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성장호르몬 실태조사를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

미국산 쇠고기 성장호르몬 실태조사를

  
전상일의 건강이야기

한겨레신문 2007-05-28 오후 07:12:39

1988년 유럽연합은 가축을 사육할 때 성장호르몬의 사용을 금지했다. 이 조처는 유럽연합 회원국뿐만 아니라 성장호르몬을 투여해 기른 가축의 수입에도 영향을 끼친다. 결국 성장호르몬 성분이 검출된 국가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으며,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국가는 미국과 캐나다였다.

유럽연합의 결정에 반발한 미국과 캐나다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이 기구의 분쟁처리위원회는 유럽연합의 조처가 ‘위생 및 검역조처 협정’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이 협정의 취지는 이른바 ‘기술적 무역장벽’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사람이나 환경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증이 없다면, 예방 측면에 입각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전 예방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셈이다.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인체 위해성을 빠른 시일 안에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협정은 소비자나 환경보다는 생산자 쪽을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

98년 당시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의 결정에 수긍하지 않고 맞대응했다. 이 기구의 상소기구는 분쟁처리위원회의 최초 결정을 뒤집고, 성장호르몬을 투여한 가축을 유럽연합이 수입금지한 조처는 “국가의 정책결정은 인체 위해성 평가에 근거해야 한다”는 세계무역기구의 원칙과 맞지 않는다는 점만 인정했다. 유럽연합의 조처가 타당성을 일부 인정받은 셈이다.

유럽연합은 타당성 확보를 위해 ‘공중보건에 관한 수의과학위원회’로 하여금 쇠고기와 기타 육류에 남아 있는 성장호르몬이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은 9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장호르몬 6종에 대해 “아무리 미량이라도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일단 섭취를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일부 호르몬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라고 결론지었다. 2000년 5월에는 에스트라디올을 가축 사육에 절대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또 나머지 5개 성장호르몬에 대해선 좀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법으로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서, 조만간 우리 식탁에도 미국산 쇠고기가 오를 것이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문제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성장호르몬 잔류 실태를 파악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광우병 오염 쇠고기를 먹었다가 얻을 수 있는 피해를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비유한다면, 성장호르몬 쇠고기 섭취에 따른 피해는 교통사고에 비유할 수 있다.

환경보건학 박사·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