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 요구 ‘신약 최저가격제’ 상당부분 수용, 한-미FTA 협정문 공개 ① 의약품

미 요구 ‘신약 최저가격제’ 상당부분 수용
[한-미FTA 협정문 공개] ① 의약품

  김양중 기자 김진수 기자  

  

» 의약품 부문 ‘우려’ 조항 파급 효과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도출가격에 기초’ 문구…약값 낮추기 봉쇄
‘소득 특허연장’도 30개월…정부는 아직 “9개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약품 부문 협상에서 국민의 약값 부담을 줄이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흔드는 조항이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약값을 시장에 맡기는 대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회사와 협상으로 결정하게 하는 제도로, 국민의 약값 부담을 낮출 수 있다.

25일 공개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의약품 및 의료기기’ 협정문을 보면, 약값 결정에서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에 기초하도록 보장한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정부는 애초 미국의 ‘신약 최저가 보장’ 요구를 완전히 물리친 것처럼 말해왔으나, 실제 협정문은 미국 쪽 의지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조항이 올해 첫발을 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해당 조항이 ‘약값을 시장에 맡긴다’는 뜻을 담고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특허 의약품의 가치를 ‘적절히 인정’하도록 단서를 달았다”면서 “실질적으로 신약의 최저가격을 보장해 약값 부담을 높일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또 지적재산권 분야 협정문에서 ‘허가-특허 연계’ 조항을 도입해, 특허 분쟁이 늘어나고 복제약품 출시가 지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허가와 특허를 연계하고, 특허를 가진 제약사가 복제약품을 만드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 복제약품의 허가 절차를 30개월 동안 자동 중지시킨다. 정부는 이런 ‘특허 자동 연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런 내용은 협정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입법화와 제도의 실행 과정에서 분란의 여지를 남겨 놓은 셈이다. 미국은 특허분쟁률이 70%대로, 한국(27%)의 세 배에 달한다. 특허분쟁 남발로 값싼 복제약품의 출시가 늦어지면, 피해는 그대로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시민단체들이 협정문 조항을 가장 불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명시되지 않은 것은 미국 쪽에 내준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보건복지부의 배경택 한-미 자유무역협정 팀장은 “약값 결정에서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에 따르는 것은 미국이고, 우리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허가-특허 연계와 관련해 “이번 협상에서 관련 규정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양쪽 다 자국의 적절한 규정으로 관련 조항의 효력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며 “우리나라 법 현실에 맞는 연장이 9개월 정도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편, 보건의료연합의 우석균 정책실장은 “정부와 업계의 협상으로 약값을 낮추는 제도가 일찌감치 자리잡은 오스트레일리아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뒤 약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국내 약값 정책에 이의 제기를 하는 독립적인 절차가 마련되는 등 이번 협정의 수위가 예상보다 높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