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허세욱씨 영결식에서 미군기지 노제까지

“형님에게 맥주한잔 못산게 이렇게 한 맺힐 줄이야…”

  하어영 기자 김태형 기자  

  

» 지난 1일 한미FTA 반대를 주장하며 하얏트 호텔 앞에서 분신했던 고 허세욱씨의 장례 행렬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을 지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장] 허세욱씨 영결식에서 미군기지 노제까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숨진 허세욱씨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7시 서울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회사 동료, 민주노총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영결식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동지 장례위원회’ 홍근수 위원장의 발인 선언으로 시작됐다. 홍 위원장은 “고인의 뜻을 이어 받아 반드시 한-미 에프티에이를 저지하자”는 말로 발인 선언을 갈음했고, 범국본 오종렬 대표가 앞장 서 조문객들과 함께 절을 올렸다.

이어 한독운수 동료인 강창성씨가 영정을 들고, 숨진 허씨의 유해 일부와 민주노총, 참여연대 이름이 쓰여진 점퍼, 한독운수 시절에 입던 운전복과 모자가 담겨진 관이 뒤따르면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 고 허세욱씨가 생전에 몰던 은색 소나타 승용차를 앞세운 허씨의 장례 행렬이 18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을 지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강성심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친 장례행렬은 노제를 위해 허씨가 몰던 은색 소나타 승용차를 앞세우고 민주노총으로 향했다. 허씨의 영정을 단 영정차와 운구차 등이 소나타 차량 뒤에 섰고 행렬 끝에는 400여명으로 불어난 조문객들이 뒤따랐다. 노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한독운수, 하얏트호텔 등을 돌면서 치러졌다.

오전 7시30분께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민주노총 앞에 장례행렬이 멈췄고,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사회로 노제가 시작됐다. 김 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여러분, 이곳이 허세욱 열사가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었던 민주노총입니다. 한독운수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데 누구보다 애썼던 고인의 넋이 서린 민노총입니다”라고 말했다. 참가한 조문객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 고 허세욱씨의 영결식 참석자들이 18일 만장을 들고 서울 용산 미군기지를 지나 행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어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를 들러 노제를 한 장례행렬은 오전 8시40분께 허세욱씨가 일했던 한독운수에 들어섰다. 한독운수에는 이미 100여명의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허씨가 몰던 택시가 한독운수 마당을 돌자 동료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어 열린 노제에서 황규남 한독운수 분회장이 “열정적인 사회 활동에도 늘 동료들을 챙기던 분이었다”며 “지각 한 번 없이 늘 웃으며 성실하시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국장은 “많은 사람들이 동지라고 부르지만 나는 봉천동 산동네에서 만난 착한 허세욱 아저씨라고 부른다”며 “여기 어딘가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타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독운수에서 노제를 마치고 다시 장례행렬이 하얏트호텔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직장 동료들은 택시를 몰고 행렬을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운구차를 따르는 한독운수의 택시 차량은 30여대가 넘었다. 신동빈 한독운수 분회 부회장도 직접 자신의 택시를 몰고 나서며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동료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아래 윗집 살면서 형님에게 받기만 하고 맥주 한잔 사지 못한 게 이렇게 한이 맺힐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허씨가 자신을 불사른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18일 오전 진혼굿이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오전 10시20분께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노제가 시작됐다. 한상렬 장례위원은 “사람마다 잊지 못할 날이 있는데 나는 4월1일이 그렇다”며 “기자회견 도중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한-미 에프티에이를 반대한다는 님의 외침만 없었어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님이 죽어 우리를 살리고 역사를 살렸다”고 힘겹게 조사를 마쳤다. 이어 허씨가 자신을 불사른 장소에서 진혼굿이 시작됐다. 길닦음춤에 이어 하얀천을 갈라 태우는 의식으로 허씨의 넋을 달랬고, 참석한 500여명은 분신한 장소에서 일제히 절을 올리면서 하얏트 호텔의 노제를 마쳤다.

    
» 허씨가 자신을 불사른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18일 오전 열린 노제 참석자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18일 오전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고 허세욱씨의 노제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기리는 팻말을 들어보이며 오열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어 장례행렬은 하얏트호텔에서 서울 용산기지 앞으로 이동했고, 허씨가 생전에 활동했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10여명이 흰소복을 입고 합류했다. 평통사 회원들은 ‘노 티어스 인 헤븐, 노 유에스 베이스 인 헤븐’(NO TEARS IN HEAVEN, NO US BASE IN HEAVEN)이라고 쓴 펼침막을 들었고 ‘신자유주의 반대’, ‘협상내용 전면공개’ 등이 쓰여진 16개의 만장이 뒤따랐다. 변연식 평통사 대표는 미군기지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 “미군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세요”라며 추도했다. 전국농민회 문경식 의장은 조사를 통해 “언제나 낮은 곳에 임하시던 당신, 당신의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소서. 망국적인 한-미 에프티에이 반드시 폐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범국본 정광훈 대표도 “하얏트 호텔 앞에서 전경에 막혀 아무 것도 못하고 검은 연기만 보고 있었다”며 “허씨의 뜻을 받들어 한-미 에프티에이를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린 노제의 마지막 절차는 ‘화장해 미군기지에 뿌려달라’는 허씨의 유언을 따르는 것이었다. 장례위는 민주노총이 일부 수습한 유해 가운데 일부를 하얀 사발에 담긴 물과 함께 섞어 미군기지의 담장에 뿌렸다.

장례행렬은 1000여명(경찰 추산)으로 불어나 서울시청 앞으로 이동해 ‘고 허세욱 씨 범국민 추모제’를 진행했으며 오후 4시에는 경기 마석의 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할 예정이다.

하어영 기자, 정유경 수습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