2007년 1월 현재 하루에만 180건 가량의 유혈충돌이 집계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4년 간의 실패를 추가파병으로 만회하려 들고 있다. 군대를 더 보내겠다는 발상은 ‘광신’ 외엔 규정할 길이 없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선 속도를 올리는 식이다. 마치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행해진 폐렴 치료를 연상케 한다. 당시 의사 하나는 폐렴을 치료한다며 환자의 피를 뽑았다고 한다. 그래도 환자가 낫지 않자 그 의사는 피를 충분치 뽑지 않아 치료가 실패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더 많이 얻기 위해 버리는 게 ‘절충’…민주당은 무엇을 얻었나
민주당이 의회에 제출한 안은 전쟁에 더 많은 돈을 지원할 뿐 아니라 그 전쟁이 1년 혹은 그 이상 지속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짜 준 셈이다. 그들은 ‘절충’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일부 반전 운동 세력들도 이에 동조하는 듯하다.
그러나 ‘절충’은 당장은 우리의 요구를 조금 양보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설 때 하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유사한 상황을 볼 수 있다. 영화 속 아일랜드 독립군들에게 아일랜드 영토 일부분을 아일랜드자유국으로 떼 주겠으니 저항을 멈추라는 영국의 절충안을 받아 들고, 영화의 주인공인 두 형제는 이 안의 수용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인다. 그나마 영화에서 제시된 절충안을 명분은 깎아먹더라도 적어도 아일랜드자유국이란 확실한 성과를 담보하고 있었다.
▲ 지난 17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4주기를 맞아 헐리우드에서 벌어진 반전 시위. 이토록 격렬하게 즉각 철군을 주장하는 반전주의자들도 ‘현실’이란 미명 앞에 민주당의 ‘철군 시간표’를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로이터=뉴시스
반면, 민주당이 제안한 ‘철군 계획표’는 상황을 더 꼬이게 할 뿐 성과가 없다. 철군 약속이 남았다지만 그 결정권조차 부시 정부의 손안에 있는 것 아닌가.
노동 운동을 할 때에도 비슷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흔히 새로운 계약 조건을 두고 투쟁을 벌이는 조합은 요구 조건의 일부분만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항상 어려움이 따르는 결정이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절충안 수용이 승리를 뜻하느냐 패배를 뜻하느냐를 가르는 잣대는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개선점이 있느냐 하는 데 있다. 만약 미래에 대한 약속만 있을 뿐 현재는 참기 힘든 조건을 견뎌내야 한다면 그것은 절충안이 아니라 ‘배신’으로 간주된다. 만약 노조 지도자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나은 길을 택하자”라고 말한다면 (이는 <무브온> 사람들이 민주당 안에 대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 쫓겨나고 말 것이다.
1964년 아틀란타 시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일부 흑인 지도자들은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나은 것을 택하자”면서 전체 인구 40%를 차지하는 흑인을 대표하는 자리로 투표권이 없는 대의원 두 자리를 주겠다는 민주당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 파니 루 해이머나 보브 모지즈 등 미시시피 출신들은 이를 반대했고 다른 흑인들의 투쟁의지를 모아 결국 당초 요구를 달성했다. “할 수 있는 것 중 최선”이란 구호는 곧 ‘타락의 처방전(a recipe for corruption)’에 닿아 있기 마련이다.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절충안으로 미화된 ‘조건부 항복’의 유혹에 강하게 버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오클랜드의 흑인 여성 하원의원 바바라 리는 9.11 직후 워싱턴의 분위기가 아주 험악했을 때에도 끝까지 아프가니스탄 침공 결의안에 반대했다. 그는 국민들을 속이는 허위 절충안에 반대하고 즉각 철군을 주장하면서 이번 이라크 전비 법안에도 반대했다.
바바라 리를 비롯해 맥신 워터스, 린 울시, 존 루이스 등 몇몇을 제외하고선 거의 모든 의원들은 정치인이기를 택했고 ‘이것이 현실’이라며 자신들의 진정성을 넘겨버렸다.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이다. 지켜야 할 사무실이 없는 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오직 우리의 양심이다. 그리고 역사는 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번역= 이지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